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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여성에 대한 폭력에 관한 몇 가지 생각

최근 베트남과 한국에서 공분을 사고 있는 폭력사건을 보며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부부 사이에서 폭행이 일어난 것 자체가 문제이기도 하지만 짧은 동영상에서 목격된 폭력의 수위가 너무 높아 깜짝 놀랐다. 어쨌거나 결혼은 사랑을 구조화하는 방식인데, 드러난 폭력만으로 판단하면 증오의 동거 혹은 폭압적 주종관계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한국에 온 지 한 달가량 된 피해 여성이 자주 사용한 한국말이 “잘못했습니다. 때리지 마세요.”였다는 보도는 마음을 아프게 한다.

부부를 심층 면접하거나 사건을 상세히 살펴보지 않아서 단언하긴 힘들지만, ‘만성적 혐오와 관성적 폭력’을 엿볼 수 있었다. 작은따옴표 안을 조금 보완하여 정확하게 기술하면 ‘만성적 여성혐오와 관성적 가정폭력’이 된다. 결론부터 말하면 여성혐오와 가부장적 억압의 구조가 사건의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인터넷상에서 이 사건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분노하였는데 내가 읽은 한 개의 기사에서 성별 댓글 비중은 남성 대 여성이 대략 ‘60% : 40%’였다. 전체 기사를 보지 못해서 성별로 분노의 표출이 어떤 양상을 보이지는 단언할 수 없지만 여성보다 남성이 더 적극적으로 표출의 대열에 참여하고 있다고 짐작된다. 양성 간에 이 사건을 보는 시각은 아마 많이 다를 것이다. 대충의 쟁점도 한눈에 들어왔다.

그중 “여자와 아이는 때리지 말라”는 ‘각성된’ 가부장적 인식은 “여자에게 맞아도 되냐”를 필두로 폭력용인의 범위에 대한 다양한 반론을 불러일으켰다. “사람에게 폭력을 행사해선 안 된다”라고 했으면 논란은 없었을 테지만, 그러한 전반적 인식전환은 아마 어려웠을 것으로 추측된다. “여자와 아이는 때리지 말라”에 깔려있는 배경논리는 가부장으로서 여자(아내)와 아이를 대할 때(혹은 지배할 때?) 자발적 순종을 끌어내도록 노력하라는 것으로, 지배관계나 크게 보아 폭력의 배제까지 포함하진 않았을 터이다. ‘멋진 가부장’의 ‘세련된 여성혐오’의 방식일 가능성이 있다. 가부장제의 행사 기제에 관한 견해인 만큼 대상은 여자와 아이가 될 수밖에 없다.

또한 피해여성이 베트남 국적인 것을 근거로 매매혼의 문제점을 많이 지적했다. 이 사건만 놓고 보면 두 사람의 결혼이 매매혼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반론은 맞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 일어나는 국제결혼의 적잖은 숫자가 매매혼이란 혐의는 혐의에서 그치지 않지 싶다. 이 사건은, 매매혼과 매매혼에서 신부로 팔려오는 여성이 속한 국가들에 대한 한국인의 근거 없는 우월감과 불가피하게 괸련된다.

“매매혼이 문제가 아니라 저 인간 개인의 인성 문제”라는 댓글은 매우 상징적이다. 이 댓글엔 “이상하게 몰아가네 페미년이 ㅉㅉ”라는 문장까지 포함돼 있어 ‘완결된 논리’를 보여준다. 가부장제의 억압과 여성혐오에 대한 가장 일반적이고 상투적인 반박논리가 바로 이것이다. 한국남자들이 모두 그렇지는 않고 일부 남성이 문제일 뿐이라거나, 나아가 적어도 나는 한남과 다르다는 논리로 종종 변용되어 사용된다.

