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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주권 의식을 갖자

우리는 미디어에 대응하여 주체적으로 살고 있는가?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다’고 대답할 것이다. 우리는 1인 미디어 시대에 살고 있으며, 대부분의 사람들은 표현의 자유를 지지하는 문화 속에 있기 때문이다. 기술적 접근성 또한 뛰어나다. 1인 미디어의 좋은 영향 중 하나가 바로 ‘주체성’이다. 우리는 얼마든지 1인 방송을 할 수 있고, 볼 수 있다. 꼭 1인 미디어가 아니더라도 여러 사이트의 게시판, 국민청원, 댓글 등 우리의 어떠한 창구를 통해서든, 어느 시간이든 의견을 표현할 수 있으며 타인의 의견을 접하는 것도 마찬가지 이다. 그런데 우리가 하루에도 수천 번씩 미디어를 접하는 만큼, 우리의 생각을 조종하고 있다면 어떠한가?

현대사회의 미디어들은 우리의 주체성을 막는다. 그 대표적인 예가 검색엔진, ‘필터 버블’이다. ‘필터 버블’이란, 엘리 프레이저가 TED강연과 그의 책 <생각 조종자들>에서 제시한 개념이다. 그는 포털사이트나, 각종 검색엔진이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구축함에 있어서 ‘개인이 좋아하는 것’위주로 보여준다고 말했다. 이것은 개인이 세상을 보는 시각을 개인의 선호대로 제한하기 때문에 사고를 편협하게 만든다.

이러한 사용자 인터페이스는 2000년대 초반부터 본격적으로 활발히 연구 된 ‘빅데이터’로 인해 더욱 정교화 되었다. 빅데이터 기술은 검색엔진이 단순히 우리가 원하는 것만 보여줄 뿐만 아니라, 수용자들로 하여금 ‘확증 편향’을 만들어 낸다. ‘확증 편향’이란 자신의 생각과 일치하는 정보는 제대로 받아들이고, 자신의 생각과 일치하지 않는 정보는 배척하거나 왜곡해서 받아들이는 경향을 뜻한다. 빅데이터를 활용한 SNS의 마케팅은, 사람들의 관심사와 정치적 성향을 분석해 그것과 관련된 정보만을 내놓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 이상으로 생각하는 힘을 잃어버리게 된다. 우리가 접해야 할 다양한 의견과 표현은 단지 기술에 의해 제한되고, 우리는 결국 우리가 사고하는 대로 정보를 받는다. 결과적으로 우리의 사고는 다른 의제나 의견을 받아들일 수 없을 정도로 견고해지는 것이다. ‘필터버블’과 빅데이터 기술은 인터넷과 SNS의 긍정적인 영향인 ‘소통’을 가뿐히 짓밟아버리는 셈이다.

요즘 SNS와 쇼핑몰 어플리케이션을 오가며 놀란 사실은 쇼핑몰 어플리케이션의 장바구니에 담아놓은 대부분의 상품들은 나의 SNS의 피드에서 그대로 노출된다는 것이다. 또한 내가 한번이라도 들어갔던 페이지의 상품들은 나의 SNS피드에 무수히 게재된다. 그들은 내가 한번이라도 선호를 표현한 것만 광고하고 있었다. 나의 선호를 파악해, 그것과 연결된 모든 계정에서는 그 ‘선호대로’나의 구매방식을 조절하고 있었던 것이다. 도대체 어느 정도 까지 나의 선호가 분석되고, 유통되어 나의 행동을 조절하는 지, 내가 이걸 원하긴 했었는지 분간을 하기 어려웠다. 현 상황은 ‘물난리가 나면 물은 많지만 정작 마실 물은 없다’와 같은 상황과 비슷하다. 수많은 정보가 인터넷을 통해서 끊임없이 유통되지만, 정작 우리에게 필요한 정보는 없다. 우리는 그들이 ‘우리가 필요하다고 느낄 것이다.’라고 설정한 정보만을 받아들이고 있을 뿐이다. 과연 이것이 사용자 인터페이스의 용이성이라고 할 수 있는지, 또 그것은 우리에게 어떤 악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기민하게 반응하여야 한다.

