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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주의는 과연 공정할까?
  • 양세인 바람 온라인 저널리스트
  • 승인 2021.02.21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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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출발하든 부자라는 결승점에 도달할 수 있다는 미국인들의 믿음이 아메리칸 드림을 만들었다. 트럼프 이전 많은 민주당 대통령들이 외쳤던 구호는 “You can make it if you try! (하면 된다)”이었다. 이와 비슷하게 우리나라 사회에서도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한다면 “개천에서 용 날 수 있다”고 믿으며 개인이 가지는 배경과 무관한 능력으로 운명을 만들어간다는 능력주의 사회에 살고 있다. 시장 중심형 자본주의 사회에서 잃어가던 ‘정의’에 대해 질문을 던졌던 마이클 샌델이 이번엔 모두에게 같은 기회를 제공한다는 능력주의에 의문을 던졌다. “지금 서 있는 그 자리, 정말 당신의 능력 때문인가?”

 

책 <공정하다는 착각> / 출처 : 직접촬영

 

능력주의의 특징

 

능력주의는 신분이나 돈이 아닌 개인의 능력에 따라 지위가 결정되는 사회를 말한다. 능력주의(Meritocracy)라는 용어는 사회학자 마이클 영에 의해 공식적으로 사용되었다. 영은 지능과 노력이 합쳐진 것이 능력이라 보았고, 결국은 지능이 더 큰 영향을 미친다고 규정했다. 오늘날 많은 사회 구성원들은 이를 학력이나 학벌, 또는 시험을 통과해 얻은 자격이라고 여긴다. 영은 학력이나 능력에 따라 사회적 지위를 차지하는 사회를 찬양하기 위해 능력주의를 만든 것이 아니었다. 그런 사회도 계급 재생산을 영속화 시키고 사회의 통합을 망칠 수 있다는 위험성을 경고하기 위해 만들어낸 용어였다. 언뜻 보면 ‘(지적)능력’이 신분이나 돈보다 공정하고 정의로운 기준이라고 볼 수 있지만, 학력이나 학벌로 대표되는 능력이 결국 사회 경제적 지위에 영향을 강하게 받기 때문에 소수의 엘리트가 독점한다는 점에서 크게 나을 게 없다는 견해였다.

 

마이클 샌델은 능력주의에서 크게 두 가지 문제점을 찾아냈다. 우선 기회의 평등이야 불리는 ‘능력’이 자신이 선택할 수 없는 행운의 역할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모순을 지적했다. 그리고 능력주의가 사람들의 태도에 미치는 영향을 언급하며 점점 더 극심해지는 양극화와 어려워지는 사회적 통합의 원인을 이야기했다.

 

능력과 연관된 행운의 역할

 

지금 내가 누리는 것이 온전한 나의 노력과 능력 덕분일까? 자신의 능력에 따라 보상받는 것이 공정한가? 이 같은 질문에 마이클 샌델은 미국 유명 농구선수인 르브론 제임스를 예로 들었다. 제임스는 NBA에서 4회의 우승을 거두고 7년째 NBA 수입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선수이다. 능력주의 사회에서 그의 연봉과 명성은 마땅하다. 하지만 그에게 생각보다 많은 행운이 작용 되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그의 큰 키는 농구를 하는 데 유리하기에 유전적 행운을 가졌다. 그리고 자신의 운동 재능을 발굴할 수 있었던 것도 경제적 여건이 뒷받침되었기에 환경적 행운이 작용한 것이다. 또한 그가 높은 연봉을 받을 수 있는 것은 농구가 인기 스포츠인 사회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에서 가장 무거운 무게를 드는 미국의 한 역도선수는 같은 스포츠인으로 세계 최고의 실력을 갖췄지만, 그 재능을 가치 있게 여기고 보상해주는 사회에 살지 못해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다.

