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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포르노, 과연 옳은 것일까?
  • 백가영 지속가능바람 온라인 저널리스트
  • 승인 2021.10.14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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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을 찍는 포토그래퍼 / 출처 : 게티이미지 코리아

 

가난과 포르노, 둘이 어울려?

가난 포르노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다들 의아해 할 것이다. 가난과 포르노, 두 단어는 전혀 어울린다고 생각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가난’은 살림살이가 넉넉하지 못함을 뜻하고, ‘포르노’란 인간의 성적 행위를 묘사한 것들을 뜻하는 말이기에 두 단어 사이의 연관성을 찾기 힘들다. 그렇다면 ‘가난 포르노’란 도대체 어떤 뜻을 갖고 있을까?

 

가난 포르노는 빈곤 포르노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이는 가난의 정도를 조작이나 왜곡을 통해서라도 자극적으로 노출을 하여 동정심을 유발하고 사람들의 기부금을 유발하게 하는 현상을 의미한다. 국민들의 기부금을 더욱 많이 걷기 위해 방송사는 자극적인 영상을 광고를 통해 송출을 하는 가난 포르노의 형식을 주로 사용하고 있다. 조작이든 왜곡이든 간에 기부금을 많이 걷게 되면 상대적으로 불우한 이웃들에게 기부금이 많이 돌아가기 때문에 좋은 게 아닐까라는 의견도 존재하지만 더욱 가난하고 불쌍하게 보이는 연출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 과연 좋은 것일까 하는 의견 또한 존재한다.

 

가난포르노, 생각보다 우리 주변에서 쉽게 접한다?

불우한 이웃들을 돕기 위한 곳들을 생각해 보면 우리 머릿속에 떠오르는 몇 개의 단체들이 있다. 그들의 광고는 우리가 쉽게 볼 수 있다. 가볍게 지나쳤던 광고들을 다시 복기해보자. 어떠한 내용이 주로 들어가 있었을까? 왜소해 보이는 흑인 아이가 물 대신 흙탕물을 먹거나, 돈을 벌기 위해 소량의 임금을 받고 땡볕에서 하루 종일 돌을 깨는 작업을 하거나 무거운 짐을 나르는 장면이 떠오를 것이다. 한동안 그러한 장면을 송출하며 기부금을 유도하였으나 잠시 동안은 기부금을 통해 아이들이 학교를 다니게 되고 직업을 갖게 되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담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2020년도부터는 다시 빈곤의 이야기를 담기 시작하였다.

 

또한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유튜버 영상, 꽤나 많은 사람들이 이 영상을 접했을 것이다. 두 남매가 한 식당에 들어와 음식을 시킨다. 그러나 오빠는 여동생의 음식만 시킬 뿐, 자신의 음식을 시키지 않는다. 이를 본 식당 사장님은 두 아이들에게 상처를 받지 않게끔 서비스라며 친절하게 두 아이들 모두에게 음식을 주고 포장까지 해주며 돈을 받지 않았다. 많은 네티즌들은 이 식당이 어디냐며 돈쭐을 내주어야 한다고 감동이라는 댓글을 달았었다. 그러나 이 영상이 주작 의혹이 쏟아지고 있는 상태이다. 우연하게 찍은 영상 치고 너무나도 다양한 각도, 구인구직 사이트에서 가난한 아이의 연기를 해줄 수 있냐는 아이 연기자 공고를 해당 사이트에서 올렸다는 의혹이 생겼다. 이러한 의혹 속, 해당 유튜브 영상을 비롯한 커뮤니티 댓글 창까지 다 막아 놓은 상태이다.

 

빈곤포르노를 마케팅에 활용한다?

또 다른 예시를 보자. 아카데미 시상식 4관왕을 차지한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을 통해 많은 외국인들이 우리나랑 관광을 오며 기생충 촬영지에 들리곤 한다. 이러한 현상을 지자체에서 마케팅으로 활용하려는 시도를 보였다. 영화에서 나온 반지하 세트를 복원하거나, 투어 코스를 만들는 것을 예시로 들었다. 그러나 이런 계획에 많은 사람들은 불편함을 드러냈다. 누군가에게는 떠올리기 싫은 기억이고,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너무 힘든 삶을 누군가에게는 하나의 상품밖에 되지 않는 것이냐, 가난을 상품화하는 것이냐라는 의견을 내었다. 또한 그 주변의 주민들의 의견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계획이라는 의견 또한 나오고 있다.

