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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장 속 나만의 파랑새 찾기, 가능할까요?
  • 박수빈 바람 온라인 저널리스트
  • 승인 2021.02.01 2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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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rpe Diem! Seize the day!” 호라티우스의 라틴어 시 구절에서 유래한 이 말은 ‘죽은 시인의 사회(Dead Poets Society)’ 속 키팅 선생님이 인용하면서 유명세를 탔다. 1959년 버몬트의 개신교계 사립학교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는 당시의 권위주의적인 교육 현실을 그리고 있다. 존 키팅 선생님의 가르침은 엘리트주의를 내세우는 억압적인 교내 분위기 속에서 학생들에게 자유의 상징이 된다. 실제로 개봉 이후 폐쇄적인 교육으로 인한 폐해가 단지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에서 많은 이들의 공감을 받았다. 이동진 영화평론가는 “교사가 주인공인 헐리우드 드라마 중에서 단연 캡틴!”이라 평가하기도 했다. 이처럼 1959년의 키팅 선생님은 한동안 (그리고 지금까지도) 사회적으로 이상적인 교사상처럼 받아들여져 왔다. 하지만 지난 ‘방구석 1열’ 방송 41회에서는 이에 대해 의문점을 던진다. 과연 2021년, 현재의 아이들은 여전히 ‘키팅 선생님’을 원할까?

 

키팅 선생님의 자유로운 교육, 감수하시겠습니까?

 

출처: JTBC - SKY캐슬 포토갤러리 ‘삼각관계 본격 시작?! 김혜윤-찬희-김보라의 미묘한 분위기’

 

2019년, 많은 사람으로 하여금 금요일과 토요일 저녁을 애타게 기다리게 만든 드라마가 있었다. 바로 SKY 캐슬! 한국 사회의 철저한 엘리트주의 교육, 줄 세우기 입시. 그런 교육 현실 속, 입시 코디네이터와 학부모 사이에서 오가는 비밀스러운 일들은 사람들을 소름 끼치게도, 또 한편으로는 절망스럽게도 했다. 이 드라마의 중심에는 서울대 의대를 향한 뚜렷한 야망이 있는 캐릭터 예서가 있다. 확고한 목표를 향해서 입시 코디가 정해준 길을 따라가는 예서의 모습은 우리가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볼 수 있었던, 억압에 맞서는 학생들의 모습과는 딴판이다. 사실 예서라는 캐릭터가 보여주는 모습들은 예서만의 것은 아니고, 21세기 학생들의 여러 양상이 녹아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무엇보다 자신을 이끌어줄 코디와 유능한 선생님을 원하는 예서의 모습에서 자유를 원하는 1959년과 비교해, 오히려 자유로운 분위기가 주어졌을 때 불안감을 쉽게 느끼는 우리를 발견하게 된다.

 

학생으로서 2021년 대한민국 사회에 던져졌다는 건

 

2021년의 우리가 존 키팅처럼 학생들에게 자유로운 분위기를 제공해주는 선생님을 만나게 된다면 어떨까? 마냥 해맑게 좋아하기보다는, 오히려 어찌할 바 모르는 모습을 하고 있지 않을까. 과거와 달리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는 너무 많은 선택지가 주어진다. 어디로 가야 할지조차 모르는 수많은 갈림길 속에서, ‘네 꿈을 마음껏 펼쳐봐’ 하고 내가 나아갈 길을 지켜보는 듯한 사회적 분위기는 숨 막힐 때가 있다.

 

그러니까 성인이 된 우리에게 자유가 주어진 것도 같지만, 진짜 문제는 자유가 아니다. 우리에게는 여전히 삶에 있어서 모범답안이 주어지고 그대로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무언의 압박이 존재한다. 대학교 1학년 전공 수업 시간에 교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왜 공부 잘하는 학생들이 대학에 와서 공무원 시험을 봅니까?” 어딘가 서운한 기색이 섞인 투로 핵심을 찌르는 듯했던 교수님의 질문에는 아무도 답하지 않았다. 어쩌면 답하지 못한 걸까. 학생이라면 대학만 오면 하고 싶은 거 다 하면서 살 수 있다는 말을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그렇게 공부를 해서 대학교에 들어왔다. 들어와 보니, 마치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 대처할 무기 하나 없이 맨몸으로 던져진 기분이 든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이렇다 할 만한 길을 정하지 못하거나 나만의 뚜렷한 강점이 없다고 생각하게 되면 스스로가 무능력하다고 느끼기 쉽고, 상실과 절망감은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것이다.

 

나, 이대로 괜찮을까요?

 

 

출처: 직접 촬영

 

대학교 3학년을 앞둔 2021년의 1월은 시리다. 많은 동기가 군대에 가거나 휴학을 했다. 분명 대학교에 입학할 때의 나는 하고 싶은 것들이 셀 수 없을 만큼 많았다. 그런데 어느새 나는 그렇게 미래에 하고 싶다 꿈꾸던 일들의 리스트를 만들고는 하나하나 이건 이래서 안 돼, 저건 저래서 안 돼, 하며 선을 긋고 있었다. 하지만 주변 지인들 이야기를 들으면 나만 그런 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학교 커뮤니티에 한번은 ‘제가 하고 싶은 일은 너무 많은데 겁이 나요. 그냥 현실적으로 생각하는 게 좋을까요?’ 하는 글이 올라온 적 있었는데 많은 이들의 공감과 댓글을 받았다. 학생인 우리는 무엇에 가로막혀 꿈꿀 힘을 잃어버리는가?

