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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으로 살기 - 영화 '외침과 속삭임'

'외침과 속삭임'은 죽어가는 아그네스를 둘러싼 인물 각자의 내면을 보여준다. 그들의 두려움과 공포, 좌절은 영화에서 효과적인 장치들을 통해 훌륭히 재연된다. 지독할 정도로 일관된 붉은색과 미칠 듯한 클로즈업, 계산된 리듬은 보는 사람을 불편하게 만든다. 실제로 잉그마르 베르히만 감독이 어린 시절 그렸던 영혼의 내면은 붉은색이었다고 한다. 영화가 그들 영혼의 권태로움에 대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가까이 다가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감독의 예술적 기량이 정점에 도달했다는 것과 별개로, 모든 이야기는 욕망의 표현이다. 모든 창작물은 창작자 자신이 가진 이야기 조각 중 가장 공감받을 만한 것들을 엮어낸 것이기 때문이다. 환상적인 것이야말로 동시에 정치적이며 이데올로기의 산물이다. 미학과 윤리는 영화에서 칼로 자른 듯 분리되어 있지 않다. 감독의 숙명이 이들을 조화롭게 표현해내는 것이라면, 관객은 영화가 어떤 맥락과 함의를 담아냈는지 판가름해야 한다는 논리로 이어진다.

 

<외침과 속삭임> 스틸컷. 네이버 영화

 

영화에서 마리아는 아그네스의 투병은 뒷전이고 내연 관계였던 주치의의 마음을 돌이키려 애쓰는 ‘난잡한’ 여성으로 그려진다. 언니 카린을 유혹하기도 하는 등 ‘문란한’ 악녀가 마리아의 위치다. 영화는 마리아의 문제점만을 보여줄 뿐, 그에 대한 사회적 책임이나 방향성은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거울 앞에서 주치의가 마리아를 하나하나 평가하는 씬을 통해 ‘아름다운 미모’를 가꾸지 못한 마리아에게 책임이 있다고 말한다. 주름이 어떻다고 말하고, 화장을 해야 한다 말하고, 예뻐야 한다고 말한다. 이런 상황 속에서 미치지 않고서 어떻게 버틸 수 있을지 위문인 지경이다. 미국의 사회운동가 베티 프리단은 <여성의 신비>에서 자기 관리라는 이름 하에 강요되는 것들에 관해 꼬집는다. 베티 프리단에 따르면 사회는 여성으로 하여금 신념이 깃든 확고한 의지로 자아와 인생을 개척하는 대신, 여성의 아름다움을 완성하는 것이 유일하게 전념해야 할 목표라고 가르쳤다. 인간 자신으로서 활동하는 것에 죄책감을 갖게 만드는 것을 여성적 성취에 대한 신화이자 ‘여성의 신비’라고 일갈했다.  <외침과 속삭임>은 ‘여성의 신비’를 비판하거나 거부하기는커녕 오히려 만들어진 이념을 강화했다.

카린은 19세기 도덕적 가치관과 종교적 규울에 갇힌 인물이다. 영화가 비판하는 의례적인 애정은 카린을 통해 심화되지만, 정작 서사의 핵심이 되는 인물에 대한 이해는 얕게 다루어진다. 카린은 규율에 순응하지만 자신의 삶의 방향을 진정으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이때 카린은 남편이 보는 앞에서 음부에 상처를 낸다. 유독 여성에게만 금기시되는 성과 섹스를 탈출을 위한 가장 빠른 방법으로 제시한다. 앞으로의 목표에서 벗어나기 위해 현재의 즐거움에 충실하는 모습을 보이며 하나의 수단으로써 성을 사용한다. 동시에 음부의 혈흔을 피에 묻히기도 하는 등 비개발 문명의 특징을 보여주며 성 경험의 연약한 자아를 드러낸다. 카린은 정체성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을 잊어버리기 위해 성적인 것을 추구한다. 영화는 이를 비판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은 채 여성은 누군가를 붙잡고 의지해야 하는 존재로 그렸다.

영화에 나오는 공간 역시 빈약하다. 붉은색으로 칠해진 침실과 부엌, 식탁뿐이다. 영화에서 여성의 비중은 높지만, 그만큼 공간의 비중도 한정됐다. 여성을 집 안에서만 사는 것처럼 보여줄 뿐더러, 인물들은 조금 유치하고 뭔가 들떠 있으며 백치처럼 보이고 약하다. 공적 이슈에 대한 관심도 없다고 단정 지었다. 이 장면들을 보고 누구도 어색하게 느끼지 않는다는 게 더 큰 문제점이다.

모성의 강조와 신성화는 사회에서 극에 달한 만큼, 영화에서도 절정의 순간에 나온다. 순응적인 안나는 죽어가는 아그네스를 품에 안고 위로하고 한없이 수용한다. 마리아와 카린이 죽은 아그네스를 외면할 때조차 안나는 두려움을 이기고 가슴을 풀어헤친 채 받아들인다. 성모 마리아, 또는 수유하는 어머니의 모습과도 겹친다. 영화는 사회와 마찬가지로 모성을 어떤 면에서는 남성의 특질보다 우수한 것이라고 치켜세우며 여성의 왜곡된 이상형을 만들었다. 의지가 찼던 여성이 행복한 가정주부가 될 경우 안나처럼 순진할 순 있겠지만, 결국 독립된 자아를 상실할 뿐이다.

 

영화 <외침과 속삭임> 포스터

 

네 여성이 그네를 타며 행복한 때를 회상하는 엔딩의 장면도 ‘여성의 신비’를 강화한다. 결혼한 여성을 미래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 행운아로 취급한다. 누구 부인이며 누구의 어머니가 될 것이고 그간 배운 공부는 쓸모없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들이 그저 행복하게 웃으며 산책을 즐기는 모습에서 익숙한 불편함을 느꼈다.

영화 <외침과 속삭임>에서는 아이러니하게도 외치는 장면이 거의 나오지 않는다. 딱 한 번, 카린과 마리아가 서로에게 감정을 폭발시킬 뿐이다. 심리적 고통과 결핍에 비하여 그들은 지나치게 속삭였다. 움추림과 동시에 고통과 울분을 삭이며 살아왔다가 결국 죽어서야 끝이 났다. 영화는 인물들의 외침이 사회로, 밖으로 나아가길 표명해야 했으나 그러지 않았다. 책임 요소는 배제한 채 인물들을 탓했고, 속삭임을 효과적으로 형상화했을 뿐이다. 영화의 인물들이 속삭임에 적응하기보다 좀 더 외치고, 용감해지고, 자신감을 가진 모습으로 그려지길 바란다. 실제 여성의 삶이 그러하고, 또한 그래야 하기 때문이다.

 

안세연 인턴기자  sustainability@sjournal.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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