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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초등학교 급식시간에

얼마 전에 봉사활동을 하기 위해 한 초등학교를 방문했다. 그곳은 맞벌이 부부의 자녀들을 위해 방과 후에 돌봄교실을 운영하고 있었고 나는 지도 선생님을 보조해 아이들의 숙제 지도와 야외 활동 시 안전 지도를 도와주는 역할을 맡게 되었다.

야외 활동 후에는 간식을 먹는 시간이었고 운동장에서 실컷 놀고 온 아이들은 허기짐에 간식을 잔뜩 기대하는 눈치였다. 그 날 간식은 다져진 야채가 들어간 에그 샌드위치였고 샌드위치를 본 순간 아이들의 얼굴에는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아이들은 먹기 싫다며 소리쳤지만 지도 선생님께서는 그래도 한 조각씩은 다 먹어야 한다며 아이들에게 샌드위치를 나누어주셨다.

아이들은 샌드위치 속 야채가 먹기 싫어 계속 샌드위치를 바라보며 만지작거렸고 급기야 몇몇 아이들은 속을 빼내고 빵만 먹기 시작했다. 이러한 모습을 본 지도 선생님께서는 샌드위치를 다 먹어야 집에 갈 수 있다고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그러자 아이들은 하는 수 없이 매도 몰아 맞자는 심정으로 샌드위치를 한입에 쑤셔 넣고 물을 마셔 겨우 먹기 싫은 샌드위치를 삼켰다.

먹기 싫은 음식을 억지로 먹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문득 내가 초등학생 때 급식을 먹던 모습이 떠올랐다. 급식 아주머니께서 배식해주신 양의 음식을 남김없이 다 먹고 선생님께 식판 검사를 맡아야 비로소 점심시간에 친구들과 놀 수 있었다. 아직 익숙하지 않아 먹기 힘든 음식을, 내가 원하는 만큼도 아닌 아주머니께서 배식해주신 만큼을 다 먹는 것은 초등학생으로서 너무 힘든 일이었고 아직도 억지로 먹었던 음식을 볼 때면 그때의 기억이 떠오르곤 한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올바른 식습관 지도라는 명목하에 아이들에게 먹기 싫어하는 음식을 억지로 먹인다. 그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아 현재 급식지도 상황에 대해 좀 더 자세하게 알아보았다. 요즘은 다행히 대부분의 초등학교에서 배식받은 음식을 다 먹도록 강권하지는 않으며 생소한 음식은 한 번 정도만 먹도록 권장하는 형식으로 급식지도가 이루어진다는 기사를 읽고 급식지도 방식이 과거와 비교하면 많이 개선되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초등학교의 급식지도에 대해 자세하게 알아볼수록 생각지도 못한 급식의 문제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바로 어린이용 수저가 아닌 어른용 수저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언뜻 보면 전혀 문제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이는 ‘에디슨 젓가락’이라고 불리는 가벼운 교정 젓가락에 익숙해져 있는 미취학 아동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함과 동시에 아무런 준비 없이 어른들이 쓰는 무거운 쇠젓가락으로 밥을 먹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플라스틱이나 가벼운 스테인리스 소재로 된 15cm 어린이용 수저와 비교해 어른용 수저는 20cm로 길이 차이가 꽤 나며 쇠로 만들어져서 훨씬 무겁다. 아직 손가락 힘이 약한 저학년 학생들에게 어른용 수저는 한 손에 쥐기도 어려워 대부분의 아이들은 젓가락을 내려놓은 채 숟가락만으로 급식을 먹는다고 한다. 또한 고학년 학생들은 젓가락의 무게에는 익숙해졌지만 여전히 어른용 젓가락 사용을 어려워하며 X자 형태로 젓가락을 잡고 급식을 먹는다고 한다. 이러한 모습을 본 인천의 한 초등학교 선생님은 초등학교 저학년 학생들에게 어른 수저를 제공하는 것은 엄밀한 인권침해라고 주장하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제출했지만 이에 대한 뚜렷한 해결책은 아직 마련되지 않은 상태이다.