우리에 일상생활에 가장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미디어는 언론이다. 언론은 현재 매우 교묘하게, 우리들을 속이며 정치, 경제 집단의 이익을 대변하기에 여념이 없다. 그들은 우리에게 ‘사실만을 전달한다.’고 말하곤 한다. 하지만 사실은 ‘진실’이 아닐 수 있다. A라는 사건과 B라는 사건이 동시에 일어났다고 가정해보자. 언론이 ‘A가 일어났다’라고 보도한다면 그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B라는 사건이 이 사건의 본질이고, A는 부수적인 차원이었다면, ‘A가 일어났다’라는 언론의 보도는 과연 진실일까? 언론은 이와 같은 행태를 통해서 우리에게 중요한 정보를 주지 않고 이익집단에게 유리한 식으로 프레임을 씌운다. 실제로 일어난 일을 보도했다는 이유만으로 법적으로 면책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우리는 그 사건의 전체적인 맥락인 'B'의 본질을 모르고 넘어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심지어 우리는 이러한 언론의 교묘한 보도 행위를 알아차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를테면 태안 기름 유출 사건’은 언론이 아주 중요한 정보를 빠뜨린 채 보도 행위를 한 실례가 될 수 있다. 결과적으로는 수많은 자원봉사자와 시민들의 성금으로 생태계가 복원되었지만 이 사건은 애초에 잘못된 방향으로 해결되었다. 이 태안 기름 유출사건의 원인은 삼성중공업이 무리하게 삼성 1호를 예인하다가 와이어가 절단되며 유조선과 충돌한 것이다. 하지만 언론은 이를 ‘삼성-유조선 충돌 사고’라 보도하지 않고 ‘태안 기름 유출 사고’라고 보도하였다. 이 때문에 대한민국의 여론은 삼성에게 엄중한 책임을 묻는 방향으로 형성되지 못하였고, 2008년 법원은 삼성에게 예외적 법률을 적용시켜 56억원이라는 가벼운 벌금 판결을 내렸다. 이것은 당시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낸 성금 300억원보다 훨씬 적은 금액이다. 이 뿐만 아니라, ‘태안 기름 유출 사고’라는 프레임 때문에 소비자들은 ‘태안’원산지 제품을 피하게 되었고, 피해 주민들은 아직도 손실액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필터 버블, 빅데이터 기술 발전으로 인한 ‘확증 편향’, 공익을 추구하기 보단 개별 집단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 존재하는 듯 하는 언론 보도, 이와 같은 교묘한 미디어의 행위들은 우리의 인식, 선호, 행위를 조절한다. ‘쌍뱡향 소통’, ‘실시간 인터페이스’를 내걸고 전 세계의 사람들을 하나로 모으고, 개개인의 힘을 증대시키며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었던 인터넷의 등장은 잠시 그럴듯한 기조를 보였으나 이내 곧 조금 더 교묘한 속임수를 생성해내었다. 사람들이 특정한 것에 대해서만 생각하게 만들고, 그것만을 광고한다. 비단 마케팅에만 일어나는 문제가 아니다. 사람들이 생각할 것을 아예 설정해버리거나, 생각의 방향 또한 미디어가 조절한다. 이제 개인의 자유로운 의사표현, 사상의 교환은 우리가 지키지 않으면 가질 수 없는 권리가 되었다.

미디어의 속임수는 더욱 난해하고, 교묘해진다. 우리가 가만히 앉아 그것을 마치 응당히 소비해야 할 정보처럼 대응한다면 미디어는 또 그러한 정보만을 생성하고, 전달할 것이다. 우리는 ‘미디어 주권’ 의식을 가지고 과감히 정보를 소비하지 않을 필요가 있다. 미디어가 ‘보도하지 않는 힘’을 쓰고 있다면 우리는 ‘소비하지 않는 힘’을 발휘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미디어가 ‘시키는 대로’ 소비하고, 행동하게 될 것이다.

 

정보은 인턴기자  sustainability@sjournal.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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