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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리 29인치 마네킹이 나타났다다양한 신체를 가진 내 몸을 사랑하자는 ‘보디 포지티브 운동’

‘마네킹 몸매’. 마네킹처럼 날씬한 몸매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네이버에 마네킹 몸매를 검색하면 여자 연예인의 몸매에 마네킹을 빗대서 표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여전히 미적 기준이 마른 몸매에 맞춰져 있는 것이다. 이렇게 키 크고 마르기만 한 마네킹의 모습을 깨는 시도가 국내에서 이뤄졌다. 이랜드가 운영하는 SPA 브랜드 스파오가 국내 패션 브랜드 최초로 ‘사이즈 차별 없는 마네킹’을 7일부터 매장에 비치했다. 실제 사이즈 차별 없는 마네킹은 스파오 코엑스몰점과 스타필드 안성점에서 볼 수 있다.

사이즈 차별 없는 마네킹은 스파오 코엑스몰점 지하 1층으로 내려가 오른쪽으로 꺾으면 볼 수 있다. 기존 마네킹에서 교체된 것이 아니라 기존 마네킹과 함께 배치됐다. 남녀 체형 하나씩 만들어진 마네킹은 기존 체형과 비교가 쉽도록 기존 스파오에서 사용하던 남녀 마네킹 앞에 놓였다. 여성 마네킹의 키는 필자보다 작았다. 마네킹이 눈에 잘 띄는 공간에 있거나 큰 홍보 팻말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스파오를 찾은 손님은 마네킹을 한 번 흘끔 쳐다보고 옷구경을 했다.

(사진1 스파오 코엑스몰 사이즈 차별 없는 마네킹)

‘사이즈 차별 없는 마네킹’은 대한민국 남녀 평균 사이즈로 제작됐다. 남성 마네킹의 키는 172.8cm에 허리둘레 77cm, 여성 마네킹의 키는 160.9cm에 허리둘레 76cm이다. 국내 25~34세 남녀 몸매 데이터를 기반으로 익숙한 체형의 모습을 형상화했다. 기준 패션 매장에서 사용하는 마네킹은 남성의 키가 190cm, 여성의 키가 184cm로 평균 체형과는 거리가 멀다.

이 마네킹은 지난 4월 국내 내츄럴사이즈 모델 ‘치도’와 ‘샌드박스네트워크’의 보디 포지티브 캠페인 ‘에브리, 바디’에서 펀딩을 통해 제작했다. 사회가 만든 미적 기준을 흔들어보자는 ‘Shake the frame, Every, Body’라는 슬로건으로 진행한 펀딩은 목표 대비 227%에 달하는 금액이 모였다.

스파오 고객도 자신의 체형에 맞는 옷을 보여주는 마네킹의 등장을 반겼다. 이날 스파오에서 쇼핑하고 있던 시민 박현진은 “소비자는 옷 태를 보고 구매를 결정하게 되는데 지금까지의 마네킹은 실용성이 없었다”며 “소비자의 입장에서 평균 몸매에 가까운 마네킹을 보니 실질적인 구매에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평균 몸매를 가진 마네킹에서 더 나아가 다양한 체형을 담은 마네킹이 나오기를 기대하기도 했다. 스파오에서 자주 옷을 구매하는 김혜나는 달라진 스파오의 현실몸매 마네킹을 보고 “마네킹이 다양화되는 건 좋은 신호”라며 “꼭 평균 체형만이 아니더라도 다양한 유형의 마네킹을 세워둬서 내 몸에도 꼭 맞는 마네킹을 언젠가 볼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패션업계에서 한국인 표준체형 및 소비자 실제 체형에 맞춰 옷을 홍보하는 마케팅은 자신의 몸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사랑하자는 '내 몸 긍정주의(보디 포지티브, body positive)'의 영향으로 해석된다. 불편하고 예쁜 옷이 아닌 편안함과 자연스러움을 선호하는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는 것이다.