 

어린이용 수저 세트/ 출처: INP 공식 홈페이지

 

또 다른 문제는 급식 식단에 자극적인 음식이 꽤 많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저학년 학생 중에는 여전히 매운 음식을 잘 먹지 못해 김치를 물에 씻어 먹거나 조금이라도 맵거나 짠 음식을 먹으면 입 주변이 빨개지는 아이들이 있다. 하지만 식단에는 김치찌개, 깍두기, 떡볶이 등 자극적인 음식이 많이 등장한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매운 음식을 많이 먹어보지 않았던 아이들은 빨간색으로 가득한 식판을 보며 빨간 반찬을 외면한 채 흰밥만 먹는다. 또한 일부 아이들은 매운 음식에 익숙하지 않은 상태에서 매운 음식을 먹었다가 매운맛을 보고 케찹 등으로 만들어 빨간색이지만 별로 맵지 않은 음식에도 거부반응을 보이게 된다. 

 

자극적인 음식이 주를 이루는 급식/ 출처: 경향신문

 

사실 어른에게 있어서 어른용 수저나 매운 음식은 매우 익숙한 것이다.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 한다고 어른들은 자신이 어렸을 때 밥을 먹으면서 힘들었던 점을 고려하지 않은 채 그저 현재의 어른 관점에서 급식을 계획하다 보니 이러한 문제점이 발생한 것이다. 지금 이렇게 문제점을 지적하는 나조차 위에 언급된 두 가지가 초등학생들에게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최근에 깨달았고 아마 초등학생 자녀를 둔 부모가 아니라면 이 기사를 읽기 전까지 이러한 문제점을 인식하지 못했을 것이다. 

어른에게 당연한 것이기 때문에 아이들에게도 그럴 것이라 생각하고 초등학생에게 어른용 수저를 제공하는 것이나 매운 음식이 많이 포함된 급식을 무조건 다 먹도록 강요하는 것은 어쩌면 폭력이 될 수도 있다. 물론 올바른 식습관 형성이라는 의도는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음식에 대한 호기심을 키우려는 취지에서 싫어하는 음식도 한 번 시도해보도록 유도하는 것이 아닌 강압적으로 먹이는 것은 아이들에게 단순히 안 좋은 기억을 심어주는 것을 넘어서 어른이 되어서도 억지로 먹었던 음식에 대해 격렬한 거부 반응을 보이게끔 트라우마를 주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아이들은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어 어른들이 어떻게 지도하냐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는 흰 도화지와 같다고 생각한다. 어른들의 올바른 지도는 아이들이 이를 바탕으로 무한한 가능성을 펼칠 수 있도록 도와준다. 하지만 잘못된 방식의 지도는 올바른 어른으로의 성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러므로 어른들은 아이를 배려하고 아이들의 관점에서 생각하는 사회 분위기 형성에 힘써야 한다. 아이들이 각자 어떤 음식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지, 자극적인 음식에 어느 정도 민감한지 등을 고려해 아이들의 각자 상황 및 식성에 맞는 급식지도 방식을 마련해야 한다. 또한 아이들이 본인의 식성 및 식습관에 대해 발표하는 시간을 갖고 선생님이 각자의 특성에 맞춰 앞으로는 어떤 방식으로 급식지도를 할지 아이들에게 명시함으로써 아이들 스스로가 다른 사람의 입장을 고려해 보고 친구들은 나와 다를 수 있다는 점을 수용하도록 이끌어야 한다.

이렇게 개인 맞춤화된 급식지도를 실시할 뿐만 아니라 아이들 스스로가 자신의 식습관에 대해 생각해보고 친구들과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지면 점진적으로 익숙하지 않은 음식에 대한 거부감을 줄이고 조금씩 새로운 음식을 시도함으로써 올바른 식습관 형성이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급식지도의 답은 강제성이 아니라 기다림이라고 생각한다. 올바른 식습관을 형성하기까지 아이들의 입장을 고려하며 기다려주는 급식지도를 통해 아이들이 획일화된 사회가 아닌 서로에 대한 존중을 바탕으로 다양성이 허용되는 지속 가능한 사회로 나아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

 

박연수 인턴기자  sustainability@sjournal.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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