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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발적이었다는 전남친의 변명, 연수의 세상은 무너졌다.
  • 정여진(바람 저널리스트)
  • 승인 2022.07.12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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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1) 영화 ‘경아의 딸’ 포스터 출처: 네이버 영화 캡쳐

엄마 ‘경아’에겐 교사가 되어 서울로 상경한 하나뿐인 딸 ‘연수’가 늘 걱정거리다. 혼자 자취를 시작한 연수를 경아는 늘 확인한다. “집에 너 말고 다른 사람 있는 건 아니지?”, “밤늦게 택시 타는 게 얼마나 위험한 줄 알아?”, “사귀는 사람 없지?”, “늘 남자 조심, 밤길 조심해야해.” 어떻게 보면 과한 엄마의 잔소리에도 연수는 늘 경아를 안심시키는 누구보다 착한 딸이다. 그러나 연수에게는 경아가 모르는 얼마 전 이별한 남자친구 ‘상현’이 있었고 그의 계속된 집착에 힘들어하던 중이었다. 밤중에 학교 앞까지 쫓아와 구애하는 이 남자에게 연수는 “더 이상 보지말자.”고 매몰차게 거절했고 그 다음날부터 연수의 삶은 세상으로부터 고립되기 시작한다.

 

상현은 연수와의 교제 할 당시 찍었던 성관계 영상을 연수의 지인들에게 전송했다. 심지어 그 중에는 연수의 엄마인 경아도 포함되어 있었다. 평생을 믿었던 딸에게 너무나 큰 실망을 한 경아는 홧김에 연수에게 “걸레가 따로 없더라.”라는 말을 내뱉었고 애틋했던 두 모녀의 사이에도 금이 가기 시작한다.

 

사랑했던 전 연인과의 관계가 모두 물거품이 되고, 엄마의 말에 받은 충격과 상처, 자신의 합의하에 찍은 영상이었다는 자책감과 괴로움으로 연수의 세상이 뒤바뀐다. 결국 사람을 만나는 것이 두려워져 교직을 그만두고 불법 포르노 사이트에 까지 유표 된 동영상을 지우려고 피해자 본인인 연수가 직접 고가의 비용을 지불해가며 ‘디지털 장의사’업체와의 계약을 연장한다. 또 그 영상을 누군가가 봤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포털사이트에 자신의 이름을 계속해서 검색해보며 살아간다. 이렇게 연수의 상태는 곪을 대로 곪았지만 정작 그녀가 기댈 곳은 없었다. 자신의 편이 되어주길 바랬던 엄마에게서 들었던 비수 같은 한마디로 인해 자신을 향했던 엄마의 신신당부들까지 숨통을 옥죄는 답답함으로 느껴지기 시작했고 결국 두 모녀는 연락을 끊은 채 살아간다.

 

사실 ‘이별 범죄’라는 소재는 우리 주변에서 만연하게 보이는 현실이다. 세계일보가 취재한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리벤지 포르노 등 불법촬영물 유포 범죄는 2013년 2300여건에서 꾸준히 증가해 2017년 5400여건으로 5년 새 두 배 가까이 늘었다. 이른바 ‘몰래 카메라’가 포함된 통계이지만 상당수가 헤어진 연인이 유포한 촬영물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러한 사건은 가해자 혹은 피해자의 입장으로 버닝썬 사건, n번방 사건, 고故 구하라 등 유명 연예인들도 피해 갈 수 없었다. 필자도 예전에 우연히 들어간 불법 포르노 사이트에서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영상들이 수두룩했던 것을 보고 심히 충격 받았던 적이 있었다. 썸네일의 대상은 대부분 여성들이나 호텔 방 몰래카메라였다.

 

한 리벤지 포르노 피해자 A씨는 스브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나도 피해자가 되기 전까지는 어떤 한 여성의 삶을 망가뜨리는 영상이나 사진을 가십거리로 돌려본 적이 있었다. 그러나 피해자는 내가 보는 이 영상하나 때문에 지금 손목을 긋고 있다는 걸 알아 달라”고 호소했다. 또 다른 피해자 수민(가명)씨도 씨리얼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디지털 성폭력 N년차 피해자인데 아직까지도 평범한 일상 속에서 불쑥불쑥 트라우마가 올라온다. 경찰 조사를 위해 급속도로 퍼지는 영상 속 내 몸 구석구석을 직접 캡쳐하고 모아야 한다. 결국엔 내의 몸을 보면 피해가 떠오르고 불안해져 씻는 것도 힘들어 진다.”라고 말했다. 여러 피해자들은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다. 내가 죽으면 내 영상은 유작이 되어 가해자들은 더 좋아하고 비싼 값에 팔린다.”고 공통적으로 증언했다. 디지털 성범죄를 막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첫 번째는 일은 피해 이후 뒤바뀐 일상을 살아가는 피해자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그들의 삶에 공감하는 것이다.

 

평화롭던 연수의 일상이 하루아침에 무너졌다. 하지만 영화는 이 모든 과정을 어둡게만 그리지는 않았다. 오히려 세상 밖으로 다시 나오기 위해 노력하는 연수의 모습을 덤덤하게 표현했다. 괴롭고 두려워 죽겠음에도 불구하고 자신 빼고 아무렇지 않게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일상을 되찾아야했다. ‘연수’를 연기했던 배우 ‘하윤경’은 엘르와의 인터뷰에서 ‘연수는 정말 자기 일을 잘하고 싶었던 청춘이고, 누군가를 너무 사랑했던 여자고, 또 너무 예쁜 딸’이라며 ‘특수한 사람들의 얘기가 아니라 평범한 사람도 이런 상황에 처할 수 있다는 것을 느끼고 피해자를 선입견 없이 바라보길 바란다.’고 전했다. 영화의 마지막쯤 연수가 경아에게 “엄마 탓 아니야, 내 탓도 아니고.”라고 말했던 것처럼 지금도 어딘가에서 고통 받고 있을 ‘또 다른 연수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잘 버텨내고 있다고, 다시 일어설 수 있다고.

정여진(바람 저널리스트)  yess@liv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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