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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성전망대를 찾아가다

북한 관련 교양수업에서 북한 출신 교수님께서 항상 하시던 말씀이 있다. “북한도 남한이랑 똑같아. 다 사람 사는 곳이야.” 우리 학교가 통일 관한 연구가 활발한 만큼 북한 출신 교수님을 통해서 북한의 생활 전면을 개략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번 한 학기 동안 교수님을 통해서 북한에 대해 생활에 스민 사상을 통해 다르면서도 같은 점을 배웠다. 이번 달이 호국보훈의 달로서 내가 자란 곳 근처에서 남북한을 직접 느낄 수 있는 곳을 들려보기로 했다. 요즘 북한에 관한 뉴스를 자주 접하다 보니, 배운 것을 토대로 직접 경험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남한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인 북한. 학창시절에 멀리서 보았던 북한 땅을 이번에 다시 가보기로 했다.

여행을 가기로 한 날, 비가 올 것이라는 일기예보가 있었다. 나에게는 여행에 대한 고정관념이 있는데, 흐릴 때는 여행이 망했다는 것이다. 여행은 날씨가 크게 좌지우지한다고 생각해왔다. 그래서 날씨 영향을 많이 받았다. 이번 여행도 비가 안 올 때 일찍 떠났다. 엄마와 단둘이 향했다. 목적지는 화천에 있는 칠성전망대였다. 그 이유는 고등학교 때 견학 갔었는데, 한적하고 날씨가 좋으면 북한사람들이 일하는 모습도 봤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북한과의 관계에 대해서 생각해봤던 계기가 되었던 곳이기도 했다.

 

 

 

출발할 때는 구름이 많은 흐린 날씨였지만, 가는 동안은 해가 반짝 뜬 여행 가기 좋은 날씨였다. 그동안 보던 풍경과는 다른 새로운 곳을 지나 달렸다. 중간에 ‘멋둔’이라는 곳도 있었다. 지명 자체가 정말 예뻤다. 1리, 2리 등 일본 잔재가 남아있는 지명보다는 그 지역의 특징을 살린 이름이 더 멋스러웠다. 멋둔을 통해 엄마와 나는 이 지역의 색다른 느낌을 받기도 했다. 한참을 달리다가 칠성전망대로 가기 전에, 칠성전망대안내소를 들려야 했다. 간단하게 주민등록증으로 신원 확인했다. 하루에 4번 정해진 시간에 인솔자와 동행하여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인솔하여 가면서 주변을 둘러봤다. 민간인통제구역 전까지는 주민들이 농사짓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통제구역으로 들어가기 위해서 몇 차례의 검문소를 지나기도 했다. 들어가다 보니 양옆에 지뢰를 알리는 표시판들이 많았다. 그리고 숲이 더 우거져서 일반적인 숲속을 지나는 느낌과는 달랐다. 그러다가 낡은 다리 하나를 건넜는데, 낡지만 그 다리가 산과 산을 이어주었다. 해가 떠 있을 때 조수석 쪽에서 본 광경은 그저 동네 내천이었다. 나무들이 우거진, 자연의 소리만 조용하게 나는 곳이었다. 가다가 어떤 구간은 오르막길인데 시속 30km로 가기도 하며 일반적인 도로와는 달랐다.

이렇게 가다 보니, 어느새 산 중턱에 도착했고 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경사가 있는 400m를 걸었다. 사방이 조용했다. 오직 산바람 소리, 산새 소리, 풀벌레 소리가 났다. 자동차의 경적소리 같은 사나운 소리들은 나지 않았다. 그리고 카메라를 함부로 꺼낼 수 없는 무언의 긴장감 또한 감돌았다. 뜨거운 햇살을 받으며 엄마와 숨을 헐떡이며 오르다가 이내 도착했다. 카메라를 가진 나를 조금은 견제했다. 하지만 나도 지정된 곳 외에는 국가 안보 차원에서 찍을 생각은 없었다. 대신 눈으로 자세히 담으면 되기 때문이었다.

