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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내일도 한가위만 같아라
  • 정대환(바람 저널리스트)
  • 승인 2022.10.06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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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추석(10일) 당일, 영등포역에서 아침 6시 기차를 타고 고향 전북 장수로 내려갔다. 장수에는 기차역이 없어 늘 옆 동네인 임실군 오수면으로 간다. 영등포에서 오수역까지 걸리는 시간은 4시간. 기차는 전원 만석으로 고향에 내려가 가족과 시간을 보내려는 이들이 양손에 짐을 바리바리 싸 들고 있었다. 평상시 내리는 이가 거의 없던 오수에서도 많은 이들이 내렸다. 역에서 집까지는 차로 10분. 미리 차를 몰고 와있던 동생 덕에 금방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마을은 명절이라 하여 자식들이 와있어 곳곳에 활력이 가득했다. 어린아이 몇 명이 킥보드를 타며 온 동네를 휘젓는 중이었고, 집마다 차례를 지낸 후라 전체적으로 시끌벅적했다. 마을 앞산의 성묘하는 사람들은 서로 마주쳐 담소 나누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사람 기운만 넘치는 것이 아니었다. 자연의 풍족함과 화사함은 더했다. 벼는 익어가 황금 들판이 되기 직전이고, 길가에 떨어진 밤과 은행이 수두룩했다. 대추는 너무 많이 달려 나무가 무게를 견디지 못할 정도였다. 꽃무릇, 코스모스 등 온갖 가을꽃이 맑은 햇살과 어우러져 따듯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사진1 전라북도 장수군/ 바람 정대환)

 

“오랜만에 반갑네! 이쁜 사람 잘 지냈는가”

풍경을 즐기며 산책하던 도중 만난 옆집 할머니 세 분이 나를 반갑게 맞아줬다. 자식들 가기 전에 밭에서 고추라도 따다 주겠다며 나와 있던 참이라고 했다. 이것저것 다 챙겨주면 당신네는 무엇을 드시냐 여쭈니 “언제 볼지 모르는데 잘 먹고 댕기라고 챙겨 줘야지”라고 답한다. 자식들 봐서 좋냐는 물음에는 뭘 그리 당연하다는 걸 묻느냐 한다. “맨날 테레비만 보다가 자식들 보고 하니 얼마나 좋아” 평소 시골에서 즐길 것이 없어 매일 방안에만 있다가 사람이 모이니 다들 즐거우신 듯했다.

 

딸과 사위가 내려온 김에 농사를 도와주는 곳도 있었다. 이웃인 이씨 할머니네 밭에서 세 사람이 녹두를 따는 중이었다. 먼 곳에서 운전하고 오느라 피곤할 법도 한데 일을 돕다니. “오늘 안 하면 내일 80살 먹은 양반 혼자 다 해야 하는데 어째요.”라는 따님의 말에 가슴 한쪽이 시큰했다. 매일 매일 밭을 다니며 땀 흘린 결과를 아낌없이 내어주는 부모의 마음, 그리고 이를 걱정하는 자식의 마음이 모두 느껴졌다.

 

(사진2. 어머니와 녹두를 따는 딸과 사위/바람 정대환)

 

97세로 마을 최고령인 뒷집 할아버지는 아들들과 함께 바닷가로 놀러 간다며 분주히 준비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장롱에서 정장에 중절모를 꺼내 쓰고 멋을 냈다. 이미 환갑을 다 넘은 아들들은 그런 아버지를 걱정한다. “기운이 넘쳐서 좋지만, 매일 밭에 나가는 게 걱정이여. 어제는 나무 자른다고 나무에 올라가시고 참말로” 이런 걱정을 알긴 하시는지 얼른 가자며 독촉하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유독 흥겨워 보였다.

 

지나간 명절 뒤엔 외로움만 가득

명절이 지난 지도 일주일이 넘었다. 아직도 냉장고엔 집에서 받아온 명절 음식과 반찬들이 남아있다. 도시 생활로 돌아오니 매일 정신없고 복잡하다. 떠나온 시골 마을은 다시 고요한 정적 속에 잠겼을 것이다. 시골 노인들에겐 자식들이 또 언제 내려올까 하는 기다림의 시간이 찾아왔다.

 

“또 언제 내려올란가?”인사를 마치며 돌아서는 내게 묻는 어르신들의 질문이 기억에 남는다. 시골을 지키는 노인들에게 유일한 낙이란 자식들이기에 명절은 굉장히 특별하다. 어찌 보면 고독하다고도 할 수 있는 시골의 정적 속에서, 가장 크게 웃는 날이기 때문이다. 고령으로 하루하루 몸이 약해지는 이들에게 화목함과 풍성함 하나하나가 어찌 소중하지 않을까. 그 마음이 자식들에겐 온갖 표현으로 전해진다. 고봉밥을 쌓아 올려주고, 쌀부터 들기름이며 온갖 반찬들을 가져가라며 챙겨주는 모습은 사랑 그 자체다. 하지만 이 사랑은 한편으로 안쓰럽다. 이들의 즐거움은 명절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 자식에게서 나온다. 명절은 그저 핑곗거리일 뿐이다. 언제 오나 갈망하던 사랑의 대상을 만나는 날이 이날뿐인지라 아쉬움이 더하다. 내일 떠날 자식들을 바라보는 늙은 부모의 얼굴에는 지울 수 없는 외로움이 남아있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쉬는 날일 뿐인 추석 명절. 오늘도 오매불망 명절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떠난 이들이 다시 돌아오기를 바라고, 매일 추석의 활력이 있기를 바란다. 시골이 그저 남겨진 자들의 공간으로 여겨지는 것은 과장이 아니다. 앞으로 나 역시 도시로 떠나 부모를 시골에 남겨둘지도 모른다. 지방에 있는 모든 청년이 고민하는 부분이기도 할 것이다. 우리 부모 세대가 고민하고 겪은 현실을 우리 또한 고민할 것이다. 사랑하는 이들 곁에서, 자라온 곳에서 살아갈 수 있는 지방이 필요하다. 농촌에서 노인과 청년이 함께 살아갈 수는 없을까.

 

정대환(바람 저널리스트)  yess@liv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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