 

단순한 관광일 뿐, 그 어떤 사람도 세트장을 보고 행복함을 느끼지 않는다, 이를 통해 지역의 경제가 살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가난이라는 것을 상품화하는 것 자체가 옳다고 생각이 들지 않는다. 또한 흥행 드라마나 영화의 세트장을 복원하여 지역 경제에 도움이 된 사례가 많지 않다. 예를 들어 굉장한 흥행을 했던 드라마 ‘태양의 후예’ 촬영장을 철거하였다가 11억을 들어 다시 복원하였으나 결국은 수익을 벌고 있지 못한 상태이다. 즉, 가난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기식으로 활용하는 것조차 잘못된 행동이지만 이러한 상품화는 이익 또한 제대로 벌어오지 못할 확률이 높다는 것을 보여준다.

 

편견과 자책감을 생성하는 가난포르노?

후원 모금을 유도하는 광고들을 떠올려보자. 대부분의 등장인물들은 누구였을까? 대부분 흑인, 아프리카 아이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이는 우리에게 또 다른 편견을 안겨준다. “흑인은 대부분 가난하다, 그 나라는 원래 가난하지”라는 생각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인종차별을 유도할 가능성 또한 매우 높고 그 나라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유발할 수 있다. 그리하여 이러한 상황을 비꼬기 위한 광고까지 등장하고 있다. 흑인들이 백인을 후원하는 광고나 연출자들이 대사나 구도를 알려주고 그대로 연기하라고 시키는 내용의 광고를 내놓고 있다. 꼭 흑인들이 불우한 대상이 된다는 사실은 존재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머릿속에 주변 미디어를 통해 심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또, 후원금을 모금하는 광고의 문구를 보면 우리의 자책감을 생성한다. 지금 당장 후원금을 받지 못하면 아이들이 죽을 위기에 처해있다, 작은 돈을 아끼려다가 한 생명을 죽게 만들 것이냐는 내용을 은근하게 담아 광고에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내용이 불편하여 후원 광고 자체를 스킵하고 다른 채널로 넘기는 시청자들 또한 매우 많다.

 

꼭 가난포르노를 활용해야할까?

광고를 통해 불우한 아이를 후원했고 그 아이를 길을 가다 우연하게 마주쳤는데 그 아이가 스마트폰을 들고 있다고 가정해보자. 과연 우리는 어떠한 생각이 들까? 먼저 스마트폰을 소유하고 있는 것 자체에 대해 우리는 다양한 생각을 가질 수 있다. “요즘 같은 세상에 스마트폰 들고 있는 일이 신기한가”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가난하다면서 스마트폰을 들고 있다고?”라는 생각이 들게 할 수도 있다. 후자의 생각이 들고 나의 기부금이 스마트폰을 사용하는데 쓰였다며 기부를 멈출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은 교묘하게 후원자와 후원을 받는 자의 관계가 갑을 관계로 이어지게 만든다. 그 아이가 선물을 받았을 수도, 핸드폰이 꼭 필요한 상황이었을 지도 모르는데도 불구하고 그 자체에 대한 부정적인 판단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생각이 너무 꼬였다, 왜 이렇게 세상을 불편하게 바라보냐”라는 비판이 나올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가난 포르노를 사용하는 광고는 또 다른 불편과 편견을 낳는다. ‘가난’이라는 것 자체에 초점을 두기보다는 후원금을 통해 희망이 생기고 새로운 삶을 살게 된 이웃들의 모습을 보여주면 어떨까?

 

백가영 / 지속가능 바람 온라인 저널리스트 (http//blog.naver.com/horizonnvision, horizonnvision@naver.com)

 

 

 

 

백가영 지속가능바람 온라인 저널리스트  horizonnvisio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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