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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설강화’, 창작은 역사로부터 자유로워도 되는가

‘설강화: snowdrop’는 1987년 서울을 배경으로 어느 날 갑자기 여자대학교 기숙사에 피투성이로 뛰어든 명문대생 수호와 서슬 퍼런 감시와 위기 속에서도 그를 감추고 치료해준 여대생 영로의 시대를 거스른 절절한 사랑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다. 12월 18일 방영 시작되어 2화 기준 3.9%로 꽤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최근 디즈니플러스와 계약까지 맺어 표면적으로는 좋은 성적을 기록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시청자들의 반응을 보면 드라마를 둘러싼 상황이 그리 순탄치만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진 1> ‘설강화’ 포스터 /출처: JTBC 공식 홈페이지

드라마 방영 전 시놉시스를 공개한 후, 방영 중지 청원이 한 번 올라와서 약 20만 명이 동의했으며, 현재 방영 중지 청원이 다시 올라와 12월 27일 기준 약 35만 명이 동의했다. 작품 설명에서 ‘그들의 사랑이 이 땅을 가로막은 장벽을 녹이고 꽁꽁 언 서로의 마음을 녹여 희망과 위안의 꽃을 피우기 바라며’라고 했는데, 제작진의 기대와 달리 드라마 ‘설강화’는 오히려 시청자들의 마음을 꽁꽁 얼려버렸다.

<사진 2> 설강화 방영중지 청원

 

시작부터 난관에 봉착한 드라마

해당 청원에 따르면, 드라마 방영 이전 드라마 시놉시스 공개로 민주화운동을 폄훼하는 내용이라는 논란이 있었다. 민주화 운동과 전혀 관련 없는 대본이라는 제작진의 주장과 달리 민주화 운동과 관련한 내용이 드라마에 언급이 된 점을 지적하며 민주화 운동의 가치를 훼손시킨다고 주장하고 있다.

 

국가폭력에 저항하는 시민들과 국경을 넘어 연대하는 비영리단체인 세계시민선언에서는 12월 22일에 ‘설강화’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 예고를 했고, 세계시민선언 측에서 페이스북에 올린 게시물에 따르면, ‘설강화’ 제작사인 JTBC 스튜디오 대표와 만난 후 역사 왜곡이라는 오해 소지를 빚은 데에 진심 어린 사과를 요청했다고 한다. 그리고 24일 법정에서 심문을 진행했다.

 

이처럼 부정적인 반응이 연달아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많은 협찬사가 드라마 협찬 철회를 요청하였다. 싸리재마을, 도평요, 티젠, 조스라운지, 가니송, 한스전자, 흥일가구 등에서 드라마 내용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채로 협찬을 진행한 점에 대해 사과하며, 협찬을 취소하도록 조치했다고 글을 올린 상황이다.

<사진 3> 싸리재마을에서 올린 사과문/출처: 싸리재마을 홈페이지

 

 

해명에도 잠재우지 못한 논란

JTBC 측에서는 인스타그램 게시물을 통해서, ‘설강화’는 민주화 운동을 다루는 드라마가 아니며, 오히려 80년대 군부정권 하에 간첩으로 몰려 부당하게 탄압받았던 캐릭터가 등장한다고 해명했고, 민주화 운동이 아닌 1987년 대선 정국을 주요 모티브로 하고 있다고 하며, 군부정권,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 등 기득권 세력이 권력 유지를 위해 북한 독재 정권과 야합해 음모를 벌이는 가상의 이야기라고 했다. 또한, 안기부를 미화한다는 논란에 반박하며, 안기부 요원이 안기부 조직에 대해 비판적인 관점을 가진 캐릭터로 등장하며, 오히려 부패한 조직에 등을 돌리는 것으로 나온다고 하였다.

