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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엔딩의 이면
  • 조승희 지속가능저널 인턴기자
  • 승인 2021.10.15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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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기사는 영화 〈에린 브로코비치〉의 줄거리를 다수 포함하고 있습니다.

 

영화 〈에린 브로코비치〉는 미국의 실제 사건을 각색한 영화로, 환경 영화를 언급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대표적인 고전 작품이다. 실제로 영화 속 내용처럼 미국 변호사 에린 브로코비치는 자국의 에너지회사를 상대로 5년 법정 분쟁을 벌인 끝에 한화 약 3,717억 원에 달하는 3억 3,300만 달러를 배상받은 바 있다. 그러나 온전히 환경적인 측면에서 보았을 때 영화 〈에린 브로코비치〉의 결말은 정말 ‘해피엔딩’이라고 할 수 있을까?

 

영화 〈에린 브로코비치〉

〈사진1〉

영화 〈에린 브로코비치〉(출처: 네이버 영화)

 

〈에린 브로코비치〉의 주인공 에린에게는 두 번의 이혼 경력과 세 아이가 있다. 전 재산이라고는 16달러의 은행 잔고가 고작이다. 엎친 데 덮친 격이라고 교통사고까지 당하고 만다. 그러나 그 교통사고에서 에린은 완벽한 피해자였던 덕분에 그녀의 변호사로 선임된 에드는 승소를 직감하고 법정에 들어서는데, 에린의 옷차림과 이혼 경력, 현재 경제 상황을 들며 그녀가 일부러 사고를 당한 것이라는 주장을 펼치는 상대 변호사의 도발에 넘어간 에린이 법정에서 막말을 해 패소하게 된다. 결국 가진 것 하나 없이 막막한 상황에 놓이게 된 에린은 다짜고짜 변호사 에드의 사무실로 찾아가 잡무라도 시켜달라며 눌러 앉는다. 영화의 본격적인 이야기는 그렇게 일을 시작한 에린이 수북히 쌓인 서류들 중에서 이상한 의학기록들을 발견하면서부터 시작한다.

 

‘부동산 구매 제안서’안에 포함된 혈액 샘플과 병원 진료 기록들에서 이상함을 느낀 에린은 직접 헝클리 지역의 주민들을 찾아간다. 주민들에 의하면 집을 팔겠다는 의사도 밝히지 않았는데 대기업인 PR&E에서 집을 구매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게다가 PG&R 측에서 지역 주민들의 진찰비까지 지원하고 있는 상황. 에린은 대기업의 이유 없는 호의를 의심하며 조사를 계속했다. 그 결과 PG&E의 공장에서 지속적으로 인체에 유해한 성분인 ‘크롬’이 유출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지역 주민들은 해당 성분 때문에 다양한 질병을 앓아왔지만, 주민들은 오히려 자신들의 질병이 PG&R는 전혀 상관이 없는 일이라며 그를 부정했다. 여태까지 PG&R로부터 지원받은 정기검진에서 기업에 매수당한 의사들이 주민들의 질병이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이라고 이야기해왔고, PG&E의 직원들 역시 그들의 집에 찾아와 자신들의 공장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며 주민들을 세뇌시켜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에린은 포기하지 않았다. 소송에 드는 비용을 이유로 해당 사건을 조사하기를 꺼려하는 에드를 설득해 법적 분쟁을 시작하고, 직접 주민들이 앓아온 질병들을 연구하기도 했다. 공장 주변의 환경도 면밀히 조사했다. 주민들을 설득하여 160여장의 진술서와 411명의 고소인도 모았다. 280억 달러의 자산을 가진 대기업과의 법정 다툼은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에린은 결국 승리를 거머쥔다. 영화는 에린이 지역 주민에게 막대한 배상금의 액수를 알려주며 해피엔딩으로 끝이 난다.

 

해피엔딩! 해피엔딩?

 

인간의 입장에서 영화 〈에린 브로코비치〉의 결말은 분명 해피엔딩이 맞다. 모두가 불가능할 것이라고 입을 모았던 대기업과의 법정 다툼에서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여성 변호사는 미국 역사상 유래 없는 막대한 배상금을 얻어내며 값진 승소를 일궈냈다. 부당한 피해를 받은 지역 주민들은 정당한 보상을 받았으며, 환경오염이 얼마나 사람들에게 큰 피해를 끼치는지를 보여주고 쉽게 묵과할 만한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했다. 그러나 앞서 단서를 단 것처럼 이는 ‘인간’의 입장에서 본 해피엔딩일 뿐이다.

 

만약 해당 지역이 사람이 살지 않는 곳이었다면 어떨까? 그래도 PG&R의 만행이 문제가 되었을까? 또한 그들이 ‘인간’피해자인 주민들에게 ‘배상금’을 지불한 것으로 그들이 저지른 행위에 대한 책임을 다하였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까?

 

영화는 그들이 초래한 심각한 환경오염보다는 주민들이 피해를 보상받는 과정, 가진 것 하나 없는 주인공 에린 브로코비치가 맨땅에서 성공을 거두는 과정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러나 이 사건의 피해자는 비단 인간뿐만이 아니다. 유출된 크롬 성분에 의해 떼죽음을 당한 인근 하천의 물고기들, 오염된 물을 마시고 죽은 동물들, 기이하게 뒤틀린 식물들. 그들 모두가 피해자다. 그러나 영화 속에서, 그리고 영화의 바탕이 된 실제 사건에서 기업은 ‘인간’피해자에게만 배상을 한다. 그를 두고 모두가 입을 모아 ‘해피엔딩’이라고 한다. 자, 이제는 다시 한 번 우리 스스로에게 되물어볼 때이다. 정말 해피엔딩인가?

 

 

진정한 해피엔딩을 위하여

 

인간은 자연의 주인이 아니다. 인간 이외의 모든 존재를 그저 인간을 위한 수단으로 여기는 것은 이제 구시대적인 사고로 치부된다. 우리는 그저 생태계의 일부이며, 잠시 지구에 머무는 생명체일 뿐이다. 자연이 없으면 인간도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항상 이 점을 기억해야만 한다. 영화 〈에린 브로코비치〉가 개봉한지 2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다. 그간 환경에 대한 관심도, 사람들의 시민 의식도 많이 높아졌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인간’외의 피해자에게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영화와 비슷한 환경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사람들은 ‘인간’피해자들에 대한 배상에만 초점을 맞춘다. 배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분노하고, 제대로 된 배상이 이루어지면 ‘해피엔딩’으로 사건을 마무리 한다. 그러나 이제는 거기에서 멈추기만 해서는 안 된다. 인간과 인간 간 거래의 매개일 뿐인 ‘돈’으로서의 보상만 볼 것이 아니라 그들이 환경을 복구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는지, 그 노력이 지속적이고 충분한 것인지를 계속해서 감시해야 한다. 인간이 겪는 피해뿐만 아니라 환경이 겪는 피해까지 그 관심을 넓혀야 한다. 보다 넓은 관점에서의 진정한 ‘해피엔딩’을 위해서 우리가 노력할 때이다.

조승희 지속가능저널 인턴기자  horizonnvisio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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