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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이름을 찾아서
  • 김민정 바람 온라인 저널리스트
  • 승인 2021.01.31 2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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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아픈 그 이름, 정인

 

2020년, 서울특별시 양천구에서 아동학대 의심 신고가 3회 접수되었다. 어린이집 교사들의 첫 신고를 시작으로 소아과 의사의 세 번째 신고까지. 정인이는 양모 장하영의 학대, 양부 안성은의 방관 속에서 지속적으로 고통 받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지속적인 신고에도 정인이는 끝내 양부모와 분리되지 않았고, 2020년 10월 13일, 16개월 아이는 끝내 사망한다. 정인이의 몸에 남은 수많은 상처와 CT 사진은 오랜 기간 이어져 온 폭행과 강도 높은 물리력이 작용했음을 보여주었다. 정인이의 사망 하루 전, 어린이집의 CCTV에 찍힌 정인이의 모습은 많은 사람을 분노하게 했다. 힘없이 선생님의 품에 안긴 정인이는 쉽게 걷지 못한다. 어린이집 교사가 아이의 몸의 상처를 살피는데, 아이의 배는 볼록하다. 장난기도 없고, 어떤 움직임도 없는 정인이는 정서 박탈이 아주 심한, 무감정 상태를 보여준다. 내내 음식을 거부하던 정인이가 선생님이 주신 우유를 몇 모금 마신다. 이 우유는 아이가 마지막으로 먹은 음식이었다.

 

정인이 사건도, 16개월 입양아 사망사건도 아니다. 출처: youtube 그것이 알고싶다 공식채널 캡쳐

 

사라져버린 살인자

 

현대 사회의 다양한 사건/사고들은 기사, 방송, 유튜브 채널 등 다양한 매체들을 통해 자극적으로 소비된다. 다양한 매체들은 사건의 진상을 전달하기에 집중하기보단 독자들의 동정심, 연민, 슬픔, 분노의 감정을 자극하기 위해 피해자에 초점을 맞춰 사건을 보도한다. 빠르게 소비되는 보도 속에서 가해자는 없다. 피해자만이 연일 검색어에 노출, 이슈화된다. 정인이의 죽음도 마찬가지였다. 양부모의 학대에 의한 16개월 아이의 죽음은 ‘정인이 사건’이 되었다. 양부모의 이름은? 문득 씁쓸함이 밀려왔다. 여전히, 잊혀지지 말아야 할 이름들은 너무 쉽게 지워지고, 가슴에 묻어두어야 할 이름들은 너무 쉽게 불리운다. 정인이 사건, 그리고 한국에서 발생했던 살인사건들에 관해, 또래 대학생들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져보았다.

 

Q1. ‘정인이 사건’에 대해 알고 계십니까?

대학생 A, B, C. 알고 있다.

 

- Q1-1. 어떤 경로를 통해 이 사건을 접하게 되었습니까?

대학생 A, C. 뉴스 기사를 통해 접했다.

대학생 B.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오른 ‘정인아 미안해’ 키워드를 보고 알게 되었다.

 

Q2. ‘장하영 사건’에 대해 알고 계십니까?

대학생 A. 알고 있다. - Q2-1. 처음부터 알고 계셨습니까? 아니다. 사건이 터지고 시간이 좀 지난 후에 추가된 기사를 보고 알게 되었다.

대학생 B, C. 모른다.

 

Q3. ‘안성은 사건’에 대해 알고 계십니까?

대학생 A. 알고 있다.

대학생 B,C. 모른다.

 

Q4. ‘칠곡 계모 아동학대 사망사건’에 대해 아십니까?

대학생 A, C. 모른다.

대학생 B. 들어본 적 있다.

 

- Q4-1. 칠곡 계모의 이름을 알고 계십니까?

대학생 A, B, C. 모른다.

 

Q5. ‘드들강 여고생 살인사건’에 대해 아십니까?

대학생 A, C. 모른다

대학생 B. 들어본 적 있다

 

- Q5-1. 살인자의 이름을 알고 계십니까?

대학생 A, B, C. 모른다

 

Q6. ‘만삭 의사부인 살인사건’에 대해 알고 계십니까?

대학생 A, C. 모른다

대학생 B. 들어본 적 있다

 

- Q. 6-1. 살인자의 본명을 알고 계십니까?

대학생 A, B, C. 모른다

 

용의자에서 피의자, 피고인으로

 

‘가해자’란 피해자에 반대되는 개념으로 다른 사람의 생명이나 신체, 재산, 명예에 해를 끼친 사람으로 특정인이 명백하게 있을 경우를 의미한다. 가해자는 다음의 법적 단계를 거쳐 진정한 ‘가해자’가 된다. 우선, 범죄 혐의가 확실하지 않지만 의심이 되어 조사의 대상이 된 사람은 ‘용의자’가 되어 내사단계에 들어간다. 다음으로, 내사에서 범죄 혐의가 인정되어 정식으로 입건되면 용의자는 ‘피의자’ 신분이 된다. 이렇게 조사가 다 끝난 후 피의자의 범죄행위가 입증되어 범죄행위를 한 자를 대상으로 검사가 기소(공소 제기)를 하게 되면 피의자는 ‘피고인’의 신분이 된다. 재판으로 넘어간 피고인이 구형을 받아 복역하게 되면 비로소 법적 가해자가 되는 것이다.