 

무엇이 꿈을 가로막는가? 당신이 꿈꾸는 일이 버겁고 힘들다면, 그렇게 느끼는 이유는 모두 다를 것이다. 하지만 다양한 개개인의 이유를 하나로 묶을 수 있는 단어는 <현실>이라 생각한다.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내 모습, 미래에 되었으면 하는 나, 내가 추구하고 싶은 꿈들. 이런 것들이 마냥 즐겁지 않고 힘들어질 때는, 현실과의 괴리가 생길 때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나는 이 일을 하고 싶은데 경제적인 여유가 없거나 내가 꿈꾸는 분야에 재능이 없다 느껴질 때. 우리는 자주 우리가 갖지 못한 것들에 집중하고, 자주 빛나고 특별해 보이는 다른 사람들과 나 자신을 비교하니 말이다. 하고 싶은 일이 있지만 꿈과 현실 사이의 괴리가 커지면, 허황된 꿈에서 벗어나 현실을 직시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불안감에 빠지기 쉽다. 예술적인 일을 하고 싶은데, 그렇게 능력이 있는 것 같지도 않고 밥벌이를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고. 그런 생각이 든다면 안정적인 직장의 대명사인 공무원, 혹은 대부분의 사람들과 사회가 인정하는 전문직을 준비하는 쪽으로 눈이 가는 건 당연한 일이다. 꿈꾸는 우리에게 현실은 가혹하다. 냉담한 현실이라는 벽 앞에서 결국 꿈꾸던 우리는 꿈을 포기하고 체념하는 길을 선택하게 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거기에 더해, 최근 코로나 사태로 인해 현실이 내뿜는 찬바람은 한층 더 강해진 기분이다. 현재 취업준비생, 학생들의 현실적인 상황을 살펴보자.

 

취업 시장 분위기, ‘썰렁’을 넘어 ‘너무 추워요’

 

코로나 사태가 계속되며 지금 취업 시장은 그야말로 ‘꽝꽝’ 언 상태. 완전 침체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존 인력들도 재택근무로 전환하고 구조조정에 들어가는 경우도 많은 데다, 대다수의 기업이 신규채용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취업 플랫폼 잡코리아에서 올해 상반기 신입 취업을 준비하는 구직자 934명을 대상으로 한 ‘취업 자신감 조사’ 결과에 따르면 49.3%가 올 상반기 취업에 성공할 자신이 없다고 답했다. 이에 대한 주된 이유로는 ‘상반기에도 코로나 사태가 지속될 것 같아서’ 그렇다는 의견이 58.3%를 차지했다. 앞이 깜깜한 상황 속에서 취업을 준비해야 하는 학생들 마음은 답답하기만 하다.

 

청춘이라서 강한 우리, 자꾸만 꿈꾸고 사랑하자

 

이런 상황 속에서 학생들에게 무언가를 꿈꾸라고 하는 게 오히려 잔인한 것 아닐까. 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단지 꿈에만 매달리기엔 정신적, 경제적인 여유가 없다. 코로나바이러스 확산이 가져온 취업시장 냉각은 학생들이 꿈꾸는 데 필요한 마지막 온기마저 앗아간 것 같아 보인다. 우리는 이런 상황에서 모두 자신만의 결론을 내리지만, 나는 ‘어쩌면 우리는 불안과 함께할 수밖에 없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21세기의 흑사병과도 같은 코로나를 우리는 직접 현재진행형으로 겪고 있다. 그리고 ‘아프니까 청춘이다’와 같은 말이 절대 옳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청춘이기 때문에 아픈 구석이 있으니까.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에, 스스로 개척하고 고민해야 하는 부분은 언제나 우리의 불안과 걱정에 자리를 쉽게 내준다. 꿈꾸는 것마저 쉽지 않은 우리 곁에는 두려움이 늘 함께하지만, 그 힘에 자신을 내맡기지는 말자. 우리가 처해 있는 현실적인 어려움을 논하다가 갑자기 이런 교훈을 주는 듯한 이야기라니, 어쩌면 기만 같아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는 두려움과 불안 속에서 나아갈 길을 어떻게든 꼭 찾게 될 것이다. 불안과 두려움에 자주 떨지라도 스스로 자유를 허락해주자. 내가 원해서가 아니라 순전히 사회적으로 고정된 틀에 자신을 맞춰야 할 것 같은 기분에 길을 선택하고, 그렇게 정해진 미래에 자신을 가두지는 말자. 끊임없이 꿈꾸고 사랑하고, 다만 내가 꿈꾸지 않는다고 해서 자기 학대는 하지 말자. 불안과 걱정에 휘말려 살아왔더라도, 꿈꾸든 꿈꾸지 않든, 무엇을 하기로 했든 내가 앞서 한 선택들은 모두 그 순간을 살아온 내가 내린 최선의 선택이다. 따라서 무능력하다고 느끼는 데서 오는 상실감과 자기학대 같은 것들에 자신을 절대 놓아주지 말자.

 

우리는 ‘아파서 청춘’이 아니라 오히려 청춘이기 때문에 강하다. 기억하자, 고통을 헤치고 나와 더욱 견고해질 우리는 불가능해 보이는 얼음장 속 파랑새 찾기 같은 일도 반드시 해낼 것임을.

박수빈 바람 온라인 저널리스트  yess@liv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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