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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가족은 어디까지인가?

당신이 크게 다쳐 응급실에 갔다고 하자. 그런데 혈연관계의 가족들은 올 수 없고 당신에겐 10년간 함께 살아왔던 파트너만이 남아있다. 하지만 혈연보다 당신을 속속들이 더 잘 알고 있는 파트너는 법적 보호자로서 수술 동의서에 서명하지 못한다. 아픈 당신 대신에 검사, 치료 과정과 수술 후유증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도 없다. 학대를 당하는 등의 사정으로 연을 끊은 것이든, 멀어서 당장 올 수 없는 것이든, 혈연만이 당신의 건강권을 손에 쥐고 있다. 정작 같이 살며 당신을 파악하고 돌봐줄 수 있는 파트너는 보호자가 될 권한이 없다.

​그 뿐만이 아니다. 혈연관계나 혼인으로 얽히지 않으면 재산에 대해 어떤 권리도 주장할 수 없다. 상속권은 물론, 내가 죽었을 때 명의가 내 것이라면 파트너와 같이 살았던 집이라도 연락 한번 하지 않았던 먼 친척이 찾아와 요구한다면 파트너는 어쩔 수 없이 쫓겨나야한다. 또한 소득공제나 의료보험, 통신사 가족할인, 주거 지원 정책까지 사회가 인정하는 ‘정상 가족’이 아니라면 어떠한 혜택도 받을 수 없다. 동거가족이 저소득층 일수록 불편함을 느끼는 정도가 클 것이다.

그렇다면, 현행법 상 가족은 정확히 어떻게 정의되고 있을까? 민법(779조)에서는 가족(가족원)의 범위를 기본적으로 자기를 중심으로 자기의 배우자, 형제자매, 직계혈족(부모와 자녀)을 포함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또한 생계를 같이 하는 경우라면, 자기 직계혈족의 배우자, 배우자의 직계혈족, 배우자의 형제자매까지를 가족원으로 한다. 즉 혼인 또는 혈연관계로 이어진 구성원만 가족으로 한정짓는 것이다. 가족보다 더 가족다운 인생의 동반자는 결국 남남이 될 수밖에 없다. 개인의 선택이 존중받고 가구의 형태가 점점 더 다양해지고 있는 지금, 법의 체계에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유럽에서는 여러 제도를 통해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인정하고 있다. 프랑스의 시민연대계약인‘팍스(PACS; Pacte civil de solidarite) 제도’,네덜란드의 ‘동반자등록법‘,스웨덴의 ‘삼보’,독일의 ‘생활동반자법‘과 같은 사례들을 보면 대안적 결혼제도는전세계적인 흐름이다. 프랑스의 팍스제도는 1999년에 도입된 것으로, 동거중인 이성 혹은 동성부부에게 혼인에 준하는 법적 지위를 인정하는 제도이다. 이는 전통적 결혼과 달리체결과 해제가 비교적 쉬운 계약이며 서로를 동등한 계약의 당사자로 전제한다. 함께 살아가는 이들에게 결합의 형태는 중요하지 않다. 서로 공존하는 방법을 배우며 가족이 되는 것에서 본질을 찾는다.

​2014년부터 우리나라에서도 파트너십을 인정하는 법률의 발의가 논의되었다. 진선미 의원이 19대 국회에서 준비했던‘생활동반자법‘은 혼인 관계를 뛰어넘어 혈연 또는 혼인 외의 사유로 삶을 공유하는 ‘생활동반자’ 관계 성립과 효력을 규정하는 법이다. 생활동반자 관계를 맺은 이들에게 출산휴가, 육아 휴가 등의 돌봄 휴직 권리를 부여하고 임대조건에서 생활동반자 관계에게 부부에 준하는 권리와 의무를 부여하는 내용이 담겼다. 그러나 발의를 준비했지만 제출엔 이르지 못했다. 그 이후 19대 대선에 출마한 심상정 후보 또한‘다양한 가족 구성원을 위한 동반자등록법 제정‘을 공약으로 내세웠고, 2018년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한 신지예 후보도 어떠한 형태의 가정을 선택하든 자신의 행복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고 발언했다. 생활동반자법에 대한 필요성이 계속해서 제기됨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는 부모와 미혼 자녀로 이루어진 가족만을 인정하는 ‘정상가족 이데올로기’에 갇혀 논의를 미루고 있다. 국민의 행복을 위해 제정되어야 하는 법률이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면, 법은 수선되어야 한다.

​생활동반자법이 제정된다면, 다양한 동거가족의 형태를 가족의 틀 안에 수용할 것이다. 우선,남들과 똑같은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동성혼 법제화가 궁극적인 목표이지만, 현재 결혼이 불가능한 동성 커플을 위한 단계적 법안이 될 수 있다.또한 어마어마한 결혼자금, 구시대적 성역할 강요, ‘가정‘을 위한 절대적 희생과 같은 관습적인 결혼 제도로 인한 다양한 문제점들을 피해 사실혼을 이어가고 있는 동거인들에게도 대안책이 될 수 있다.꼭 사랑하는 사이가 아니어도 함께 살기를 선택할 수 있다.관심사, 가치관 등 공통분모가 있는 사람이 꼭 사랑하는 사람일 수는 없다. 자신의 고민과 관심사를 공유하는 사람들과 가족을 구성해 사는 것이 더 이상적이다.

​우리는 모두 다양한 개인사를 가진다. 비혼을 결심할 수도 있고, 혈연관계의 가족이 부재할 수도 있다. 그에 따라 혼자 살거나 누군가와 함께 살기를 선택한다. 하지만 한정된 가족의 정의 때문에 불이익을 받고, 보호자를 갖지 못하는 것은 권리에 대한 명백한 침해이다. 누가 내 가족이 될지 내가 선택하는 것은 당연한 권리가 아닐까?

 

임효영 인턴기자  sustainability@sjournal.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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