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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아나 1년 차 ‘이다’를 만나다

“‘프로아나’를 통해 얻은 행복이 굶었을 때의 고통보다 훨씬 크니까 벗어날 수가 없는 것 같아요.”

 

최근 트위터 등의 SNS를 중심으로 ‘프로아나’(pro-ana)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프로아나는 ‘찬성하다’라는 뜻의 ‘pro-’와 거식증이라는 뜻의 ‘anorexia’가 합쳐진 합성어 ‘프로아노렉시아(pro-anorexia)’의 준말로 거식증을 찬성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의 생활방식을 아우르는 신조어이다. 그들은 무척 마른 몸을 동경하며, 극단적인 절식으로 체중을 감량한다. ‘뼈말라(뼈가 보일 정도로 마른 몸)’, ‘먹토(먹고 토하기)’, ‘씹뱉(씹고 뱉기)’ 등과 같은 그들만의 은어를 사용하여 소통하거나, ‘효과적으로 굶는 팁’과 ‘프아 자극 사진(극단적으로 마른 몸 사진)’을 공유하기도 한다. 기존 기성 언론에서 다루지 않는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기 위해, 트위터에서 활동 중인 프로아나 ‘이다(가명)’와 비대면 전화 인터뷰를 진행했다.

<사진 1>자신의 몸매를 과도하게 인식하는 여성의 이미지/pixabay

 

160kg에 42kg, 프로아나 1년 차 고등학생 ‘이다’와의 인터뷰

전화기 너머 수줍은 목소리로 인사를 건넨 그는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2학년 학생이었다. 자신을 프로아나 1년 차 여성으로 소개했다. 키와 몸무게는 160kg에 42kg으로, BMI상 저체중에 해당하는 상태였다. 그는 프로아나를 어떻게 처음 접했냐는 질문에 “트위터를 보다가 프로아나라는 걸 발견해서 거기에 들어가 봤는데, 내가 지금 겪고 있는 상황이랑 너무 똑같아서 ‘아, 내가 프로아나구나.’라고 생각하게 됐다. 그걸 보고 (프로아나용) 트위터 계정을 새로 만들게 됐다.”고 답했다. 트위터를 통해 자신의 상태와 닮은 프로아나를 접하고 큰 동질감을 느껴 자신을 프로아나로 규정지은 것처럼 보인다. 그의 말에 의하면 프로아나는 주로 트위터와 네이트판을 통해 소통하고 정보를 주고받는다. 하지만 본인은 현재 트위터로만 프로아나 활동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자신을 다이어터가 아닌 프로아나로 규정지은 이유에 대해선 “뭔가 다이어터라고 하면 건강하게 샐러드 먹고 운동하는 사람들을 이야기하는 것 같은데, (나는) ‘먹토(먹고 토하기)’를 하거나 식욕억제제도 사용하면서 건강하지 않은 방법으로 체중을 감량하니까 프로아나라고 생각한다. (다이어터보다) 강박증이 좀 심하다.”고 답했다. 그에 따르면 다이어터와 프로아나 모두 체중 감량을 목표로 하지만, 프로아나는 다이어터와 달리 먹토, 씹뱉 등의 극단적인 방법까지 사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루에 100kcal 이하로 섭취… 이렇게 살 바에는 사는 의미가 있나 싶기도 해

그는 프로아나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정해둔 4가지 정도의 규칙이 있다고 밝혔다. 그 규칙은 다음과 같다.

 

▶하루에 100kcal 이상은 먹지 않는다.

▶하루에 한 시간 정도 유산소 운동을 한다.

▶물을 최대한 많이, 적어도 2L 정도를 마신다.

▶만약에 폭식을 하거나, 주위의 권유로 음식을 먹게 되면 무조건 ‘먹토’를 한다.

 

일상에서 위 네 가지의 규칙은 무조건 지킨다고 한다. 생각보다도 혹독하고 엄격한 규칙에 놀라 “일상생활이 매우 힘들 것 같다.”고 말을 건네니, 물론 일상생활에 어려움이 많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일단 힘이 없어서 공부를 못하니까 공부를 아예 놨다. (이로 인해) 성적도 안 좋아졌다. 또 건강도 안 좋아졌다. 먹토를 하면 얼굴형이 되게 이상해진다. 배고프니까 밤에 잠도 안 온다.”고 말했다. 덧붙여 프로아나로서 힘든 점이 있냐는 질문엔 “(프로아나 상태를 유지하려고) 공부를 아예 안 하다 보니까 미래에 (진로는) 어떻게 뭘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이게 진짜 막막한 점이다, 또 건강도 안 좋아지니까 이렇게 살 바에는 사는 의미가 있나 계속 고민도 하게 된다.”고 다소 충격적인 대답을 내놓았다. 그는 프로아나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학업, 건강, 숙면을 포기한 것에서 더 나아가, 인생의 진로와 방향에 관련해서도 큰 우울감을 느끼고 있는 상태였다. 프로아나가 그의 삶 전반을 지배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행복의 수단이었던 ‘마른 몸’이 결국엔 강박으로

