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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티지 옷으로 시작하는 슬로우 패션

고등학교 3학년 말, 친구들과 졸업사진 드레스코드를 맞춘다고 난생 처음 서울 동묘에 갔었다. ‘레트로’ 콘셉트에 맞는 여러 벌의 옷이 필요했고 가난한 고등학생에게 동묘 구제시장은 제격이었다. 영화 ‘써니’에 나올 법한 레이스 달린 흰 셔츠와 청바지 그리고 빨간색 스카프를 아주 싼값에 구했다. 그 후 벌써 4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아직도 그 옷들을 종종 꺼내 입는데 하나도 어색하거나 촌스럽지 않다. 나는 그때부터 빈티지 옷의 매력에 푹 빠졌다.

 

패션전문자료사전에 따르면 복식용어에서 말하는 ‘빈티지(vintage)’란 어느 일정한 기간을 경과해도 광채를 잃지 않는(가령 한 때는 광채를 잃어도 어떤 계기로 돌연 불사조와 같이 되살아나는 매력을 가진) 어떤 특징의 두드러진 유행 또는 유행품을 가리킨다. 즉 빈티지 의류는 오랜 시간과 세대가 흘러 낡는 다는 이유로 버려지는 것이 아니라 오래되면 오래될수록 더 귀하게 여겨진다.

 

내가 왜 빈티지 의류만 찾게 되는지 생각해 보았다. 먼저 환경을 보호할 수 있다. 매년 패스트 패션(Fast Fashion) 브랜드가 늘고 성장한다. 스페인의 자라(ZARA), 미국의 갭(GAP), 스웨덴의 H&M, 일본의 유니클로 등이 있으며 우리나라 브랜드로는 스파오, 탑텐 등이 있다. 이러한 브랜드들에서는 매 분기 매 주 단위로 신상이 나오지만 패션 트렌드의 변화는 매우 빠르다. 결국 팔리지 못해서 쌓여가는 수많은 재고들이 다시 소각될 때 이산화탄소와 다이옥신 등 지구에 유해한 물질을 생성하고 이러한 과정이 반복된다. 김정혜(2022)에 따르면 “전 세계 한 해 평균 배출되는 의류 폐기물의 양은 21억 톤에 달한다.”고 한다. 매일 새로운 옷들이 업데이트 되는 인터넷 쇼핑몰만 봐도 알 수 있다. 유행이 중시되는 세상 속 오래된 것들이 더 높은 가치를 지니는 빈티지 문화는 다르다. 누군가에게 더 이상 필요 없는 입었던 옷, 신었던 신발, 썼던 가방이 깨끗이 세탁되어 또 다른 누군가에게 새로 탄생한다.

 

다음으로는 가격이 합리적이라는 것이다. 요즘은 브랜드가 없는 보세 옷들도 가격이 비싸다. 10대~30대 사람들이 애용하는 ‘지그재그(4000개 이상의 쇼핑몰 상품을 한 번에 구경하고 구매할 수 있는 모바일 앱)’로 상의와 하의 한 벌씩 만 구매해도 거의 10만원이다. 하지만 빈티지 의류 중엔 전통과 명성 있는 브랜드를 가진 제품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굉장히 저렴하다. 광장시장이나 동묘 구제시장처럼 도매업을 주로 하는 곳에서 구매한다면 5만원 미만의 코트나 겨울 재킷들도 쉽게 구할 수 있다. 전국 곳곳에 있는 재사용 나눔 기업 ‘아름다운 가게’에서도 단 돈 몇 천원으로 질 좋은 옷들을 구매할 수 있다. 나도 지난여름 5천원을 주고 구입했던 린넨 재킷을 만족하며 아주 잘 착용했었다.

 

또 각자의 개성 있는 스타일링이 가능하다. 획일화되고 유행에 민감한 패스트 패션 의류들과는 달리 빈티지 의류는 독특한 디자인과 컬러감 그리고 다양한 소재들로 이루어진 옷들이 많다. 그래서 자신만의 ‘이미지 메이킹’을 하는데 수월하다. 시골 할머니가 떠오르는 편안한 룩, 자유와 반항을 외치는 히피 룩, 데님 같은 실용적인 옷들을 이용한 캐주얼 룩, 성별을 넘나드는 중성적인 룩 등 이 수많은 패션 테마를 쉽게 표현할 수 있다. 나 또한 빈티지 의류를 착용하면서 주변으로부터 “패션의 색깔이 짙다.”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패션은 어떤 사람의 가치관이나 성격 등 내면을 표현하는데 큰 역할을 한다.

 

빈티지 의류를 구매할 수 있는 방법이 점점 편리해지고 있다. 예전에는 명품 빈티지를 구매할 수 있는 길이 해외 구매 대행이나 몇 없는 빈티지 로드 숍이 다였기 때문에 마니아층들만이 즐기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요즘은 주인이 직접 좋은 제품을 골라서 판매하는 빈티지 셀렉 숍이 지역별로 많이 늘었고 SNS 계정들을 통해서도 구매하기가 쉬워졌다. 인스타그램을 조금만 검색해보면 수많은 빈티지 판매자 계정들이 나오며 빈티지 의류만 전용으로 취급하는 모바일 앱도 여럿 등장했다.

 

빈티지 전용 쇼핑 앱 ‘후르츠’, 직접 캡쳐

 

빈티지 옷에게는 가끔 보이는 이염이나 올 풀림, 떨어진 단추들에도 “빈티지니까 그러려니”하며 관대해진다. 중고라서 당연한 것일 수도 있지만 B급 상품이라는 이유로 곧바로 폐기되는 대신, 제품 컨디션에 맞는 저렴한 가격으로 책정되기 때문이다. 못난이 옷들도 버려지지 않고 누군가의 품으로 간다. 이것이 빈티지 의류의 가장 큰 매력 아닐까. 이제는 새로운 옷들을 계속해서 찍어대는 것이 아니라 있는 옷들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를 고민해 보아야 할 때이다.

 

선순환 패션 문화, 픽사베이

ESG기자단 정여진  sarkakore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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