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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흥산책] 이태원 2번 출구를 지나가며
  • 소진영(바람 저널리스트)
  • 승인 2022.12.08 2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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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1=이태원역 사진)

11월 6일 밤 11시. 운전 중 길을 잘못들었다. 해방촌을 지나 내려오는 길에서 2차선을 타고 지하차도로 들어갔어야 했는데 실수로 3차선에 서 있다가 어쩔 수 없이 삼각지역에서 좌회전, 이태원역을 지나가야했다. 평소였다면 아무렇지 않게 지나갔을 길이었다. 강남에 있는 집과 용산에 위치한 학교를 오가며 적어도 50번 이상은 지나쳤을 길이다. 밤 11시가 넘은 늦은 시간이었지만 참사 당일 있어야 했던 경찰들은 허망하게 빈 골목을 바라보며 자리를 지키고 서있었고, 몇몇 시민들이 현장을 방문해 각자의 방식대로 추모하고 있었다.

이태원역 1번출구를 올라온 외국인들은 자기네 언어로 대화하고 있었다. 이 참사가 저들에겐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었을까. BTS와 블랙핑크, 오징어게임으로 화려하게 치장된 한국을 제대로 보게된 민낯이었을까, 아니면 힘든 타지 생활을 위로해줄 이방인들이 모여 자유와 해방을 느끼는 곳이었을까. 공기가 압도된 폭 3.2m의 골목을 보며 허망함이 몰려왔다. 그리고 내게는 아직도 잊히지 않는 한 대화가 떠올랐다.

“우리 학교 수학여행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어도 똑같았을까?”
“아니, 아마 아빠가 전세기라도 띄웠겠지”
2014년 4월, 아빠가 대기업 임원인 A는 내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세월호 사건은 모든 생명이 다 같은 무게를 가지진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했다. 어떤 이의 죽음은 철저히 외면당할 수도 있다는 것을 뼈아프게 배웠다. 그 참사로 생을 달리한 학생들과 또래였던 나는 ‘나였다면’이라는 수많은 가정을 붙여가며 함께 아파했다. 아이를 잃고 단식하는 아비 앞에서 폭식 투쟁을 하는 사람을 보며 어떠한 투쟁이 있어도 악함이 세상을 지배한다는 무력감을 학습했다.

역접이 두 번이면 순접이 된다고 했던가. 아무리 옳은 소리를 외쳐도 세상은 변할 수 없다는 회의가 분노로 변했다. 젊은이들이 또다시 떼로 죽었다. 하지만 들려오는 말은 “국가 애도기간까지 정했는데 제발 슬퍼만 합시다”였다. 참사 다음날 대통령은 대국민 담화를 열어 2분 10초 동안 비통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가더니 일주일간 국가 애도 기간을 지정했다. 사과 한마디 없이 강요된 애도는 '숨죽여 슬퍼만 하라'는 명령 같았다. 사방이 막혀 옴짝달싹 못하고 얼굴이 파랗게 질려가던 젊은 생명이 생각났다. 누군가 내 입을 틀어막는 듯했다.

이렇게 젊은이들이 죽는데 사회는 ‘사고였는데 어쩌라는거냐’고 묻는다. 일할 사람이 없으니 애를 낳게 해야 한다는 고민은 하지만 일상에서 죽어가는 청년을 살릴 방법은 없다 말한다. 개인의 문제니까. '사고'라는 단어 하나면 간편히 정리된다. 소스 배합기에 끼여 숨진 젊은이도, 그날 밤 이태원에서 축제를 즐기던 157명의 죽음도 말이다. 세월호 유족의 단식투쟁을 조롱하던 사람들의 폭력은 '돈 없고 빽 없어도 안전하게 돈 벌게 해달라'는 말을, '어디든 걱정 없이 다니게 해달라’는 말을 ‘정치적 선동’이라 낙인찍는 것으로 모양만 바뀌었다.

사과 없는 대통령의 담화는 젊은이들이 죽어 나가는 사회를 만들어놓고도 아무 책임 없다는, 다 '젊은 것들 문제'라는 어른들의 모습이었다. 이제 나는 분노한다. 세월호로 친구를 잃었던 무력한 중학생이었던 나는 성인이 되어 다시 한번 150명의 친구를 잃고 분노한다. 이렇게 많은 생명을 지키지 못하고도 여전히 뻔뻔한 그 어른들처럼 되지 않기 위해.

 

 

 

소진영(바람 저널리스트)  yess@liv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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