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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리에서 유일한 한국인 되기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말은 들어봤어도, 친구 따라 교환학생으로 핀란드에 오게 될 줄 몰랐다. 작년 이맘때, 같이 일하던 언니가 교환학생에 합격했다. 대학에 입학하기 전부터 그때까지만 해도 교환학생에는 관심이 전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대학교에서 제일 친한 친구 한 명이 그 언니의 이야기를 듣더니 자기도 교환학생에 가고 싶다고 했고, 장난으로 ‘너도 같이 하자!’라고 말했다. 내가 교환학생에 관심이 없단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전혀 기대하지 않고 물어본 질문이었다. 그치만 그 질문에 대한 답은 긍정이었다. 그렇게 주변에 교환학생을 준비한다고 떠들고 다녔고‘울며 겨자먹기’로 준비하여 합격했고, 그렇게 홀로 핀란드에 오게 되었다. 사실 이곳에 도착하고 나서 며칠까지도 그때 내 무모함을 원망하곤 했다. 그리고 그 원망이 사라진 건 이곳에서 도착한 지 일주일이 지나서였다.

 

핀란드 공항

모든 것이 처음이었다

핀란드는 북유럽, 지리상으로는 스칸디나비아반도에 위치해있다. 대한민국과의 시차는 6시간(겨울에는 7시간)이다. 놀랍게도 이번 비행은 모든 것이 처음이었다. 20시간이나 비행기를 타는 것, 유럽을 가는 것, 혼자 비행기를 타고 해외를 가는 것, 장거리 연애, 그리고 가족과 떨어져 사는 것. 모두 다 안 해본 것들이라 설레기보다는 두려움이 늘 앞섰다. 합격하고 근 두 달은 두려움과 후회스러움에 매일 눈물을 흘렸다. 그 이후 두 달은 출국 준비를 하며 점차 나아졌다. 그러나 경유지에 도착하자 두려움은 또다시 시작됐다. 분명 한국발 비행기에선 잘만 보이던 동양인이 경유지인 도하에 도착하자 완전히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때부터는 울기보다는 긴장감에 각성했다. 기나긴 비행 끝에 헬싱키에 무사히 도착했다. 영어와 중국어, 알 수 없는 언어들 사이로 ‘도착’이라는 한글이 보였다. 한국 사람이 핀란드에 자주 오나 싶은 생각을 하며 공항 근처 호텔로 향했다. 호텔 체크인을 기다리던 중 나를 빼고 모두가 마스크를 쓰지 않았단 걸 깨닫고 내 타지 생활이 실감나기 시작했다.

 

미켈리의 기차 밖 풍경

미켈리의 유일한 한국인

4개월 동안 내 터전인 미켈리는 핀란드 남동부의 작은 마을로, 헬싱키 공항에서 통근 열차와 기차를 타고 3시간이 더 들어가야 한다. 기차 창밖의 풍경은 한국과 무척이나 달랐다. 키가 엄청 큰 나무들이 즐비하고 중간중간 크고 작은 호수가 가득했다. ‘이번 역은 미켈리입니다.’ 짐칸에 실어두었던 캐리어 두 개와 배낭, 그리고 보조 가방을 들고 마침내 미켈리에 도착했다. 미리 마중 나와 있던 튜터, 같이 공부하게 될 친구들 세 명을 만나 차를 타고 이동했다. 세 친구는 모두 독일에서 왔다고 했다. 약간의 기대 섞인 목소리로 튜터에게 이번 학기에 한국인이나 동양인이 있냐고 물어봤지만 역시나 나밖에 없었다. 아직 영어로 표현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아 나의 실망감과 두려움은 속으로 삭혔다. 길고 긴 여정 끝에 도착한 집 앞. 창문이 열려있는 걸 보니 누군가 먼저 도착한 느낌이었다. 조심스레 문을 열고 들어가니 나의 독일인 룸메이트 Ylenia를 만났다.

 

핀란드의 가게 풍경

핀란드의 중고가게

집에 도착하고 쉬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꽤 오랫동안 비어있던 것으로 보이는 방은 매우 더러웠고 매트리스, 이불, 베개 모두 커버가 없었기 때문이다. 급하게 청소부터 하는데, 룸메이트가 방문을 두드렸다. ‘위층 친구들이랑 중고가게 가려는데 같이 갈래?’ 그렇게 나는 핀란드의 중고가게에 처음으로 방문했다. 중고가게 하면 허름한 이미지만 생각했는데 전혀 달랐다. 새것과 다름없어 보이는 가구들, 전자제품들, 옷가지들 등 다양한 물건이 가득했다. 그러다 LG 텔레비전을 보고는 반가워서 사진도 찍었다. 핀란드 도심에는 중고가게가 두세 블록마다 있으며, 동네마다 서너 개는 있다고 한다. 미켈리에도 중고가게가 2개나 있다. 집 앞에 있는 중고가게는 첫날 이후에도 몇 번이나 방문했다. 식탁보, 벽에 걸 장식용 천, 그리고 자전거. 돈이 부족한 교환학생에게 이렇게 좋은 곳이 집 앞에 있다는 사실은 정말 행운이었다.

 

중고 가게의 벽걸이 장식용 천

순탄치 않았던 일주일

미켈리에 도착하고 일주일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첫날 중고가게에 다녀온 후로는 식재료가 없어서 마트에 가야 했다. 그곳에서 처음 만났던 독일인 친구 세 명을 다시 마주쳤고 그들과 함께 갔다. 동향이라는 공통점이 있는 그들은 독일어로 소통하며 더 친밀해 보였고 나와 룸메이트는 따로 걸어갔다. 마트에 도착하고 나서도 거리감은 그대로였다. 그러다 마트에서 내가 잠시 길을 막으며 서 있었고 한 친구가 나에게 찡그린 얼굴로 손짓을 하며 길 좀 비키라고 말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었는데 그날은 도착한 첫날이라 그런지 괜히 다르게 느껴졌다. 집에 돌아갈 때는 재료 한 가지를 깜빡했다며 룸메이트와 나 보고 먼저 가라고 했는데 그거마저 핑계로 들렸다. 그렇게 Ylenia와 집으로 걸어가는 길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감정이 북받쳐 눈물이 나왔다. 경유지에서부터 나 홀로 동양인이라는 중압감, 마트 가는 길에서 느꼈던 소외감 때문에 한 친구의 언행이 모질게 느껴졌다. 물론 이때의 서러움은 다른 날에도 이어졌다.

룸메이트와 위층 친구들을 비롯해 교환학생에 온 친구들 대부분이 거의 독일 출신이었고 그들이 독일어로 소통하는 일은 비일비재했기 때문이다. 폭풍 같은 일주일이 지나고 마침내 혼자 쉴 수 있는 날이 찾아왔다. 내 방 벽면에 걸어놓은 윤슬 그림을 보고 많은 생각을 했다. 서럽기만 했던 독일인 친구들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한국어가 편하듯이, 그들도 그저 독일어가 자연스럽게 나오는 거겠지.’ 미켈리에 유일한 한국인이라는 사실 역시 처음에는 버겁기만 했다. 그치만 지금은 오히려 다행이라고 여기는 중이다. 동양인으로서 모든 것이 낯선 핀란드지만 그렇기에 다른 친구들보다 새롭게 경험할 수 있는 것들이 무궁무진하다. 지금은 무턱대고 실천한 교환학생을 후회하기보단 내 인생에서 제일 잘한 일이라고 확신한다.

ESG기자단(김민주)  sarkakore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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