패션 업계에 불어오는 보디 포지티브의 또 다른 예로는 코오롱FnC가 선보인 남성복 온라인 브랜드 ‘아모프레’가 있다. 지난 3월 코오롱FnC는 코미디언 조세호와 협업해 한국 남성 표준 체형에 맞춘 브랜드 '아모프레'를 론칭했다. 아모프레는 대한민국 남성 평균 신장인 168~173㎝의 체형을 연구해 옷을 만든다. 첫 번째로 선보인 상품인 청바지는 판매 개시 5일 만에 완판했고, 6개월 만에 5차 재주문에 들어갔다. 아모프레의 인기는 거품이 아니었다. 아모프레는 올가을부터는 재킷·니트·카디건 등 상품군을 늘리고 있다. 지난 8일 여의도동 ‘더현대 서울’에 팝업스토어를 내며 첫 오프라인 진출에도 도전했다.

(사진2 남성복 온라인 브랜드 아모프레 홈페이지)

해외에서는 이미 이런 트렌드가 널리 퍼져있다. 인기 슈퍼모델이 대거 출연하는 패션쇼로 상징됐던 미국 속옷 브랜드 '빅토리아 시크릿'도 이미지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빅토리아 시크릿은 획일화된 미의 기준을 강요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하지만 최근 마케팅 기조를 바꾸고 있다. 빅토리아 시크릿은 지난 2019년 일반 여성의 몸매에 가까운 플러스 사이즈 모델을 발탁하는 등의 변화를 시도했다. 최근에는 동성애자 축구선수, 브라질 출신 성전환 모델, 임산부 등 다양한 배경을 지닌 여성들을 모델로 내세웠다. 모델 기용과 더불어 전 매장에 플러스 사이즈 마네킹을 추가하고, 임산부 속옷과 산후 기능성 보정 속옷 및 수영복 분야 영역을 확대하기로 했다.

세계 최대 스포츠의류 브랜드 나이키도 플러스 사이즈 마네킹을 선보여 반향을 일으켰다. 나이키는 지난 2019년 영국 런던 메인 쇼핑거리인 옥스퍼드 스트릿에 뚱뚱한 체형의 모습을 담은 마네킹을 비치했다. 다양한 몸을 배제하는 것보다 다양한 체형을 가진 이들이 건강관리에 참여하도록 장려했다며 고무적인 평가를 받았다.

(사진3 플러스 사이즈 모델)

평균 몸매를 본뜬 마네킹은 지난 미적 기준으로 점철된 신체를 해체하고 낯선 신체를 직면하게 됐다. 보디 포지티브 운동이 미를 위해 자기 관리하기 싫은 사람들의 변명거리라며 비판을 받기도 하는 이유이다. 하지만 사회가 바라는 미를 위해 아직까지 프로아나와 같은 마른 몸매를 만들거나, 미용체중을 맞추려는 과도한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신체에 강요된 아름다움에서 벗어나 이상적인 몸매에 그대로 자신을 맞추고 있다. 내 몸을 사랑하자는 보디 포지티브 운동은 마른 몸매만이 미적 가치를 지닌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게 한다. 마르고, 키 큰 모습이 아닌 다양한 신체의 모습을 인정하고, 존중할 수 있는 것이다.

하루 아침에 ‘있는 그대로 괜찮다’고 생각하기란 어렵지만, 보디 포지티브 운동이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자신의 몸을 긍정하도록 사회의 점진적인 변화를 이끌 것이다. 다양한 몸매의 마네킹을 선보인다는 것은 앞으로 그 마네킹에 맞춰서 다양한 사이즈와 유형의 옷을 추구하겠다는 패션계의 포부나 다름없다. 사회 곳곳에서 이상적인 몸매를 바라는 사회적 시선을 버리고 다양한 신체를 인정하고 보여준다면 다양한 미를 새롭게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현경주(ESG기자단)  sarkakore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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