 

우리나라의 예시로 억대 연봉을 받는 개발자 A가 있다고 가정해보겠다. 어릴 때부터 산수와 수리에 흥미가 있었던 A는 평범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지방의 한 대학에서 컴퓨터 공학을 공부했다. 프로그래밍을 연구하며 능력을 쌓아 가던 A는 노력의 결실로 한국의 대기업에 개발자로 일하며 높은 연봉을 받고 있다. 그가 얻은 성취는 오로지 그의 능력으로만 가능한 것이었을까? 유전적으로 수리에 특화된 재능을 가지고 태어난 것, 학창 시절에 생업보다 공부에 집중할 수 있었던 환경, 개발자가 대우받는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 사는 배경 등 운과 우연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능력주의적 양극화

 

사람의 신분이나 돈이라는 배경 없이 능력으로만 평가 하는 것은 좋은 원칙이다. 하지만 앞서 말한 운의 역할을 깨닫지 못한 사람들이 가지는 태도가 수많은 문제점을 야기한다. “내가 열심히 해서 성공한 거야!”라는 태도를 보이는 승자들의 오만함은 감사와 겸손을 배우기 어렵게 만든다.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의 불성실함과 무능력을 탓하며 이들과 나누지 않는 게 공정하다고 여기는 것이다. 동시에 “하면 된다!”라는 사회에서 성공하지 못한 사람은 실패를 자기 탓으로 돌리며 굴욕감 느끼게 한다. 게으른 자, 패배자라는 경멸의 시선도 감수하며 스스로 자업자득이라는 모욕감으로 ‘절망 끝의 죽음’이라는 심각한 사회적 현상을 형성하고 있다.

 

이 밖에도 현재 능력주의는 과거 세습 주의와 혼합되어 기득권인 부모가 이를 물려주기 위해 자식의 능력을 키우는 ‘만들어진’ 능력이 늘어나고 있다. 이는 능력주의의 유일한 장점이었던 계층 이동 가능성을 낮추고 극심한 학벌주의를 조장하는 새로운 불평등을 만들고 있다.

 

능력주의의 해법

 

능력주의의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은 능력이 직업과 사회적 역할의 배분에 아무 역할도 못 하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또한 노력해서 성공한 사람들의 사회적 위치는 운이었을 뿐이니 운이 없는 사람들을 위해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는 의미로 변질해서도 안 된다. 대신에 마이클 샌델은 능력주의 사회가 만들어낸 ‘학력주의 편견’이 노동의 명예를 줄이고 대학에 가지 않은 사람들의 위신을 떨어트리고 있다는 점을 이야기하며 ‘교육’과 ‘일의 존엄성’을 강조한다. 경쟁적 입시를 완화시킴으로써 인재를 선별하기 위한 교육이 아닌 4년제 대학 학위가 없어도 잘 살아갈 수 있는 교육을 찾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높은 봉급을 받는 일만 인정하는 것이 아닌 모든 사람이 하는 일의 존엄성을 고려하여 이들의 가치를 존중해주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이는 성공에 대한 우리의 시각을 바꾸고, ‘정상에 오르는 사람은 스스로 잘나서 그런 것’이라는 능력주의적 오만에 의문을 제기해야 함을 뜻한다. 그리고 능력이라는 말로 옹호되어 온, 그러나 분노를 퍼뜨리고 정치에 해를 끼치며 사회를 갈라놓는 부와 명망의 불평등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도 포함된다. 완벽한 평등을 추구해야 한다기보단 서로 다른 삶의 영역에서 온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법이 필요하다. 또한 우리 사회가 우리 재능에 준 보상은 다양한 행운이 작용된 것이다. 이러한 우연성을 인정하는 겸손함을 가진다면, 모두가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마이클 샌델의 <공정하다는 착각>이라는 책을 통해 사람의 성취가 그 사람의 가치는 아니라는 점을 모두가 깨달았으면 한다.

양세인 바람 온라인 저널리스트  yess@liv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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