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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을 통해 세워지는 문화적 권력과 세계 질서- ‘권력 정당화’의 수단이 된 올림픽

‘국가의 위상’과 올림픽의 관계

한국은 코로나19의 대처에서 명실상부한 ‘우등’ 국가였다. K-방역이라 불리는, 방역에 중요한 역할을 한 한국의 행정 능력은 한국인들의 자부심이 되었음은 물론. 전 세계에서도 이름을 떨쳤다. 뿐만 아니라 한국은 미국, 영국, 프랑스, 일본 등 세계를 움직이는 주요 국가들이 모이는 G7 회의에 2년 연속 참여한 유일한 초청국으로서 경제적, 외교적으로도 중요한 국가가 되었음을 입증하였다. 이처럼 국제 사회에서 ‘국격’이 날로 상승하고 있다고 여겨지는 요즈음이나, 경제와 외교가 국격의 전부만은 아니다. 전 세계의 주목을 받는 스포츠 행사인 올림픽이 폐막한 지 한 달 반 정도가 지났다. 올림픽은 ‘국위 선양’과 관련해서도 주목받는 행사로, 한국의 문화적 위상을 드높일 수 있는 수단이기도 했다. 그러한 모습을 보여주는 단적인 면이 양궁 3관왕에 이른 안산 선수와 관련된 사건이었다.

안산 선수는 평소 짧은 머리를 유지하고 있다는 이유로, 더 나아가 개인 SNS에서 ‘허버허버’ 라는 신조어를 썼기 때문에 일부 인터넷 이용자들에게 남성 혐오자라는 공격을 받았다. 언론은 이들의 주장을 받아적고 가시화해 논란을 부추겼으며, 외신은 안산 선수가 사이버 공격을 받고 있다는 보도를 했다. 그때부터 분위기는 바뀌기 시작했다. 언론들은 해외 반응에 대한 눈치를 보기 시작했으며, 한국에서도 ‘3관왕’으로 ‘애국’한 안산 선수에 대한 옹호의 목소리가 커졌다. 메달을 3개나 따와 국가의 위상을 높여줬는데, 머리 길이가 어째서 논란이 되냐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이때 국가의 위상이란 무엇이며, 그것은 어떤 것을 의미하는 것일까, 과연 안산 선수가 ‘3관왕’이 아니었다면 이런 옹호를 받을 수 있었을까? 세계인의 축제라 불리는 올림픽에서 어째서 실상 선수들은 축제를 즐기는 것이 아닌 국가를 위해 노력하는 것처럼 여겨지며, 무엇을 위해 국가에서 나서서 올림픽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기 위해 약물 도핑을 시행하기도 하는 것일까?

 

올림픽의 문화적 권력과 현 체제의 정당화

통념대로 메달의 개수는 국가의 격을 높여준다. 즉, 문화적으로 자신들의 국가가 얼마나 뛰어나고 우월한지 증명할 수 있는 장치가 된다. 올림픽이 열리면 메달 획득 수가 많은 국가들은 경제순위가 높은 강대국들이다. 최근 열린 도쿄 올림픽에서도 미국과 중국을 필두로 한 G20 국가들이 상위권에 포진해있다. 몇몇 국가들은 메달 수를 늘리기 위해 편파와 불공정까지도 일삼아왔다. 국내 선수의 메달 획득과 관계되어있어 유명해진 사례인 러시아의 소트니코바 선수의 사례가 그렇다. 러시아는 국가 차원에서 선수들에게 도핑 약물을 복용하게 한 뒤 테스트를 통과하기 위해 소변을 바꿔치기하는 부정을 저질러, 도쿄 올림픽에서는 러시아의 출전이 금지된 탓에 러시아 소속 선수들은 소속국 신분이 아닌 IOC의 깃발을 들고 입장하기까지 했다. 이처럼 선진국들이 메달 수를 중시하는 것은 자신의 나라의 우수성을 물리적으로 증명함으로써, 그들이 ‘선진’ 국가로 불리는 것을 정당화하고, 세계를 이끌어나갈 자격이 있음을 보여줄 수 있는 수단 중 하나가 메달이기 때문이다. 메달을 통한 서열 확립과 우수성의 증명은 현재 체제를 공고히 할 뿐 더러, 하위 국가들에게 선망을 불러오는 역할을 함께 하고 있다. 문화의 지배 정당화는 제국주의가 만연하던 시절, 지배 국가들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다.