 

무죄 추정의 원칙

 

이런 가해자의 신상공개가 섣불리 이뤄질 수 없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피고인 또는 피의자는 유죄판결이 확정될 때까지는 무죄로 추정해야 한다는 무죄 추정의 원칙이 바로 그것이다. 동의한다. 다수의 눈에 분명한 유죄로 느끼고 분노할 순 있으나, 다수가 그 사실을 믿는다는 것이 그 사실이 진실임을 의미하진 않는다. 다수가 옳은 것이 되어서는, 감정이 앞서서는 안 된다. 모두가 틀렸을 가능성까지 염두에 두고 마지막까지 무죄로 추정하여 죄의 성립 여부를 면밀히 검토해보아야 한다. 그러나 필자가 지적하고자 하는 것은 ‘피의자’, ‘피고인’의 실명공개가 아니다. ‘범죄자’의 실명공개에 이어 사건명을 가해자 중심으로 적극 수정해 보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앞선 인터뷰를 하고 난 학생들은 마지막 질문에 대해 다음과 같은 답변을 내놓았다.

 

Q7. 정인이 사건, 칠곡 계모 아동학대 사망사건, 드들강 여고생 살인사건, 만삭 의사부인 살인사건 등 사건명을 들어 보시고 느낀 점은 무엇입니까?

대학생 A. 현재 알고 있는 정인이 사건을 기준으로 다른 사건들의 이름을 보니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에 초점이 맞춰진 채 불리는 게 이상하다 생각한다. 특정 범죄를 당한 사람이 기억되는 것은 그 사건에 대해 피해자들과 지인들이 씻을 수 없는 무거운 짐을 계속해서 지고 가도록 하는 것밖에 안 된다 생각한다.

대학생 B. '칠곡 계모 아동학대 사망 사건'을 제외하고는 피해자가 사건명에 들어간다는 것이 안타까운 일인 것 같다. 피해자보다는 가해자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나영이 사건' 또한 사건 초기에는 피해자에 집중되었지만 네티즌의 반발로 후에 '조두순 사건'으로 변경되었다. 앞으로도 많은 사람의 인식이 개선되어 피해자보다는 가해자에 중점을 두었으면 하는 바이다.

대학생 C. 사건명이 범죄자 이름이 드러나진 못할지라도 범죄를 부각하는 사건명이면 기억하기 더 좋을 것 같다 생각한다. 정인이 사건처럼 사건 이름만 보면 어떤 사건 내용인지 명확히 인지하기 힘든 것 같다. 그리고 사건이 공론화되기 전에 진짜 그 사건에 대해 직접 찾거나 뉴스를 보기 전까진 알 수도 없고 사건이 널리 알려지더라도 명확한 해결방법과 범죄 재발 방지책 없이 금방 잊혀지는 것 같다.

 

가해자의 이름은 없다

 

피해자의 이름만이 연일 입방아에 오르내린다. 피해자의 신상은 우리로 하여금 안타까움, 공포, 두려움, 슬픔, 분노의 동적인 감정을 유발한다. 그렇기에 자신들의 ‘콘텐츠’를 다수가 ‘소비’하도록 하는 것이 목적인 다양한 매체들은 피해자의 이름, 신상으로 사건을 명명하고 피해자의 피해 수준에 초점을 맞춰 사건을 보도한다. 그 과정에서 가해자의 잔혹성, 잃어버린 양심, 도덕성은 논의에서 밀려난다. 나아가 피해자의 이름은 철저한 소비대상으로 전락해버린다. 아무 의미 없는 물건들에 ‘정인아 미안해’라는 문구를 새겨 버젓이 판매하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가 개인적으로 관심을 갖고 사건을 더 파헤치지 않는 이상, 가해자의 이름, 신상은 철저하게 보호된다. ‘이미 죽어버린’ 피해자의 이름은, 누가 보호해줄까. 피의자 신분에서 유죄가 확정된 가해자의 실명 공개가 빠르게 이뤄져야 할 것이다. 이에 맞춰 신속히 사건명을 수정, 보도해야 한다. 가해자가 피의자 신분에서 법적으로 유죄판결을 받기 전까지의 사건명 또한 마찬가지이다. 피해자 중심의 사건명이 아닌 장소/시간/연령/피해정도 중심의 사건명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할 수 있어야 ‘가해자 보호법’, ‘피해자보다 가해자가 존중받는 세상’과 같은 꾸준한 지적들이 해소될 수 있지 않을까.

 

정인이의 이름이 지속적으로 남용되는 것을 막기 위한 국민청원이 진행 중이다. 출처: 청와대 국민청원 캡쳐

김민정 바람 온라인 저널리스트  yess@liv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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