<사진 4> 설강화 스틸컷/출처: JTBC 공식 홈페이지

 

이러한 해명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논란은 잦아들지 않았다. 첫 번째 이유로는 민주화 운동과 간첩을 연관 지은 설정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민주화 운동을 주제로 한 드라마가 아니더라도 남주인공이 도망치고 안기부가 쫓아갈 때 ‘솔아 푸르른 솔아’가 민주화운동 당시 학생운동 때 사용되었던 노래인 ‘솔아 푸르를 솔아’가 배경음악으로 사용되었고, 여주인공이 남주인공을 운동권으로 오인해 구해주는 장면이 나온다는 점에서 민주화 운동의 내용이 전혀 들어가지 않은 드라마라고 주장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MBC 라디오 ‘표창원의 뉴스 하이킥’에서는 1987년에 민주화운동을 하다가 고문으로 세상을 떠난 박종철 열사를 추모하는 민주열사박종철기념사업회를 대상으로 ‘설강화’와 관련해서 12월 20일에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민주열사박종철기념사업회의 이현주 사무국장은 드라마 시청을 했다고 하며, “명백한 역사 왜곡 의도를 지닌 드라마”라고 주장하였다. 민주화운동을 하던 사람들이 안기부에 잡혀가 고문을 당하고 간첩으로 몰렸고, 안기부는 국민의 대다수가 간첩인데 민주화를 요구할 수 있냐고 주장했다며, 피해자가 명백히 존재하는데도 간첩과 민주화 운동의 키워드를 엮었다는 것에 대해 문제 삼았다.

 

1987년 시위에 참여했다가 최루탄을 맞고 쓰러진 이한열 열사를 추모하는 이한열 기념사업회 이경란 관장도 스포츠경향 인터뷰를 통해 ‘설강화’에 대한 의견을 제시했다. “광주항쟁을 포함한 민주화운동은 독재자가 시민을 학살하고, 권력을 잡은 것에 대해 대항하는 저항운동으로 이것을 북한과 스토리상 연관을 짓는 것 자체가 역사 왜곡이자 모욕”이라고 하였다. 이현주 사무국장과 마찬가지로 드라마 설정 자체를 먼저 문제 삼은 것이다.

 

그리고 1987년의 대선 정국 역시 민주화 운동이 격렬하게 일어나던 1987년에 포함되는 기간이라는 점에서 적절한 해명이라고 보기 어렵다. 드라마상에서 민주화 운동이 아예 언급되지 않거나 관련 장면이 등장하지 않는 것도 아니고 1987년의 대선 정국으로 국한했다고 주장하더라도 1987년의 시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고, 민주화 운동이 일어나던 시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마지막으로 안기부 요원 캐릭터에 관한 반박에도 부정적인 입장이 있다. 이현주 사무국장은 “안기부 팀장으로 등장하는 인물의 등장 장면에서 동료가 희생당하면서 안기부가 희생자로서 정의되어버리는 서사가 황당하다”고 하였다. 안기부 동료가 간첩을 잡으려다가 간첩 때문에 죽어서 안기부가 희생자인 것처럼 서사가 진행되는 것 대한 지적이다. 안기부 직원을 희생자로 정의하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고 하며, “안기부 직원이 부조리한 현실, 국가권력과 언론 또는 국민들로부터 진실을 외면받는 피해자가 돼 결국 혼자 진실을 꿰뚫고 정의를 구현하는 존재로 미화되고 있다.”고 지적하였다. 안기부 조직에 대한 비판적인 입장을 꼭 안기부 소속 직원의 미화를 통해 드러내야 했던 것인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옹호 입장

‘설강화’에서 역사 왜곡의 의도를 발견하기 어렵다고 주장하는 입장도 있다. 가톨릭대 국사학과 기경량 교수는 12월 21일 페이스북 게시물을 통해, 안기부 미화나 민주화 운동 폄훼의 의도성을 발견하기 어렵다고 주장하였다. 간첩이 운동권 학생으로 위장한 것이 아니라, 그저 여주인공이 간첩을 운동권으로 착각했을 뿐이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으며, 안기부 미화가 아니라 오히려 간첩 미화를 하는 드라마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간첩과 운동권의 관련성에 대한 내용이나 안기부 미화 자체에 대한 정면 반박을 하지는 않았다.

 

진중권 비평가는 21일 자신의 페이스북 게시물을 통해, “드라마는 그냥 드라마로 봐라, 제발.”이라고 하였다. “표현의 자유는 민주주의 사회의 초석입니다. 그 초석을 흔드는 자들은 단호히 배격해야. 도대체 무슨 권리로 다른 시청자들의 권리를 자기들이 침해해도 된다고 믿는 건지. 징그러운 이념깡패들의 횡포를 혐오합니다.”라며 표현의 자유를 강조했다.