단적으로, 일제강점기 시절에도 일본은 한국을 통치하는 데 있어 자신들의 ‘선진적 문화’라는 정당성을 들고, 상대적으로 문화가 뒤처져 ‘야만적인’ 한국을 도우며 그들에게 자신의 문화를 전파하고자 하는 것이라며 지배를 정당화하고자 했다. 바로 식민지 근대화론이다. 더 나아가 문화라는 개념은 세 가지로 나뉜다고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집단 사이에서 공유된 행동 습관으로, 평가의 대상이 아닌 기록으로서의 문화다. 두 번째는 정신적이고 추상적인 매체들, 대체로 예술적인 산물들을 칭하는 하나의 개념이다. 마지막은 ‘야만적’이라 여겨지는 것들을 극복하고 동물화된 것을 탈피해내는 것으로, 타 집단의 행동 양식에 대한 평가의 기준이다. 이는 문화의 두 번째 정의와도 얽혀 작동한다. 추상적이고 정신적인, 고급스러운 예술과 문화는 국가의 저력임과 더불어 숭상을 불러올 수 있는 매개이고, 동시에 우월성을 증명할 수 있는 가치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문화라는 개념 규정이 확립되고, 일상적인 용어가 된 것 자체가 제국주의 국가들이 식민지를 통치하고, 또 통치를 정당화시키기 위해 만들어낸 이데올로기다. 위와 같은 맥락에서 올림픽은 선진국 위주 세계 질서의 정당화와 무관하지 않다.

 

개발도상국이 참여하는 올림픽

개발도상국에서 금메달리스트는 국가적 영웅이 되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 선양의 양상은 선진국의 것과 다르다. 선진국은 높은 순위를 차지해 국제 사회에 자신들의 건재한 위상을 떨치며 은연중에 지배를 정당화하는 것이라면, 세계를 이끌어가는 주체에 속하지 못한 개발도상국들은 선진국과 겨루어 메달을 획득했다는 것에서 기존 세계 질서에 본격적으로 편입된 것처럼 느끼고, 말 그대로 ‘국가의 위상을 한 격 높이게 된’ 셈이 되어 충족감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의 환경은 일치하지 않는다. 선수들을 집단으로 양성해내는 것에는 상당한 양의 자본이 필요하기에, 기본적으로 선진국들이 유리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스포츠는 어린 나이에 시작할수록 이득이 되는데, 그 재능을 발굴해내기 위해서는 다양한 스포츠 시설이 주위에 마련되어 그것을 경험해볼 필요가 있다. 몇몇 종목, 그리고 국가에서는 전문 선수들이 출전하는 것이 아닌, 평상시 스포츠를 즐기고 뛰어난 성적을 지녔던 개인들을 선별하여 선수로 채택하기도 한다. 이 또한 스포츠 시설이 전국적으로 갖춰졌을 때 가능한 이야기다. 조건의 차이는 이렇게나 크다.

물론 개발도상국이 더욱 유리하거나, 상대적으로 틈을 파고들기 쉬운 종목들도 존재한다. 해당 국가가 종주국인 경우나 국민 스포츠일 정도로 많이 즐기는 종목에 해당하는 경우, 그리고 신설된 종목이 바로 그렇다. 기존에 향유하던 이들이 적기에 신설 종목의 체계는 비교적 덜 공고하고, 메달을 노리기도 쉽다. 그러나 한 가지 문제가 있다. ‘신설 종목’이기에 상대적으로 받는 주목 또한 적다는 것이다. 신설 종목은 올림픽이라는 행사 내에서 기존 종목들의 아성 사이에서 자신의 자리를 공고하게 만들어내야 하는 위치에 있다. 비인기 종목으로서 그들만의 리그가 되어 주목을 받기 어려워지는 상황이 되기 쉬운 것이다.

 

진정한 세계인의 축제로 나아가기 위하여

이러한 상황에서는 ‘메달에 집착하지 않는 것’, 즉 올림픽을 진정한 축제로 즐기는 것이 답이 될 수 없다. 순위를 매기는 이상 위계질서는 존재할 수 밖에 없게 되고, 위계질서는 곧 공고한 권력이 되기 때문이다. 올림픽이 과연 평화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지, 그렇지 않다면 ‘국격’이란 이름으로 위계를 만들어내고 있는지에 대해 고찰해보고, 올림픽을 통한 ‘국격의 상승’과 자부심의 충족은 과연 정당한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보아야 할 때다.

 

참고문헌

『세계화와 자아 정체성』, 사회와 철학 연구회, 이학사, 2001

 

 

김유승(ESG 기자단)  sustainability@sjournal.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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