그렇다면 그는 왜 ‘프로아나’ 상태의 문제를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음에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그는 프로아나 전과 이후 삶에서 바뀐 부분이 있냐는 질문에 “원래 중학교 때는 굉장히 뚱뚱했고, 그래서 왕따를 당했다, (그런데) 고등학교 올라와서 살이 빠지니까 친구가 많이 생겼다.”고 답했다. 그는 왕따의 원인과 인기의 이유를 ‘살의 유무’, 궁극적으론 외모의 문제로 인식하고 있었다. 이는 ‘왜 나는 프로아나를 떠나지 못하나’에 대한 답변과도 일맥상통한다. 자신이 프로아나를 떠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우선 살이 빠지고 마른 몸을 가지니까 전이랑 거의 비교할 수도 없게 사랑받았다. 그게 너무 좋았다. 그리고 (살이 빠진 후) 친구도 생기고 처음으로 연애도 해봤다.”고 털어놨다. 기사 첫 문단에서도 인용했듯이 “‘프로아나’를 통해 얻은 행복이 굶었을 때의 고통보다 훨씬 크니까 벗어날 수가 없는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체중 감량을 통해 얻은 마른 몸이 친구, 이성에게 얻는 인기의 비결이라고 생각하며, 이를 통한 행복과 ‘프로아나’를 유지하며 얻는 고통 중 행복이 더 크다고 여기고 있었다.

물론, 그도 ‘프로아나’ 상태에서 벗어나려고 시도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탈프아(프로아나 상태에서 벗어나는 것)’하려고 정말 시도를 많이 해봤다. 트위터 계정을 삭제한 적도 정말 많고. 그런데 이 강박증이라는 게 쉽게 고쳐지지 않았다, (결국 프로아나 상태로) 계속 돌아오게 됐다.”고 말한 점에 빗대어 볼 때, 인기와 행복의 수단으로 인식하고 시작한 프로아나가 결국 강박증의 형태로 번지게 됐음을 확인할 수 있다.

 

프로아나를 고립시키는 싸늘한 사회

가족, 친구 등 주변 사람들은 자신이 프로아나인 것을 알고 있냐는 질문엔 아무도 모르고, 아무한테도 알리지 않았다고 답했다. 주변 사람들에게 프로아나 상태임이 밝혀지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하는 듯했다. 프로아나라는 것을 밝히면 주위에서 말리거나 이상하게 생각할까 봐 일부러 숨기는 상태라고 덧붙였다. 프로아나로서 힘든 점을 인식했을 때 병원 혹은 상담을 생각하거나 시도해본 적이 있냐는 질문에도 “누구한테 말하는 것 자체가 좀 두려워서 (시도하지 못했다). 상담을 받으려고 해도 부모님 동의가 필요하다고 해서 (역시 시도하지 못했다).”고 답했다. 그는 언론에서 프로아나를 다룬 기사를 본 경험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프로아나를 다루는) 뉴스를 접한 적 있다. 요즘 트위터 같은 데서 프로아나가 늘어나고 있고 (그런 내용을) 좀 부정적으로 말하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댓글에서 (프로아나를) 완전 정신병자 취급하고 한심하다고 하는 사람이 많아서 기분이 좋지 않았다.”고 말했다. 언론이 프로아나를 다루는 기존의 방식이나, 대중이 프로아나에게 보이는 차가운 반응은 그들을 더욱 움츠러들게 하는 원인이 됐다.

<사진 2> 움츠러드는 프로아나/pixabay

 

‘음지의 양지화, 미디어가 노출하는 연예인의 마른 몸’. 프로아나는 사라질 수 없다.

프로아나가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는데, 사회에 프로아나를 생산하는 요소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냐는 질문에는 ‘음지의 양지화’와 ‘미디어가 노출하는 연예인의 마른 몸’을 꼽았다. “원래 (프로아나는) 트위터에서 되게 음지 문화였는데 이게 점점 양지로 올라오고 있고, 또 사회에서는 사람들이 마른 몸을 무척 선호한다. 연예인 중에서도 ‘극단적으로 마른’ 여성 연예인을 되게 찬양하고 그러니까 계속 (프로아나가 생산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프로아나’로서 사회에 바라는 점이 있냐는 질문에 고심하던 그는 “이게 막 내가 원해서, 하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니고 억지로? 억지로라고 해야 하나. 고치기 힘든 병 같은 거라서. 차갑게 바라보기보단 조금 따뜻하게 바라봐주고 그랬으면 좋겠다.”고 부탁했다.

 

이제는 프로아나에게 향하는 화살을 돌려야 할 때

수화기 너머로 만나본 1년 차 프로아나이자 고등학생 ‘이다’. 인터뷰 내내 조금은 앳된 목소리로 명확하게 자신의 의사를 전달할 줄 아는 그는 기존 언론이 그리는 ‘정신병자’와는 거리가 멀었다. 지금 바로 우리 옆에도 존재하는 친구이자 연인이자 딸이자 동생의 모습과 더 가깝다. 뼈가 앙상할 정도로 마른 몸을 동경하고, 그런 몸을 가지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프로아나’ 현상은 물론 좌시할 수 없는 사회 문제다. 하지만 우리는 프로아나 현상을 그들의 ‘개인’적인 문제로 치부하기보다 ‘사회’의 문제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들이 왜 극도로 마른 몸을 동경하게 됐는지, 왜 음식물을 ‘먹토’하거나 ‘씹뱉’하면서까지 마른 몸에 도달하고 싶어 하는지. 왜 프로아나가 없어지기는커녕 점점 더 확산되고 증가하는지. 그동안 우리는, 그리고 언론은 문제의 화살을 프로아나족에게만 돌린 것은 아닌지 돌아볼 때다.

 

 

 

김나현(ESG 기자단)  sustainability@sjournal.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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