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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이 땅은 밥이 주식인 나라, 그런데도 넌 빵에 목숨을 걸 텐가? ①
  • 이성희 바람 온라인 저널리스트
  • 승인 2021.02.15 2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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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이 땅은 밥이 주식인 나라, 그런데도 넌 빵에 목숨을 걸 텐가?”

 

애니메이션 <따끈따끈 베이커리>의 엔딩곡 ‘빵빵하게’는 이런 구절로 시작한다. 이 만화를 봤던 초등학생 시절의 나에게 저 ‘질문’은 꽤나 강렬한 인상을 주었다. 지금이야 빵은 내게 대충 한 끼 식사를 채우는 용도지만 어릴 적 빵은 소세지빵, 크로와상, 앙금빵 등 형형색색 고유한 매력을 지닌 특별한 간식이었다. 어린이가 사기에 비교적 부담스러운 가격 역시 빵의 고급스러운 매력에 일조했었다. 하지만 한 뼘씩 커 가면서 주머니 사정도 좋아지게 되자 더 이상 빵은 그다지 귀하고 멋진 음식이 아니라고 느껴졌다. 그러던 내가 집에서 베이킹을 시작하게 된 이유는 코로나 때문이었다. 사람들 말로는 그렇게나 시간을 잘 죽여준다나.

 

<1> 저기요, 스콘은 쉽다면서요

 

첫 도전은 스콘이었다. 밀가루, 설탕, 소금, 우유, 계란, 베이킹파우더, 버터를 한데모아 섞어서 에어프라이어에 구워내면 끝이다. 말은 정말 쉬워보였다. 동네 마트에서 베이킹파우더와 버터만 사오면 될 뿐이었다. (사실 집순이들에게는 여기서부터 이미 쉬운 길이 아니다) 호기롭게 재료를 준비했으나 유튜버의 설명에 따라 ‘버터와 밀가루를 가르듯이 섞는’ 과정에서 진땀이 나기 시작했다. 우유 계량을 잘못한 것인지, 가르듯이 섞이기보단 떡 반죽처럼 끈적거렸기 때문이다. 응급처치로 밀가루를 더 부어 어영부영 완성품을 만들긴 했다. 그러나 ‘소금 한 꼬집’에서 문제가 있었던지 스콘에서 감출 수 없는 바다의 짜릿한 맛이 났다.

 

바다 스콘을 만들던 내가 지금은 맛있는 초코 스콘을 만든다. 감격적이다.

 

스콘은 두 가지 사실을 알려주었다. 첫째, 베이킹은 사소한 계량 실수가 엄청난 나비효과를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이 사실을 깨닫고도 귀찮아서 계량기를 구매하지 않았다) 둘째, 베이킹에는 나눔의 미가 있다.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한 번 만들 때 한두 개 만드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누구든지 함께 먹을 사람이 필요해진다. 지승호 작가와 이수정 범죄심리학자의 인터뷰에 따르면 소년원에서 제과제빵을 배운 청소년들은 비교적 재범률이 낮다고 한다. 요컨대 스콘이 알려준 사실들과 비슷한 이유 때문이다. 작은 약속과 법칙을 지키면 커다란 성취감을 얻을 수 있고, 빵을 나누며 사람들과 돈독한 관계를 맺을 수 있다. 시간 죽이기 용으로 시작했지만 빵에는 책 못지않은 교훈이 담겨있었다. 정말 대단한 빵! 잠깐, 베이킹이라는 것이 늘 이렇게 위대한 일이기만 할까?

 

<2> 아이스박스씨 우리 어디서 만난 적 있죠

 

학교 근처에서 사먹은 아이스박스와 집에서 만든 아이스박스.

 

모 프랜차이즈 카페의 인기 케이크인 ‘아이스박스.’ 오레오와 생크림의 절묘한 조화로 찾는 손님이 많다고 한다. 나 역시 그 손님 중 하나. 엄밀히 따지면 베이킹은 아니지만 만들기 간단한 디저트라는 풍문에 도전해봤다. 다행히 이는 풍문이 아니라 사실이었다. 생크림과 크림치즈를 휘핑기로 섞어 하나의 크림으로 만들어 준 뒤, 층마다 오레오를 겹겹이 쌓아 얼려준다. 크림으로 미끌미끌해진 식기들을 설거지하는 것이 힘들었지만 완성품은 제법 먹음직스러운 모양새가 나왔다. 기대 반 걱정 반 첫 술을 뜨니 카페에서 파는 것과 맛도 거의 비슷했다. 아, 나 재능 있었나봐…. 잠깐, 자신감이 과한 거 아냐? 취미생활엔 상사도 없는데 뭐 어떤가.

 

과자, 빵, 케이크는 왜 만드는 걸까. 일차적으로는 인간의 허기를 색다른 재료의 배합과 조미로 달래는 것이다. 모든 음식과 요리가 그러하다. 또한 앞서 살폈듯 시간을 보내거나, 성취감을 얻거나,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는 등 다양한 목적으로도 이루어진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빈번하고 중요한 목적은 판매를 통해 수익을 내는 데 있을 것이다. 음식을 상품화하고 소매점에서 판매하는 과정 속에서 이들은 ‘기성품’이 된다. 그 동안 나는 신기루처럼 만들어진 눈앞의 케이크를 즐겨왔다. 이 케이크는 미끌미끌한 식기의 설거지도, 만든 이의 뿌듯한(또는 지친) 마음도 어느 것 하나 담아내지 못하고 있었다. 아이스박스는 아이스박스일 뿐이지, 누군가 이루어 낸 노력의 성과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생각이 마르크스의 ‘인간 소외’개념과 맞닿아 있을까? 케이크를 만드는 사람이 자신의 작품에 오롯한 생각과 가치관을 표현하지 못하고, 케이크를 먹는 사람과 교감할 수도 없게 되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어쩌면 아이스박스 케이크가 인간이 아닌 기계의 작품일 수도 있겠다는 추측도 해 본다. 만약 기계가 만들었다 해도, 케이크를 처음 고안해낸 이에게 감사의 박수를 드린다. 오레오의 농후한 단맛과 식감을 살릴 수 있게 크림 사이 겹겹이 배치한 점이 아주 훌륭하다. 한편 아이스박스 케이크로 자신감이 급상승한 나는, 뭐랄까 한 단계 더 멋있는 작품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모험가 정신이 들기 시작한다.

 

< ②편 바스크치즈케이크, 호두파이, 사과파이로 이어집니다. >

 

 

이성희 바람 온라인 저널리스트  yess@liv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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