먼저 이곳이 어떠한 곳이고, 어떠한 배경이 있는지 영상을 통해 교육을 필수적으로 받아야 했다. DMZ와 남방한계선, 북방한계선, 군사분계선 등 그 개념을 알고 직접 어디서부터인지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또, 영화 고지전의 배경이 된 곳은 어디이고, 그 전투를 통해 38선 위로 남한의 군사분계선을 설정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고등학생으로서 방문했을 때도 들었는데, 집중해서 듣지 않아서 배경지식으로 남지 않았었다.하지만 지금은 그 지식을 더 잘 흡수할 수 있었다. 영상으로의 교육이 끝나고 점점 구름이 몰려오더니 이내 비가 왔다. 그러던 와중에도 어디가 남한땅과 북한땅인지를 망원경을 통해 봤다. 오늘은 날씨가 좋지 않아 영상에서처럼 북한사람들이 흰색 옷을 입고 일하는 모습을 볼 수는 없었다. 영상에서 흰색 옷을 입히는 이유는 탈북하거나 도망가는 사람은 사살하기 위함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이러한 정보를 통해 교수님의 사람 사는 세상과 불일치하기도 했다. 상당히 혼란스러운 정보였다. 하지만 그 속에서 운영하는 체제를 통한 생활에 대한 전반으로 모든 곳이 그렇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려와 보니 그곳에 상주하는 군인들과 면회하려는 면회객들이 많았다. 정말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오직 산 능선만 보이는 이곳에 내 또래가 있다고 생각하니, 괜시리 미안했다. 그리고 비를 뚫고 전망대에서 허락된 단 한 곳에서 사진을 찍기 위해 노력했다. 내가 딛고 있는 이곳을 남기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때도 상당히 경계하셨던 것 같다. 단 한 장의 사진, DMZ와 유엔 깃발, 한국 깃발. 그리고 약속된 시간까지 엄마와 내가 망원경으로 궂은 날씨 속에서도 주변을 둘러봤다.

 

그러다가 약속된 시간이 다 되었을 때, 빗줄기가 굵어졌다. 거세게 왔다. 심지어 낙뢰와 천둥까지 동반했다.그리고 우리는 내려갈 수 없었다. 초속당 2번 낙뢰가 쳤기 때문이다. 심지어 전망대 주변까지 낙뢰가 내렸다고 전했다. 무기한 대기를 할 수 밖에 없었다. 다른 하산할 차선은 제시해주지 않았다. 이렇게 오래 있을 거라고 예상하지는 못했지만, 면회객들에게는 군복무 중인 아들, 친구, 남자친구와 같이 더 있을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그래서 우리도 의미를 두기로 했다. px도 이용할 수 없고, 소등된 상태에서 엄마와 대화로 시간을 보냈다. 오랜만에 핸드폰 없이 이야기를 나눈 시간이었다.

그러면서 비 오는 풍경을 바라보는데, 문득 생각이 들었다. 비록 북한과는 한반도 땅에서 군사분계선을 통해 분단되어있지만, 하늘을 통해서 같은 날씨를 공유하는 것처럼 우리는 같은 시공간을 공유했던 한민족이었다는 사실이다. 분단 전까지 같은 역사를 공유하던 우리는 서로의 사상을 인정하고 다른 나라로 살아야 하는지, 합쳐야 하는지 고민했었다. 중학교 때까지는 통일 교육을 통해 무조건 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사회에 다른 시각들을 접하면서 이렇게 체제와 사상이 다른데 이대로 살아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그러다가 요즘 들어서 북한과 같음과 다름을 자세히 배우고 이해를 하면서 통일을 했으면 좋겠다는 염원을 하고 있다. 단지 감정적인 생각이지만, 같은 역사를 공유하고 어려운 시기를 같이 이겨냈고, 분단으로 인한 아픔을 보는 것이 안타깝기 때문이다. 내 주변의 이산가족 상봉을 기대하시던 이웃집 할아버지는 한평생 그리워하시다가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전망대에 와서 북한, 통일에 대해 생각하다 보니 비가 잦아들었다. 그리고 우리는 왔던 것처럼 걸어서 하산했다. 인솔을 받아 다시 오던 길을 되돌아 왔다. 그러던 중 조수석에서는 볼 수 없지만, 운적석에서는 볼 수 있었던 광경을 봤다. 아까 그 허름한 다리 밑을 지나는 천이 물안개와 더불어 정말 멋있었다. 멋있다기보다는 마음에 꽂혔다. 그 잔상이 내려가면서 계속 남았다. 비 온 뒤의 광경이 여행과 날씨의 관계에 대한 고정관념을 탈피했다. 아마 이 과정이 내가 이 여행을 하고 난 뒤의 인식변화가 아닐까 싶었다. 조수석에서 운전석에서 볼 수 있는 광경을 못 봤다가 갔던 길을 되돌아 오면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돌아오는 길은 갈 때의 길과 분위기가 달랐다. 평소 같았으면 여행 중에 왜 비가 오냐며 시무룩했을 텐데,오히려 주변 풍경에 더 집중했다. 마침내 집에 도착하니 나를 반기는 것이 하나 더 있었다. 무지개가 뜬 것이다. 아주 어렸을 때 한 번 봤었는데, 이번에 봤다. 여행에 대한 고정관념이나 북한에 대한 생각을 정리한 이 여행의 끝은 무지개였다. 무지개에 일곱 빛깔과 칠성전망대, 그 사이에서 말이다.

 

조서연 인턴기자  sustainability@sjournal.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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