 

표현의 자유는 얼마나 존중되어야 하는가

이현주 사무국장은 표현의 자유와 관련해서, “드라마 처음 시작할 때, 사건, 배경 모든 것이 실제와 관련 없다는 자막이 나오지만, 사실과 관련이 있는데 그 자막 하나로 없어지는 게 아니다”라고 하며, “가해자와 피해자가 여전히 있는 아픈 역사를 다룰 때는 콘텐츠를 만드는 분이 더한 무게를 갖고, 철저히 진실에 기반하고, 가상으로라도 배경을 써선 안 된다.”고 말했다.

 

이 드라마가 해외 OTT(Over The Top: 인터넷을 통해 볼 수 있는 TV 서비스)에 업로드되어서 해외 시청자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드라마라는 점에서 문제가 되기도 한다. 이경란 관장은 나치에 대한 평가는 전 세계인들이 공감하고 있지만, 민주화운동은 아직도 우리 내부에서 왜곡된 시각으로 바라보는 이들이 있다.”며 “한국 콘텐츠에 대한 전 세계인의 관심이 높은 상황에서 논란이 걸러지지 않고 공론의 장으로 나가는 것은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역사를 담고 있는 드라마의 표현의 자유는 얼마나 존중되어야 하는가. 나사렛대학교 방송미디어학과 양동복 교수는 ‘언론중재 130호 기고문’에서 역사드라마와 표현의 자유에 관해서, 드라마의 내용이 완전히 허구라는 것을 시청자에게 명확하게 인식시킨다면 논란의 여지가 줄어들겠지만, 내용을 역사적인 사실로 여길 만큼 혼동을 준다면 법적 소송까지 이어진다고 하였다.

 

‘설강화’ 제작발표회에서는 조현탁 감독이 “1987년도 서울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군부정권과 대선 정권이라는 상황 외에 모든 인물과 설정이 가상으로 설정된 창작물이다.”라고 언급한 상황으로, 역사드라마는 아니지만, 역사적 배경과 허구의 이야기가 합쳐진 드라마인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가상의 설정임을 강조한 제작진과 방송사의 주장과 달리 최소 34만 명 이상의 사람이 이 드라마를 단순한 허구적 이야기로 인지하고 있지 않은 상황이다. 역사적 사실과 관련이 없다는 해명을 덧붙인다고 하더라도, 시청자들이 실제 상황으로 오인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판단했다면 문제가 될 수 있다.

 

‘설강화’ 제작발표회 인터뷰에서, 조현탁 감독은 “정치적이나 이념적인 것보다는 북한의 어떤 한 사람에 대해 밀도 있게 들여다보고 싶었던 것 같다.”라며, “청춘남녀의 애절한 사랑 이야기를 위해서” 가상으로 설정된 장치들이라고 하였다. 북한의 한 사람의 이야기, 그리고 청춘남녀의 애절한 사랑 이야기를 표현하기 위해, 가상의 배경도 아니고 다른 시기도 아닌 1987년도 서울을 배경으로 삼아야만 하는 당위성이 있었던 걸까.

 

방송사의 정면돌파

JTBC는 23일 오후, 드라마 초반 전개에서 오해가 생긴 것 같아서 오해를 해소하기 위해 방송을 당겨서 특별 편성을 하기로 했다며 정면돌파를 선택했다. 5회까지 조기 방영을 한 결과, 시청률이 4회 기준 1.7%까지 하락했다. 그나마 높았던 시청률까지 떨어진 상황이다. 앞으로 전개상 예상했던 시놉시스와 캐릭터와 전혀 다른 방향성으로 진행된다고 하더라도, 앞서 언급된 논란들이 해소되지 않는다면 드라마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은 사그라들기 쉽지 않을 것이다. 드라마 상영을 앞당기는 ‘정면돌파’가 아닌, 방영 중지를 요청하는 시청자 여론에도 집중해서 드라마 자체의 문제를 파악하려는 ‘정면돌파’가 더 필요하지 않을까.

 
 
장효빈 지속가능저널 인턴기자
 
 

장효빈(ESG기자단)  sarkakore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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