이 의견은 부분적으로 맞다. 사실 매매혼은 문제가 아니다. 진짜 문제는 가부장제와 가부장제에 결부된 여성혐오이다. 매매혼은 가부장제와 여성혐오의 오래된 한 현상이며, 한국에서 구성된 ‘다문화 가정’ 가운데 일부 국제결혼은 세계화 시대의 국경을 넘나드는 매매혼일 따름이다.(당연히 국제결혼이 모두 매매혼인 것은 아니다. 가까운 내 주변에도 굳이 표시하면 ‘정상적으로’ 국제결혼하여 잘 사는 이가 있다. 이러한 논의의 어려움은 흔히 말하는 일반화의 오류와 편견의 고착화 및 확대이다. 그럼에도 ‘일부’의 사례가 중요하기 때문에 어려움을 무릅쓰고 이야기하게 된다.)

가부장제의 억압과 여성혐오는 사회환경에 따라 여러 이념과 결합되곤 한다. 이번 사건에도 가해자인 남편이 아내의 한국말 실력을 문제 삼은 것에서 드러났듯 가부장제는 제국주의 인식과도 쉽게 합체할 수 있다. 상상하면, 약자가 사건을 공론화할 SNS 같은 수단조차 없던 멀지 않은 과거, 한국에서 서구로 결혼해 나간 여성 가운데 그중에서 매매혼으로 팔려갔을 한국 여성들 또한 이번 사건의 여성과 비슷한 상황에 처했을 수도 있다. 서구 언어로 “잘못했습니다. 때리지 마세요”를 반복하며 폭력 앞에 속수무책으로 노출되었을 그들을 떠올리면 마음이 무겁다. 그들 또한 그 나라 말을 제대로 구사하지 못한다고 구박받았을 수 있고, 어디선가 한국인을 만나 한국말로 반갑게 대화한 게 외국인 남편에게 못마땅하게 여겨졌을 수 있다.

이러한 근거에서 개구리 올챙이 시절 모른다며 이 사건을 ‘반성모드’로 이해하는 것은 더 심각한 오해를 낳을 수 있다. 국가와 국민 간에는 제국주의적 인식의 작동방향과 방식이 (쉽지는 않지만) 달라질 수 있지만, 여성과 남성의 틀에서 보면 달라질 게 아무 것도 없다. 비유로서 말하여 남성은 언제나 개구리였고, 여성은 언제나 올챙이였다.

가부장제적 억압과 여성혐오는 역사의 개별 상황과 결합하여 당대의 특수한 모습으로 돌출하기도 한다. 유럽 중세의 마녀사냥에서 다른 여건을 모두 감안해도 왜 종국엔 ‘마女’가 희생자가 되었는지를 기억하자. 농촌지역을 중심으로 늘고 있는 결혼목적의 이주여성 또한 우리 시대의 특수현상이다.

이주여성을 자주 접하는 복지나 상담 전문가들은 요즘 베트남과 한국을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는 이 사건에 대해 별로 놀라지 않는다고 한다. 특별할 것이 없는 게, 그러한 유형의 폭력이 일상적으로 일어나기 때문이다. 특별하다면 공론화한 것이 특별하다고 할까.

사랑 없이 이뤄지는 약탈적인 매매혼에서 목격되는 폭력은 가부장제의 억압과 여성혐오의 현상일 뿐이다. 만일 이 사건의 결혼이 매매혼이 아니라고 하여도 본질은 같다. 이 사건에 등장한 결혼은 매매혼의 구조와 유사하지만, 가부장제의 억압과 여성혐오는 매매혼 밖의 영역에서도 창궐해 있다. 직접적 물리력에 덜 의존하고 덜 무식한 형태를 취할 뿐이다.

사건의 본질과는 상관이 없지만, 과거 베트남민족의 조국해방전쟁 때 우리가 미국의 용병으로 참전하여 그 민족의 해방투쟁을 방해하고 때로 민간인을 학살한 어두운 과거가 이 사건과 겹쳐지는 것은, 분명 과도하겠지만 어쩔 수가 없다. 베트남 사람들은 어떨까.

안치용 / 발행인  dragon@sjournal.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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