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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뿌리에서 나오는 잡초의 생명력 - 송상훈의 풀과 나무 (13)
  • 송상훈 / 사단법인 푸른아시아 전문위원
  • 승인 2019.09.10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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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회에서는 우리가 사는 도시에서 흔히 볼 수 있지만 눈길 받지 못하는, 소위 ‘잡초’에 대해 알아 보도록 한다. 보도블록과 갈라진 건물 벽 틈새에서, 버려진 공간에서, 화단, 가로수 밑동의 흙 어디에서나 씀바귀, 냉이, 뽀리뱅이, 서양민들레, 쑥, 서양등골나물, 개미자리, 별꽃, 중대가리풀, 비단풀(땅빈대), 강아지풀, 새포아풀, 쑥 등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잡초 박사로 잘 알려진 전 고려대 강병화 교수는 ‘엄밀한 의미에서 잡초는 없고 야생초, 들풀 자원식물이’라고 한다. 그의 상황론에 따르면 밀밭에 벼가 나면 벼가 잡초고, 보리밭에 밀이 나면 밀이 잡초이다. 이나가키 히데히로(Inagaki Hidehiro) 또한 ‘도시에서, 잡초(都会の雑草、発見と楽しみ方) ‘라는 저서에서 ‘잡초는 없으며 상황에 따라 부당한 대우를 받을 뿐’이라 한다. 같은 책에서 인용된 시인이자 사상가인 랠프 월도 에머슨(Ralph Waldo Emerson)은 “아직 그 효용성이 발견되지 않는 풀을 잡초라 칭할 뿐 모두 제 가치가 있는 존재들”이라고 한다. 조지프 코캐너(Josejp A Cocannouer)는 ‘잡초의 재발견(Weeds: Guardians of The Soil)’에서 ‘잡초는 죽은 땅에 무기질을 공급하여 생명을 불어 넣는 농부의 친구’라고 정의한다. 그렇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느끼게 될 귀한 존재들이 잡초다.

굳이 효용을 말하지 않더라도 사람에게 영감과 신념을 부여하는 식물 또한 화려하고 귀한 존재라기보다는 볼 품 없이 질기게 살아가는 잡초이다. 이 개체들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암울한 시절, 영어에 갇힌 지사들에게 생명의 무한과 성찰을 선사하는 귀한 스승이었다. 인류가 기후변화에 어떻게 적응할까 고민하고 있는 지금도 이미 삭막한 도시환경에 적응한 잡초는 우리의 예상보다 훨씬 지혜로운 식물일지 모른다.

지금부터 앞서 밝힌 가장 흔한 식물들 몇몇을 살펴 본다. 냉이, 뽀리뱅이, 서양민들레, 쑥은 이전에 다루었던 식물이므로 서양등골나물, 개미자리, 별꽃, 중대가리풀, 비단풀(땅빈대), 바랭이, 새포아풀을 간략한다.

요즘 서양등골나물 꽃이 한창이다. 도시의 관리되지 않는 화단이나 외진 곳에서 어김 없이 만날 수 있는 이 녀석은 88올림픽을 기점으로 한반도에 뿌리내렸다. 토종인 등골나물보다 꽃이 더 예쁘지만 돼지풀, 도깨비가지, 가시박, 물참새피, 미국쑥부쟁이, 애기수영, 양미역취와 함께 환경부가 지정한 대표적인 생태계 혼란 외래식물이며 독성도 있다. 등골나물 어린순은 식용하고 뿌리는 황달이나 산후복통에 약으로 쓰지만 서양등골나물은 섭취가 과하면 탈이 난다.
등골나물 잎은 길고 좁으며 줄기에 자주빛 점이 있고 꽃은 떡지듯이 엉성하지만 서양등골나물의 특징은 잎이 짧고 넓으며 줄기는 푸르고 매끈하고 꽃이 단정하다.

 

 

참고로, 단풍잎돼지풀은 물가나 양지에서 해바라기처럼 크게 자란다. 성장이 빠르고 주변을 잠식하며 꽃가루가 알레르기를 일으키는데 폴리페놀이라는 항산화 성분이 있어 재조명 받고 있다. 이 천덕꾸러기 식물을 약용할 날이 빨리 오기를 기대한다.

석죽과의 개미자리 씨앗은 개미의 식량이다. 개미가 보이는 곳에 자생하기에 붙은 이름이다. 습기 있고 햇볕 잘 드는 화단 근처나 나무 밑에서 자주 만날 수 있는데, 바닥에 낮게 깔려 자라며 지름 3mm의 꽃을 피운다. 어린순은 나물로 식용하며 이뇨와 해독작용이 있고 상처의 독을 제거한다. 바닷가 내륙에 자라는 큰개미자리에 비해 잎이 좁고 두께도 얇은 편이다. 벼룩나물과 벼룩이자리, 잠나도나물도 개미자리만큼이나 작은 식물이지만 잎이 개미자리처럼 길쭉하지 않으므로 쉽게 구별 가능하다.

