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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트로피와 인간사회

엔트로피법칙: 에너지는 사용할 수 없는 형태로 변화한다

경제학자 볼딩은 지구를 우주를 떠다니는 폐쇄적 우주선으로 비유하여‘우주선지구호’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지구는 전체 질량이 불변하는 페쇄계이기 때문에 사용 할 수 있는 자원의 양에 한계가 있다. 그러므로 성장으로 인한 환경오염, 자원고갈 등 부정적 결과에 주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열역학의 제1,2 법칙 또한 유한한 에너지 문제에 주목하게 한다. 제 1법칙은 에너지 보전법칙이다. 우주의 에너지 총량은 시간이 시작된 때부터 종말에 이르기까지 일정하게 고정되어 있다. 에너지는 새롭게 만들어지거나 없어질 수 없으므로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에너지를 다른 형태로 변환시키는 것 뿐이다. 그렇다면 에너지는 무한정 사용 가능 한 것인가? 제 2법칙, 엔트로피 법칙이 이는 불가능 하다는 것을 증명한다. 엔트로피는 더 이상 전환 될 수 없는 에너지 즉, 쓸 수 없는 에너지를 뜻한다. 엔트로피가 증대하는 방향으로만 에너지가 형태를 변화한다는 것이 엔트로피 법칙이다. 에너지가 변할 때 엔트로피의 총량은 지속적으로 증가한다. 이는 에너지가 항상 유용한 상태에서 무용한 상태로, 획득 가능한 상태에서 획득 불가능한 상태로, 질서 있는 상태에서 무질서한 상태로 변한다는 것을 뜻한다. 궁극적으로 이 무용한 에너지, 무질서함으로 인해 지구는 열사 한다.

엔트로피법칙과 인간사회: 발전은 곧 ‘열적죽음’을 앞당긴다?

제레미 리프킨의 『엔트로피』라는 책에서는‘엔트로피 법칙’을 통해서 우리 사회를 바라본다. 사실 엔트로피 개념을 사회현상에 적용한다면 결국 발전을 위한 인간의 모든 행위는 사회의 바람직한 발전이 아닌 열사, 열적 죽음에 더 빨리 다가가도록 이끄는 행위로 해석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인류역사가 진정한 진보의 방향으로 이동하였는지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인류가 발전하면서 탄생한 도시는 엔트로피를 증가시키는 대표적인 예이다. 우선, 높은 건물과 아스팔트, 콘크리트 등으로 인한 도시의 열 증가는 기온변화를 야기한다. 증가하는 도시인구에 식량, 에너지 등을 조달하고 도시에서 생겨나는 많은 양의 폐기물을 처리하는 과정에서의 대량, 원거리 수송이 오염을 야기하기도 한다. 책에서는 고대도시 로마를 예로 든다. 100만의 로마는 점점 거대해지면서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게 되었고 소모되는 에너지는 더 큰 무질서를 야기하였다. 커져가는 관료적 중앙집권은 비효율적으로 변하였고, 식량동선을 책임지던 군대가 과도한 에너지를 이용하였으며, 농업에서의 과도한 착취로 인해 수확체감현상이 나타났다. 고대도시 로마는 결국 무질서로 멸망한다.

기계론적 세계관 VS 엔트로피적 세계관

『엔트로피』는 현대 사회를 지배하는 기계론적 세계관이 지구에 끼친 문제를 지적하며 엔트로피 세계관으로의 전환을 요구한다. 기계론적 세계관에서는 우주를 거대하고 탁월한 기계로 본다. 수학적 법칙에 의해 우주는 스스로 정확하게 움직인다고 본다. 베이컨은 ‘어떻게’라는 의문을 가지고 자연을 조종하는 방법을 찾고자 하며 객관적인 지식을 얻는 것이 과학적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데카르트는 수학을 통해 세계를 이해하고자 하였다. 자연의 모든 것을 운동하는 물질로 취급하고 모든 성질을 양으로 환원하고자 하였다. 이렇게 인간이 세상의 진리를 밝혀낸다면 세상의 주인이 될 수 있다고 믿었다. 뉴턴 또한 행성의 움직임을 수학적으로 풀어내어 만물에 수학법칙을 적용시킬 수 있다는 생각을 강화했다. 사람들은 질서 정연한 우주나 자연계와 달리 인간사회의 무질서와 혼란이 계속되는 이유에 의문을 품었다. 이에 로크는 개인 이익 추구라는 인간사회 법칙을 통해, 애덤스미스는 자유방임이라는 법칙을 통해 인간사회에 질서가 확립될 수 있다고 보았다. 이렇게 발전한 기계론적 세계관은 인간이 자신의 물질적 이익을 최대한 증진시키는 방향으로 이끌었다.

반면 엔트로피 세계관은 한정된 자원을 보존하고 아껴 쓴 것이 지속가능 발전의 유일한 방법임을 강조한다. 엔트로피 증가라는 절대적 법칙으로 에너지는 결국 고갈될 것이며 그 속도를 늦추는 것이 최선의 방안이기 때문이다. 자연과 대립하고 정복하기 보다는 인간 또한 자연의 일부라는 생각으로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 자원을 소모하며 성장위주의 발전이 참다운 발전인지 혹은 파멸을 재촉하는 길은 아닌지 다시 생각해보아야 한다.

발전에 대한 새로운 시각의 필요성

엔트로피 법칙을 사회현상에 적용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논란의 대상이 된다. 인간사회 또한 자연의 일부이므로 엔트로피법칙을 사회현상에 적용할 수 있다는 의견과 인간사회는 지적 자산, 네트워크 등의 측면에서 자연현상과 다르므로 엔트로피 법칙을 이용하여 사회현상을 해석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의견이 동시에 존재한다.

제레미 리프킨의 주장 자체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있다. ‘엔트로피 법칙을 잘못 이해하였다.’‘본인의 사회학적 주장을 자연과학적 검증을 받은 것처럼 보이기 위해 엔트로피 법칙을 이용했다.’‘과학기술 발전의 힘을 과소평가했다.’등과 같은 비판이 제기되기도 하였다.  

제레미 리프킨의 주장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 책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것은 ‘사회, 경제, 문명은 앞으로 발전 특히 물질적 발전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라는 당연한 생각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끔 하는 것이다. 기후 변화로 인해 한국에서 열대과일의 재배가 가능하다. 몇몇 도시들은 침수하여 ‘기후난민’이 증가하고 있다. 이렇게 우리는 이제 환경오염으로 인한 변화를 피부로 느낄 수 있는 단계가 되었다. 물질적 사회발전의 속도를 조절하고, 자연과 인간의 공생관계를 주장하는 엔트로피 세계관이 필요한 시점인지도 모르겠다.

 

변경진 인턴기자  sustainability@sjournal.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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