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지평 오늘바람
대학의 성적평가, 문제는 없을까?

‘꿀강 잡아라’

꿀강, 꿀처럼 달콤한 강의의 줄임말이다. 보통 부담 없이 수업을 들으며 학점을 잘 받을 수 있는 강의들이 꿀강에 속한다. 수강신청 기간이 되면 대학생들은 꿀강을 잡기 위해 경쟁한다. 자신이 듣고 싶은 강의보다 좋은 학점을 받을 수 있는 강의를 선택하는 게 대부분이다. 이제 대학생들은 “이 강의 들을만해?“ 보다 ”학점 잘 줘?“를 먼저 물어본다. 취업을 위해서는 기업이 요구하는 학점을 맞춰야 하기 때문에 꿀강을 찾는 것이다. 대학이 학문을 탐구하는 공간이 아닌 꿀강을 찾는 공간이 되고 말았다.

 

경희대학교 학사운영에 관한 규정 / 출처:경희대학교 홈페이지

 

꿀강에 몰리는 근본적인 원인은 대학의 성적평가 방식에 있다. 경희대학교 학사운영 규정 제42조를 보면 ‘성적평가는 교과목에 있어 학점표준화제도(B+이상 40%이내)에 따라 성적등급을 부여한다’라고 명시돼 있다. 시험에서 아무리 높은 점수를 받아도 수강생의 40% 안에 들지 못하면 B+학점 미만을 받는 것이다. 이는 경희대학교만의 문제가 아니다. 대부분의 대학이 상대평가 방식을 도입하고 있다. 동국대학교는 수강생의 30%만 A학점대를 받을 수 있고 세종대학교는 더 적은 25%만이 A학점대를 받을 수 있다. 

 

상대평가 방식은 왜 시작됐을까?

상대평가 방식은 학점 인플레이션을 막기 위해 도입됐다. 1990년대에는 성적 평가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이 없었다. 기준이 없다 보니 높은 학점이 남발됐고 학점의 가치가 떨어졌다. 높은 학점을 가진 학생들이 많아 그 중 진짜 우수한 학생을 가려내기 어려워졌다. 2010년, 교육부는 대학평가항목에 ‘성적 분포의 적절성’이라는 항목을 넣었다. 대학들은 대학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받기 위해서 상대평가 방식을 도입하기 시작했다. 기존 방식대로 학점을 준다면 성적 분포가 앞으로 쏠린다고 본 것이다. 해당 항목은 2015년에 대학의 다양성과 자율성을 존중하겠다는 이유로 삭제된 상태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대학들이 상대 평가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경쟁을 당연시 하는 분위기

상대평가 방식은 과도한 경쟁을 부추긴다. 우리는 이미 상대평가로 인한 폐해를 많이 보아 왔다. 컨닝, 성적조작, 학업 스트레스로 인한 자살은 우리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경쟁의 문제점이다. 특히 현 교육체계는 대학에 오기 전부터 상대평가 방식을 학생들에게 강제하고 있다. 중·고등학교 때 1등급을 받기 위해선 4% 안에 들어야 하며 들지 못하면 2등급을 받는다. 간혹 수능에서 96점을 받아도 2등급이 나오는 이유다. 좋은 등급을 받아야 좋은 대학에 입학할 수 있다는 생각에 학생들은 성적에 집착하게 된다. 경쟁 속에서 자라온 학생들이 그대로 대학에 들어간다. 대학도 고등학교와 별반 다르지 않다. 일정 비율 안에 들어야만 좋은 학점을 받을 수 있다. 좋은 학점을 받아야 좋은 직장에 취업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고등학교는 대학 진학기관, 대학은 취업기관이 돼 버렸다. 보편적 교육을 받는 고등학교와 달리 스스로의 선택으로 학업을 해야 할 대학과는 별로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다. 친구들은 협업의 대상이 아닌 경쟁의 대상이 됐다. 협업보다는 경쟁이 더 만연해진 것이다. 어릴 때부터 상대평가방식이 만들어 낸 경쟁 시스템 속에서 자라 자연스레 대학에 와서도 그 시스템에 순응하고 있다.

 

무시되는 개인의 성취도

상대평가 방식은 개인의 성취도를 무시한다. 절대평가 방식에서 높은 점수를 받으면 좋은 학점을 받을 수 있다. 높은 점수라는 개인의 성취도에 좋은 학점이라는 적절한 보상이 따르는 것이다. 반면 상대평가 방식은 다르다. 개인의 성취도에 따라 학점을 주지 않는다. 다른 학생들과의 비교를 통해서 학점이 부여된다. 스스로 아무리 높은 성취도(점수)를 달성해도 좋은 학점을 받는다고 장담할 수 없다. 결국 상대평가 방식은 개인의 성취도를 무시해 학생들이 실망감 내지 박탈감을 느끼게 한다.

 

교수의 자율성 하락

상대평가 방식은 교수의 자율성을 떨어트린다. 교수의 강의는 이제 학점을 잘 주냐 안 주냐에 따라 평가가 달라진다. 더 이상 교수의 강의력은 평가 대상이 아니다. 흔히 학점을 퍼주는 강의는 좋은 강의가 되고 학점을 짜게 주는 강의는 나쁜 강의가 되고 만다. 강의평가에 신경 쓰는 교수들은 학점 부여방식에 고민한다. 상대평가 방식에서는 성적을 아무리 잘 준다 해도 누군가는 좋은 학점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불만이 나오게 된다. 교수들은 학생들에게 평가 기준을 설명해야 한다. 따라서 문제의 변별력을 높여 평가 기준을 명확히 구분짓고 싶어 한다. 대학에 가면 논술 시험을 본다는 것도 옛말이다. 논술형 문제는 명확히 성적을 구분짓기 어렵기 때문에 줄어들고 있다. 결국 교수들은 빈칸 뚫기 유형 같은 단순 암기 문제가 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성적평가 방식 변화의 필요성

대학의 성적평가 방식은 달라져야 한다. 절대평가 방식으로 무조건 돌아가자는 것이 아니다. 절대평가 방식 역시 학점 인플레이션을 초래하여 학점에 대한 신뢰도를 떨어트리는 문제점을 이미 보여줬다. 상대평가와 절대평가, 두 평가 방식을 적절히 사용해야 한다. 2018년, 이화여자대학교는 교수자율평가제도를 도입했다. 교수자율평가제도에서 담당교수는 상대평가 또는 절대평가를 택일하거나 두 가지 평가를 절충하여 활용할 수 있다. 이대학보에 따르면 교수자율평가제도 아래 학생들의 동기부여와 경쟁완화의 효과가 나타났다. 연세대학교 의과대학는 Pass/Non Pass 형식의 절대평가 방식을 활용하고 있다. 해당 평가방식 아래 교수와 학생 모두 성적에 대한 고민을 덜 수 있게 됐다.

 

출처:교수신문

 

최근 학점을 보지 않고 블라인드 채용을 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 학점보다는 회사에서 필요한 실질적인 능력을 보겠다는 것이다. 학생들은 학점에 대한 태도를 바꿔야 한다. 절대평가 방식이 학점을 퍼준다고만 생각하면 안 된다. 학점에 신경쓰던 시간을 줄여 새롭게 자기 개발을 할 수 있는 기회로 봐야한다. 2015년 고려대학교를 시작으로 점차 절대평가 방식을 늘리고 있는 학교가 증가하고 있다. 변화된 성적평가 방식 아래 자신의 역량을 기르는 대학생의 모습을 기대해본다.

 

신승오 인턴기자  sustainability@sjournal.kr

<저작권자 © 지속가능저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