 

 

석죽과의 별꽃은 양지라면 어디서든 잘 자라기에 냉이, 마디풀, 새포아풀, 명아주와 함께 5대 잡초로 불린다. 별꽃 사촌인 쇠별꽃과 구별되는데, 별꽃 잎은 일반형이고 쇠별꽃은 잎은 심장형이다. 별꽃은 암술머리가 삼발이처럼 보이며 쇠별꽃 암술머리는 바람개비처럼 보인다. 봄나물로 인기가 많아서 샐러드로 무치거나 국으로도 식용하며, 위장병, 잇몸병, 루마티스, 혈액순환, 기침에 두루 이용한다.

 

 

중대가리풀은 국화과의 땅을 기는 아주 작은 식물이다. 여름 한해살이이므로 요즘에 보기는 어렵지만 밭이나 길가, 담벼락의 습기 있는 곳에 자생한다. 주걱형 잎이 특이해서 한번 보면 잘 잊혀지지 않는다. 누린 냄새 나는 열매가 스님머리처럼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인데, 식물 전체를 해열, 진통제로 이용한다.

대극과 비단풀(땅빈대)는 마치 쇠비름을 축소시킨 듯한 모습이다. 땅에 바짝 붙어 자생하며 마치 비단을 깐 듯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플라보노이드와 사포닌이 풍부해 항암, 항균작용을 한다. 심장질환, 신장질환, 당뇨 등 다양한 질환에 쓰이고 타박상과 뱀독 치료제로도 쓰였다.

 

 

벼과의 새포아풀 역시 도시의 가장 흔한 식물이다. 개체가 작고 거의 기듯이 볼품 없이 자라는데, 잎은 납짝하면서 털이 없고 부드럽게 안으로 오므라지는 특징을 보인다. 가뭄에도 강해서 척박한 환경 어디라도 번식한다. 발아해서 꽃피우고 생명 다하기를 6주만에 반복한다.

벼과 바랭이도 새포아풀 못지 않게 도시에 완벽히 적응한 개체이다. 바닥을 기는 줄기에서 뿌리를 내리므로 번식이 매우 빠르다. 이삭은 마치 부채살처럼 보이므로 구별이 쉽다.

 

 

이상의 잡초 외에도 수천의 잡초들이 도시와 산야에서 생장하고 있다. 모두가 저마다의 성장전략을 구사하며 분투 중이다. 이나가키 히데히로의 잡초에 대한 성찰과 철학을 옮기며 이만 마친다.

— 보통의 식물들이 태양을 향해 위로 줄기를 뻗는 것에 반해, 사람들에게 많이 밟히는 잡초는 옆으로 줄기를 뻗는 전략을 구사한다. ‘쓰러져도 다시 일어나는 것’이 잡초라고 알고 있는 우리의 상식과는 다른 이야기다. 잡초는 오히려 살아남기 위해 밟혀도 일어나지 않는 쪽을 선택한다. 심지어 씨앗을 멀리 전파하기 위해 밟히는 것을 적극 이용하기까지 한다. ‘밟혀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야말로, 잡초의 성장철학이다. 질경이의 학명 ‘Plantago asisrica’의 ‘Plantago’는 ‘발바닥으로 옮겨진다’는 의미이고 밟힘을 이용하는 대표적 사례이다.

‘약한 식물’이 건재할 수 있는 이유는, 실은 ‘강한 식물’이 힘을 발휘할 수 없는 장소에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예측 불가능한 환경’이다. 강한 식물은 안정된 조건에서 힘을 발휘한다. 하지만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는 불안정한 상황에서는 제대로 힘을 발휘할 수가 없다. 예측 불가능한 환경에서 성공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강한 식물을 이길 수 있는 ‘힘’이 아니라 예측 불가능한 환경을 극복하는 ‘지혜’이다. 잡초는 그 지혜를 잘 보여준다.

잡초가 지닌 생명력의 비밀은 밖에서는 보이지 않는 깊은 뿌리에 있다. 수경재배 식물은 뿌리가 길지 않다. 무리해서 뿌리를 뻗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물이 없을 때, 역경에 처할 때 뿌리는 비로소 더 깊어지는 것이다 —

 

송상훈 / 사단법인 푸른아시아 전문위원  sustainability@sjournal.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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