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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늘도 실험실로 출근한다동물실험의 윤리적 딜레마
  • 고경수(바람 저널리스트)
  • 승인 2022.05.19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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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랄프를 구해줘' 영화 포스터. 한국 휴메인 소사이어티 인터내셔널

랄프의 이야기를 들어주세요

지난달 24일 한국 휴메인 소사이어티 인터내셔널(HSI)은 실험 동물의 날을 맞이해 단편 영화 ‘랄프를 구해줘’ 한국어 자막 버전을 유튜브에 업로드했다. 해당 영화는 우리나라에 번역본으로 업로드되기에 앞서 작년 4월 국제동물보호단체인 휴메인 소사이어티 인터내셔널과 할리우드의 감독과 배우들이 모여 화장품 동물실험을 반대하기 위해 만든 스톱모션 영화이다.

 

영화는 화장품 회사의 실험용 토끼로 살아가고 있는 주인공 랄프를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여기서 랄프는 실험실에서 받아온 자신의 고통과 이에 따라 생긴 후유증 등을 아무렇지 않다는 듯 담담하게 전달한다. 하지만 그의 담담한 인터뷰와 다르게 실험실에 출근한 랄프는 투명 캐비넷에 머리만 빼놓은 채 갇혀, 알 수 없는 약물을 강제로 눈에 투여받는다. 이렇게 잔인하고 끔찍한 상황 속에서도 랄프는 인터뷰에서 자신은 괜찮다고 말하면서 퇴장한다. 그가 퇴장한 이후‘No animal should suffer and die in the name of beauty (아름다움의 명분 아래 어느 동물도 고통받거나 죽어선 안 된다)’라는 자막을 끝으로 영화는 마무리된다.

 

해당 영상이 처음 공개된 작년 4월에는 각종 SNS를 통해 #SaveRalph 운동까지 유행되며 전 세계적으로 동물실험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커졌다. 그리고 이에 화답하듯 멕시코는 작년 9월 전 세계에서 41번째로, 북미에 있는 국가 중에서는 최초로 화장품 동물실험을 금지하는 법안을 승인했다. 해당 영화 때문에 멕시코 동물실험 금지 법안이 생겼다고는 말할 수 없으나, 영화를 통해 동물실험의 잔인함이 전 세계에 알려졌음은 명백하다.

 

대한민국에서 희생된 동물들

실제로 영화에서처럼 립스틱, 마스카라 등 피부에 직접 닿는 화장품들을 개발할 때 안전성 검사를 위해 토끼, 기니피그, 쥐 등이 실험에 이용되고 있다. 이 외에도

의약품, 생활용품(샴푸, 바디워시) 등 안전성 확인이 필요한 제품들은 동물실험 후 출시되는 경우가 많다.

대한민국 동물실험 현황 그래프. 농립축산감역본부

 

농림축산검역본부에서 발표한 실험 동물 사용량에 따르면 2021년에만 약 488만 마리(총 4,880,252마리)의 동물들이 실험에 사용되었다. 이는 2020년(총 4,141,433마리) 사용된 실험 동물 마릿수 대비 17.8%가 증가한 양이다. 또한 농림축산검역본부가 발표한 동물실험 현황 자료를 보면 2012년부터 2021년까지 10년간 실험 동물 사용량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단순히 실험에 사용되는 동물이 많아지고 있다는 것뿐만 아니라 고통 등급이 높은 실험들도 꾸준하게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동물실험의 고통 등급은 실험 동물 수의사협회와 농림축산검역본부에서 함께 제작한「동물실험계획서 심의 가이드라인」에 명시되어있으며,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고통 등급은 A~E 등급으로 구분되어 있다. 이중 가장 고통 수위가 높은 E 등급의 경우 ‘극심한 고통이나 억압 또는 회피할 수 없는 스트레스 동반한다.’라고 정의되어 있다. 즉 원하는 연구 결과를 얻기 위해 강도 높은 실험이 증가하고 있고, 이에 따라 동물의 자연권은 훼손되고 있다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동물실험을 반대하는 목소리도 지속해서 나오고 있다. 한국동물보호연합은 실험 동물의 날이었던 지난 24일 서울 광화문 네거리에서 동물실험 중단을 촉구하는 반대 시위와 기자회견을 했고, 그 뒤 27일에는 서울 중구 서울시청 앞에서 지방선거 출마 후보자들에게 동물복지 정책을 촉구하는 시위를 했다.

 

동물실험으로 인한 동물 학대와 비윤리적인 실험을 최소화하기 위해 국회에서도 기존 법안을 개정하고 있다. 지난달 26일에는 동물보호법을 전부 개정하며 오는 2023년 4월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개정된 내용에는 동물실험에 대한 내용도 추가되었으며 기존 6개 조항으로 되어있던 동물실험에 대한 법안이 12가지로 확대되었다, 이 중에는 일정 기준 이상의 실험 동물을 보유한 동물실험 시행기관은 실험 동물을 전담하는 수의사를 두어야 한다는 조항이 추가되었다. 그 외에도 동물실험은 최대한 지양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

 

실험 동물의 필요성과 윤리적 딜레마

동물실험을 찬성하는 이들도 물론 존재한다. 찬성 측은 동물실험이 제품의 안정성을 확인하고 예측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수단이라고 말한다. 그들은 ‘동물실험을 대체할만한 기술들이 완전하지 않은 상황에서 무작정 동물실험을 금지하고 반대하는 것은 더 이상의 약품 등 안정성을 확인해야 하는 제품들을 개발하지 말라는 말과 같다’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들 또한 ‘비윤리적인 실험은 자제하고, 동물실험을 대체할 기술이 나온다면 동물실험은 줄여나가는 것이 맞다’는 입장이다.

한국 비건 인증 마크. 한국비건인증원 제공

일부 소비자들은 동물실험을 거치지 않고 출시된 비건 화장품 혹은 비건 제품을 소비하기도 한다. 해당 제품들은 한국비건인증원의 비건인증을 받은 제품들로 동물실험을 거치지 않은 것뿐만 아니라 어떤 동물의 성분도 포함되어 있지 않다. 이에 맞춰 뷰티업계에서도 소비자들의 윤리적 소비심리를 충족할 비건 화장품을 많이 출시하고 있다. 비건 화장품 브랜드 소르하는 ‘비건 제품이라는 특수성을 넘어서 화장품의 효능까지 살리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밝혔으며, 해당 브랜드를 이용하는 소비자들도 ‘비건 화장품이 기존 논비건 화장품과 효능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는 후기를 남기며 비건 화장품 소비를 권장했다. 소비자뿐만 아니라 의학계에서도 동물을 대체할 인공 피부조직 혹은 세포 배양에 힘을 쓰고 있다. 미국 환경보호청은 ‘오는 2035년까지 포유류 동물실험을 모두 중단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대체법 연구개발에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지금 당장 동물실험을 금지하거나 전면 실험을 중단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우리는 실험으로 인해 고통받는 동물들이 더 이상 생겨나지 않도록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동물들이 덜 고통스러울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나가야 한다. 만약 평소 자주 쓰는 화장품이 떨어졌다면 오늘은 비건 화장품을 한번 구매해 사용해보는 건 어떨까.

 

고경수(바람 저널리스트)  yess@liv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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