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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장작불
  • 바람저널리스트 (김민주)
  • 승인 2022.08.23 0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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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겨울, 난생처음으로 워크숍을 갔다. MT, OT와 같이 어색한 사이에서 가는 단체여행이 아니라 끈끈한 정, 약간의 미움이 동시에 존재하는 사람들과 가는 첫 여행이었다. 여행을 계획할 당시만 해도 마냥 신나진 않았다. 그 무렵 우리는 늘 그렇듯 가게 운영을 비롯해 온라인 주문을 받고, 사회공헌 활동들까지 해치우느라 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한 프로젝트는 중단될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여행 당일, 아침 일찍 모이기로 했지만 사는 곳이 제각각, 성격도 제각각인 우리는 늘 그렇듯 약속시간에 모두가 나타나지 않았다. ‘녹원’스러운 일이었다. 누가 아무리 늦는다고 한들, ‘그럴 수 있지.’라며 넘기는 우리였다. 그렇게 지각한 사람들을 기다리며 일찍부터 모이느라 배고플 사람들을 위해 김밥을 사러 갔다. 효율성이 좋은 메뉴 통일 대신 각자의 취향을 존중한 각기 다른 김밥으로 사왔다. 이게 뭐 중요한가 싶을 수도 있겠지만 우리의 특색을 보여주는 중요한 특징이다.

(사진1 - 직접 촬영)

경희대 정문에 위치한 녹원은 일반 가게와는 다르다. 녹원에 모인 모두는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이곳에 온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게 돈이 되었든, 스펙이 되었든 말이다. ‘옛날 녹원’은 경희대 앞에서 오랜 시간을 지키던 전통 찻집이었다. 누군가에게는 사랑의 시작, 누군가에게는 공강 중 휴식을 취하기 위한 장소였지만 우후죽순 생겨나는 카페들 속에 사람들에게 외면당했고 그렇게 2016년에 폐업하였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학생들이 모여 우대식 교수님의 지도 아래 리마인드 재건 프로젝트로 재탄생했다. 인테리어, 메뉴 개발 등 하나부터 열까지 학생들의 손이 안 닿은 곳이 없다. 녹원은 단순히 음료만 팔지 않는다. 지난 코로나19로 생기를 잃은 회기동 일대를 부흥하기 위해 주변 상점과 협력하여 친환경과 공동체라는 주제로 바자회를 열고, ‘청년 살롱’이라는 프로젝트를 통해 거리두기로 소외된 청년들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장을 만들었다. 차에 낯선 사람들에게 원데이 클래스도 무료로 제공하며 차를 즐길 수 있는 법도 나누었다. 무엇보다 매장 내 소소한 전시, 엽서존 등을 통해 녹원을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추억을 선사하기 위해 공간을 꾸미고 힘든 상황에서도 녹원을 지키고자 노력했다. 20살 녹원의 손님으로 방문했던 추억이 21살의 나에게 닿아 녹원의 일원이 되었다.

(사진2)

이 여행은 추억의 장작불이 되고

워크숍은 원래 새로운 사람이 들어올 때마다 수익과 약간의 사비를 보태 매번 거하게 갔다고 한다. 그러나 코로나가 심해져 경영난과 적자에 시달리고 무엇보다 사회적 거리두기 때문에 모두가 모이는 일은 불가능했다. 매주 하는 정기 회의도 온라인을 통해서 했고, 그렇기에 친해질 수 있는 기회 역시 현저히 적었다. 녹원의 가치는 함께 있을 때 가능한 것인데, 함께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내가 녹원에 막 들어갔을 당시 느낀 첫인상은 실망이었다. 아르바이트처럼 보수를 받는 것도 아닌데 아르바이트 그 이상의 노력과 막대한 시간투자가 필요했다. 서로의 일정이 있다 보니, 혹은 서로 선호하는 시간이 있다 보니 만나는 사람만 만날 수 있는 구조였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 제대로 알지 못한 채 반 년 이상의 시간을 보냈다. 역대 가장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들어왔지만 6개월도 채우지 못하고 나간 사람이 가장 많았다. 나 역시도 수없이 나갈지 말지를 고민했었다. 그러나 6개월이 지나니 마음가짐이 좀 달라졌다. 팀장을 맡게 되니 내가 속한 공간에 대한 애정, 단체에 대한 책임감이 서서히 생긴 것이다. 그렇게 새로운 사람들이 들어왔고, 여러가지 프로젝트를 하며 조금씩 친해졌다. 그렇게 우리는 워크숍을 가게 되었다.

