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지평 오늘바람
거식증을 숭배하는 사람들

흔히 ‘거식증’이라고 잘 알려진 신경성 식욕부진증(Anorexia Nervosa)은 체중증가에 대한 극심한 두려움으로 인해 음식섭취를 거부하는 섭식장애의 일종이다. 폭식을 한 뒤 구토를 하거나 이뇨제를 섭취해 음식물을 배출함으로써 체중증가를 막는 신경성 폭식증(Bulimia Nervosa)과 달리 거식증은 음식물 섭취를 일절 거부한다. 때문에 체중 저하가 훨씬 빠르며, 그만큼 더 위험하다. 그런데 심하면 사망에 이르기까지 하는 이 치명적인 질병에 찬성하는 이들이 있다. 바로 ‘프로아나(pro-ana)’다. 이는 찬성을 뜻하는 ‘pro’와 거식증을 뜻하는 ‘anorexia’의 앞 글자를 합성한 신조어로, 단순히 거식증을 앓는 것을 넘어 거식증을 숭배하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프로아나의 등장이 최근 1, 2년 사이의 일은 아니다. 2000년대에도 이미 온라인상에 형성된 거식증 환자들의 커뮤니티에 관한 분석이 여러 건 이루어져 학술지에 발표되었다. 개중에는 단지 치료를 원하는 섭식장애 환자들 간의 소통을 도모하는 목적의 사이트도 있었다. 그러나 2006년 미국에서 진행된 연구(Norris, Boydell, Katzman)에 따르면, 거식증과 관련된 12개 웹사이트를 분석한 결과 사이트 이용자들은 주로 체중을 감량하는 방법을 공유하고, 다이어트를 자극하는 사진이나 문구를 업로드 하는 등의 활동을 했다고 한다. 즉, 프로아나라는 용어는 이미 2000년대부터 존재했으며 이들은 거식증을 하나의 라이프스타일로 치부, 적극적으로 관련 정보를 공유한다.

 

 

우리나라 역시 프로아나라는 용어가 최초로 소개된 것은 꽤 시일이 지난 일이다. 그러나 요즈음 들어 트위터, 인스타그램 등 개방형 SNS를 중심으로 프로아나들의 활동이 이루어지며 다시금 화두에 오르고 있다. 과거에는 가입자들만 활동할 수 있는 온라인카페에서 자신들만의 커뮤니티를 형성했다면, 현재는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SNS에서 활동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경쟁적으로 앙상한 몸의 사진을 올리고, 몸무게를 인증하고, ‘음식을 씹은 뒤 삼키지 말고 뱉으라’거나, ‘먹은 뒤 손가락을 목구멍에 넣어 구토하라’는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빼빼 마른 유명연예인의 사진을 올리며 자극을 받는 한편 극단적 저체중에 이르지 못한 자신의 몸무게를 두고 자기비하에 빠지기도 한다. 심지어는 ‘거식증으로 죽는 게 꿈이다’라는 말까지 서슴지 않는다. 이렇게 SNS를 통해 공개적으로 거식증에 대한 선망을 드러내는 이들은 10대에서 20대 사이의 여성이 대다수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들은 극단적 식이 제한을 택하는 자신들의 방식이 개인의 선택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사실 한국 여성이라면 프로아나가 되기를 자처하지는 않았더라도 비슷한 경험을 수도 없이 겪었을 것이다. 각종 다이어트 식품과 군살을 빼는 운동을 꿰고 있으며, 일부러 꽉 끼는 옷을 사서 그에 맞게 살을 빼거나, 심한 몸살을 앓고 난 뒤 수척한 모습으로 나서 주위의 부러움을 사는 일은 매우 흔하다. 혹독한 다이어트로 감량에 성공한 여성연예인들은 프로답다는 찬사를 받고, 별다른 노력 없이 마른 몸을 갖게 되는 건 모든 여성들의 꿈으로 여겨진다. 일생 동안 이런 경험을 하면서 “여자라면 한평생 다이어트를 해야 한다”는 명제를 당연시 여기는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은 결과다.

그러나 한국 사회는 여성에게 마른 몸을 만들 것을 요구하면서도 ‘지나치게 마른’ 프로아나들은 오히려 손가락질한다. 프로아나를 비난하는 많은 이들이 ‘마르지 않아도 아름답다’, 혹은 ‘건강한 다이어트를 할 수 있는 데도 극단적 방식을 택하는 게 이해가 안 된다’는 접근방식을 택한다. 어째서 거식증이라는 병리적 현상이 특정 문화권, 특정 성별, 특정 연령대에 두드러지게 나타나는지에 대한 이해는 부재한 채 무조건 상대방을 타자화하는 것이다. 하지만 ‘여성은 아름다워야 하며, 아름다워지기 위해서는 건강한 방식으로 다이어트를 해야 한다’라는 전제로부터 벗어나지 못한다면 거식증 찬성론자들은 끊임없이 재생산될 것이다.

작년 한 해를 달군 ‘탈코르셋’이라는 의제는 여성들로부터 큰 공감을 얻으며 미용에 투자한 어마어마한 시간과 비용은 온전한 자의적 선택이 아니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 사회는 구조적으로 여성에게 특정한 신체를 재현하기를 요구하고 있다. 따라서 프로아나들은 거식증을 선호하는 것이 개인의 자유라면 어째서 유독 선진 문화권의 젊은 여성들이 프로아나가 되기를 선택하는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또한 사회적으로도 프로아나와 같은 병리적 현상에 대한 대책을 논의해야 할 것이며, 여성의 신체상에 관한 긍정적 개념을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

 

김한결 인턴기자  sustainability@sjournal.kr

<저작권자 © 지속가능저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