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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에 사는 취업준비생들의 애환

당신이 취업을 준비하고 있다면 필연적으로 가입하게 되는 대형 카페가 있다. 전대모, 스펙업 등 취업을 준비하는데 필요한 정보가 있는 사이트이다. 당신은 이와 같이 유명한 카페에서 대외활동에 관한 자료를 검색한다.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다양한 활동이 쏟아진다. 그 중 관심이 가는 활동을 선정하여 클릭해본다. ‘활동지역’ 란에 '서울'이라 명시되어 있다.

만약 당신이 본거지가 서울인 취업 준비생이라면 편안한 마음으로 지원서를 작성하는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 그러나 당신이 지방에 거주하고 있다면? 곧바로 웹페이지의 왼쪽 상단에 위치한 '뒤로 가기' 버튼을 클릭할 것이다. 그리고 다시 관심사와 부합하는 활동을 살펴볼 것이다. 몇 번의 '뒤로 가기'를 반복하다 보면, 당신은 이제 활동 지역이 어디인가에 보다 집중하여 활동을 찾아다니게 될 것이다. 이윽고 '지역 무관'을 표방하는 글을 발견하고, 당신은 한결 나아진 기분으로 공고를 탐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내 구석에 숨기듯 작게 쓰인 아래와 같은 글을 읽고, 다음을 기약하며 웹 화면을 닫게 될 것이다.

'서울에서 개최되는 발대식 및 주기적인 모임 참석 필수.'

KOSIS에서 제공하는 지표에 따르면 2019년 2월 기준 청년 실업률은 9.5%, 청년 실업자는 41만 명이다. 취업을 준비하는 청년들은 자신이 그 41만 명의 청년실업자 안에 포함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절실하게 취업시장에 달려든다. 나날이 높은 스펙이 평준화되니 필수적으로 마련해야 할 것들은 늘어만 간다. 학점을 신경 쓰고 어학 점수를 올리는 동시에 자기소개서를 준비한다. 자격증을 취득하고 인턴 기회를 찾아다닌다. 최근 취업 시장에서 공기업과 공공기관은 블라인드 채용을 활성화하고, 사기업은 지원자가 완벽하게 준비된 상태이기를 바라며 직무와 관련한 경험을 중요시 하는 까닭에 대외활동도 필수적이다.

2016년 알바몬에서 지방구직자 606명을 대상으로 시행했던‘취업소외감’과 관련한 설문조사에서 70.8%의 응답자들이 지방 구직 활동 중 소외감을 느낀 적이 있다고 답했다. 소외감을 체감한 사유로는 ‘인턴·대외활동이 대부분 서울에서 진행돼서’가 55.0%로 1위를 차지했다. 그렇다고 대학 수업과 병행하며 서울 활동에 충실하게 임할 수도 없는 일이다. 부산에 사는 취업 준비생은 왕복 10만원이 넘는 비용을 소비하여 KTX를 타거나 편도 5시간가량 시간을 들여 무궁화호를 타야 서울에 도착할 수 있다. 당일치기로 다녀올 수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나, 숙박을 필요로 하는 일정이라면 추가적인 비용을 생각해야만 하고 숙박 시설의 예약 상황도 확인해야 한다.

대외활동을 넘어 본격적으로 취업 시장에 발을 들이게 되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취업이 어렵다고 논하기 이전에 지방 대학생들에게는 애초에 기회가 없다. 지방에는 일자리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직무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인턴을 구하여 준비를 할 수도 없다. 공고가 올라오지도 않는다. 청년들이 아무리 노력한다고 하여도 없던 일자리를 생성할 수는 없는 법이다. 그리하여 대부분의 지방 대학생들은 각고의 노력 끝에 쓰디쓴 패배를 맛보고, 점차 포기하는 법을 알아가게 된다.

혹자는 서울로 상경하기를 권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날 때부터 서울에 적을 두고 있는 사람과 지방을 벗어나 본 적이 없는 사람은 짊어진 짐의 무게가 다르다. 서울로 상경하는 순간부터 청년들은 혼자가 된다. 연고가 없는 외딴 섬에서 모든 것을 새롭게 시작해야만 한다. 도움의 손길 하나 없이 겨우 서울에 취직이 성공하면 월세를 얻어 원룸을 구해야 할 것이다. 사회 초년생의 소박한 월급으로 매달 빠져나가는 월세와 관리비, 식비를 제하면 남는 돈은 몇 없다. 그러나 서울에 취직한 자녀를 둔 부모님은 이제 은퇴가 가깝고, 용돈의 명목으로 돈을 보내드리고 나면 저축이 가능할 턱이 없다.

이렇듯 지방 취업 준비생들은 취업이 힘들다고 말하기 전에 취업 준비부터가 녹록치 않다. ‘서울공화국’이라고 불릴 만큼 모든 것이 서울을 중심으로 돌아가지만, 지방에도 꿈을 좇는 청년들이 있다. 그들도 절실히 노력하고 있다. 많은 것을 보고 경험하며 내면의 가치를 드높이기를 원하고 있다.

목표가 같다고 하여 향하는 길이 같은 모양을 취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한 단씩 차근차근 오를 수 있는 계단이 마련된 사람과 줄을 타고 암벽을 등반해야만 하는 사람이 같은 환경에 놓여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지방에 거주하는 청년들이 가야만 하는 가로막힌 길에도, 사다리를 놓아줄 수는 없을까.

 

강민경 인턴기자  sustainability@sjournal.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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