첫날은 간단하게 우리와 비슷한 찻집을 찾아다니며 다양한 메뉴를 시켜 먹어 보기도 하며 우리의 강점과 약점을 살펴보았다. 그러고는 마트에 들러 다같이 장을 보며 저녁거리를 쓸어 담았다. 단체여행이라면 빼놓을 수 없는 야외 바비큐를 즐겼다. 계절이 겨울이고 여행 간 곳이 강원도 홍천인지라 잠깐이라도 장작불 멀리 있으면 뼛속까지 얼 것 같은 추위였는데, 뭐가 그렇게 좋았을까? 편안함과 효율을 생각하면 한 명씩 돌아가며 밖에서 고기를 굽고 실내에서 먹으면 됐는데 말이다. 마시멜로우와 고구마를 구워 먹고 그렇게 한참을 밖에서 있다가 한 사람이 “어우~우리 추운데 왜 밖에서 이러고 있지?”라는 소리에 다들 웃으며 따뜻한 실내로 들어갔다. 그렇게 밤이 무르익으며 레크레이션이 시작됐다. 익명으로 서로의 마음을 전달하는 시간이었다. 한 명씩 누가 썼는지 맞추고 만일 틀리면 벌주를 마시는 게임이었다. 모든 것에 진심을 다하는 사람들이라 호칭과 말투를 바꾸며 그렇게 서로 속고 속였다. 그중 몇몇 쪽지는 눈물샘을 자극하기도 했다. 그러다 새벽이 되고 하나둘씩 서로의 마음을 터놓기 시작했다. 녹원을 하며 좋았던 점도 있었지만 그간 힘들었던 점, 서운했던 점, 오해들을 털어놓았다. 묵혀 있던 것들이 서서히 풀리기 시작했다.

둘째 날은 몇몇이 사정 때문에 떠나고 녹원을 아끼고 지원해주시는 선생님 두 분과 함께 밤을 지새웠다. 각자 요즘 하고 있는 일, 걱정되는 일을 얘기하면 두 분께서는 자신들의 경험과 더불어 진심 어린 조언을 해 주셨다. 코로나 때문에 이 두 분 역시 제대로 대화해볼 수 있는 기회가 전혀 없었기에 너무나 소중한 시간이었다. ‘비로소 함께 있을 때 빛난다.’라는 말이 와 닿는 순간이었다. 둘째 날 아침에 눈이 소복히 쌓여서 숙소 앞이 눈밭이 되었고, 밤이 되자 맑은 하늘이 되었다. 홍천의 밤은 쏟아지는 별들로 가득 찼다. 눈밭에 누워 다같이 오랜 시간 멍을 때렸다. 서울에선 볼 수 없는 수많은 별들을 가리키며 별자리 이야기도 나누었다. 별들을 사진에 담으려 수십 장을 찍고 서로 누가 잘 찍었나 대결도 하였다. 처음으로 나눴던 진솔한 대화, 고민과 위로, 아름다운 밤하늘과 시원한 공기는 지금은 녹원을 떠난 사람들이 녹원을 추억할 수 있는 중요한 장작이 되었다.

언제든 다시 찾고 싶은 곳

오늘 볼일이 있어 회기에 갔다가 녹원에 들렀다. 사실 몇 주전부터 회기에 자주 오곤 했지만 내가 아는 사람이 거의 다 나간 녹원에 놀러가기는 쉽지 않았다. 그러다 우연히 유일하게 남은 한 친구(수연이)가 오늘 출근한다는 걸 듣고 케이크를 사들고 찾아갔다. 수연이는 나를 보자마자 글썽였다. 보고 싶었다는 수연이의 말을 듣고 나도 울컥했다. ‘21살의 대부분을 보냈던 곳인데 8개월이 지나서야 다시 찾다니.’ 뭐가 그렇게 오래 걸렸을까? 잠깐 얼굴만 보고 가려고 했던 의도와 달리 우리는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비가 많이 와서 손님도 없었고, 내가 모르는 다른 분도 없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그렇게 저녁 시간이 되었고 저녁으로 뭐가 좋을까 하다가 같이 근무할 때 자주 포장해 먹던 식당인 도읍지가 생각났다. 계란찜과 제육백반, 그리고 세미나실, 메뉴와 장소 모두 작년과 이 맘 때와 똑같았다. 녹원도 비슷했다. 새로운 메뉴 한 두가지, 약간의 인테리어 변동, 내가 알지 못하는 새로운 분들의 이야기가 담긴 액자가 걸린 전시 벽. 8개월 만에 찾은 곳이지만 거의 모든 것이 그대로였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더 이상 이 곳이 내 공간이 아니고, 그때 함께 했던 사람들 역시 더 이상 없다는 게 크게 느껴졌다. 오랜만에 양갱을 직접 만들었다. 3배합이나 되는 양이라 혹시나 망칠까봐 걱정을 했는데 수연이는 온전히 날 믿고 끝까지 맡겼다. 그렇게 둘이 옛날처럼 양갱도 만들고 근황을 이야기하니 옛날 생각이 무척 났다. 매주 목요일 8시 회의에서 핏대 세우며 토론하기도 하고, 단합하여 위기를 해쳐 나가기도 했던 우리가 이제는 함께 할 수 없음이 조금 아쉬웠다. 그렇게 우리의 이야기는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워크숍으로 이어졌다. ‘그때 정말 좋았는데…’ 수연이도 나도 그 말을 여러 번 되뇌었다. 그간 내가 아는 사람들이 많이 남아있던 때에 충분히 놀러갈 수 있었는데 그러지 않았던 내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나는 곧 교환학생을 떠나 내년이 되어서야 한국에 돌아온다. 내가 돌아왔을 즈음엔 수연이 역시 외국으로 떠나 더 이상 녹원에 없다. 우리가 함께 하지 못한다는 사실은 비록 슬프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그 시절 그 여행을 떠올리며 추억하리라. 조금은 낯설 녹원에서 다 함께 모이는 그 날을 소망해본다.

바람저널리스트 (김민주)  yess@liv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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