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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이 땅은 밥이 주식인 나라, 그런데도 넌 빵에 목숨을 걸 텐가? ②
  • 이성희 바람 온라인 저널리스트
  • 승인 2021.02.15 2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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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①편 스콘, 아이스박스 케이크 편에서 이어집니다. >

 

 

<3> 바스크치즈케이크, ‘얼빠’의 깨달음

 

어떤 메뉴를 해 봐야 대단하다고 소문이 날까 고민하던 중, 평소 즐겨 찾던 동네 디저트 가게에서 파는 바스크치즈케이크에 도전해보기로 마음먹었다. 주먹 크기만 한데 6000원씩이나 하는 비싼 가격에 언제나 꼬리를 내빼고 다른 디저트를 골라오는 나였다. 바스크치즈케이크는 일반치즈케이크처럼 생겼지만 윗부분이 검게 탄 것이 특징이다. (타긴 했지만 탄 맛은 안 난다고 한다) 독특한 모양새 때문에 만드는 과정이 복잡할 것이라 추측했는데 웬걸, 치즈케이크는 정말 쉬웠다. 생크림과 크림치즈, 밀가루, 달걀, 설탕을 다 섞어주면 되었다. 이쯤 되니 베이킹을 향한 아름다운 도전보다는 어떻게 하면 투자대비 고효율을 낼 수 있는지 고민하는 악덕 취미업자(?)의 경험담을 소개하는 듯하다.

 

정말 탄 맛이 안 난다. 그래서 그냥 일반치즈케이크 맛이 나는 웃지 못 할 진실.

 

에어프라이어에서 바스크치즈케이크를 꺼내는 순간, 코끝을 감싸는 화려한 향기에 그만 정신을 잃고 말았다. 갓 구운 따끈따끈한 치즈케이크 냄새가 이처럼 치명적인 유혹일 줄 누가 알았겠는가. ‘겉바속촉’바스크치즈케이크는 얼렸을 때의 풍미를 위해 잠시 식힌 뒤 냉동실로 직행했다. 신비한 겉모습과 달달한 냄새에 매료된 나머지, 나는 이 케이크가 엄청난 맛을 지니고 있을 것이라는 대단한 망상에 빠지고 말았다. 하지만 부푼 기대를 안고 첫 시식을 하는 순간, 평범한 치즈케이크 맛에 김이 쭉 빠져버렸다. 하긴 들인 공이 별로 없으니 그리 대단한 맛도 안 나는 법.

 

생각해보니 시각적 매력에 혹해 시판 디저트를 구입할 때도 늘 이랬던 것 같았다. 알록달록한 색감의 마카롱은 너무 달거나 느끼했었고, 풍선처럼 폭신폭신 부드러워보였던 수플레 팬케이크는 계란 비린내와 푸석푸석한 식감에 입맛을 버렸었다. SNS 상에서 한바탕 유행을 휩쓸었던 ‘예쁜’ 디저트들은 대개 이런 식이었다. 물론 개중에는 정말 보는 것만큼 맛있는 것들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디저트들은 한번 유행이 시작되면 전문점이 아니어도 우후죽순 판매되는 상품이라 제대로 된 맛집을 찾기가 굉장히 힘들었다. 아름답게 만드는 일은 좋지만, 음식에는 무엇보다 고유한 맛과 향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과자와 빵을 대할 때 더 이상 시각적 색다름에만 꽂혀버리면 안 되겠다고 느꼈다. 겉만 번지르르 예쁘고 멋진 것보단 진정 내가 좋아하고, 궁금하고, 도전해보고 싶은 메뉴에 노력을 기해야 한다.

 

<4> 호두파이, 사과파이 情

 

마지막 작품은 파이다. 나는 파이를 정말 좋아한다. 필링의 달짝지근함과 매력적인 식감, 파이 반죽의 바삭함과 고소함이 어우러지며 빚어내는 재미있는 풍미가 좋다. 복잡한 풍미를 자아내는 만큼 파이 만들기에는 긴 시간과 작업이 필요했다. 버터와 설탕, 소금, 물로 파이 반죽의 농도와 질감을 잘 맞춰야 한다. 결이 층층이 나와야 더 맛있기 때문에 이전 편의 스콘처럼 ‘가르듯이’ 섞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파이 반죽이 완성되면 냉장고에서 이를 휴지한 뒤 필링을 만든다. 필링을 직접 만드니 기호에 맞게 재료의 양이나 크기를 조절할 수 있는 점이 특징이다. 호두파이의 경우 시중에서는 흔히 시나몬 맛이 나도록 필링을 만들지만, 나는 다른 과자를 만들다 남은 코코아가루로 초콜릿 맛이 나도록 했다.

 

밖에서는 한 조각에 몇 천 원씩 하지만 재료만 상비되어 있다면 마음대로 즐길 수 있다.

 

초콜릿 맛이 나는 호두파이는 내 입맛에 안성맞춤이었다. 어디서도 먹어볼 수 없는 나만의 조리법으로 만들어서인지 진짜 내 작품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파이에 많이 도전해보자는 생각으로 얼마 뒤에는 사과파이를 만들었다. 똑같은 사과파이여도 만드는 이마다 사과조각의 크기나 파이 반죽 모양이 제각각이다. 나는 잘근잘근 씹히는 과실 식감을 좋아해서 사과조각을 아주 작게 만들었다. 파이 반죽은 두꺼우면 두꺼울수록 좋아서 윗부분에 벌집무늬를 만들어 더 바삭바삭한 감칠맛을 냈다. 또 시판 제품은 필링의 단맛이 너무 강했던 게 싫어서 필링에 설탕을 조금만 썼다. 사과파이 역시 호두파이처럼 성공적이었다. 새콤달콤한 사과조각과 고소한 파이 반죽의 조화가 끝내줬다. 살이 찔까봐 한 조각만 먹자고 다짐했건만, 세 조각씩이나 먹고 나서 겨우 정신을 차렸다.

 

커다란 파이 한 판을 구워낼 때마다 ‘빨리 코로나가 종식되어야 할 텐데’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 가족은 디저트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서 내가 며칠씩 해치워야 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가까이 사는 친구들이나 지인들에게 나누어주며 함께 먹으면 좋겠다. 만화 <캔디 캔디>에서 주인공 캔디가 자신을 싫어하는 에를로이 큰할머니와 가까워지기 위해 손수 만든 파이에 라일락 장식을 해서 갖다드리는 장면이 있다. 심술궂은 일라이자가 캔디의 파이를 빼돌려 자신이 만든 양 큰할머니의 예쁨을 받지만 말이다. 직접 베이킹을 해보니 파이를 만들 때, 그리고 빼앗겼을 때 캔디의 심정이 어땠을지 상상이 간다. 번거로운 작업을 거쳐 만든 파이를 통해 다른 사람과 따뜻한 관계를 맺는 일이 얼마나 귀한 경험인데! 그 날을 기다리며 오늘도 나는 어디선가 파이 조리법을 뒤적뒤적하고 있다. 完

 

“빵만 있다면 웬만한 슬픔은 견딜 수 있다” - 세르반테스

 

이성희 바람 온라인 저널리스트  yess@liv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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