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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의 두 얼굴

‘국문과, 철학과, 사학과’ 이 단어들을 보면 어떤 생각이 떠오르는가? 취업을 준비하는 단계의 학생이라면 단연코 부정적 인식이 먼저일 것이며, 다수의 채용담당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처럼 현재 우리 사회는 학문으로써의‘인문학’이 설자리가 없다. 몇 년 전부터 대학 학과 통폐합이 진행되면서 이런 경향은 더욱 심해지고 있다. 이는 교육부의 ‘대학구조개혁평가’정책과 연관이 있다. 평가 결과에 따라 대학의 등급을 총 5개로 나누게 되는데 하위등급에 속하면 정부 재정 지원을 받을 수 없다. 여기에 중요하게 작용하는 것이 바로 ‘취업률’이다. 실제로 교육부의 통계에 따르면 인문계열의 취업률은 근 몇 년간 항상 평균 이하를 보인다. 자료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정부 연구개발비 중 인문학의 진흥을 위한 연구지원비 역시 1% 이하로 상당히 미미하다.  

 

출처: 서울신문
출처: 동아일보

 

​국가에서는 취업난을 해결하고 4차산업혁명의 주역들을 발굴하기 위해 대학에 ‘결과’ 중심의 잣대를 들이밀게 된다. 대학 역시 국가의 지원을 받는 한 이를 무시할 수가 없는 것이다. 단일 학문으로써의‘인문학’을 취급하는 이른바 문사철(文史哲) 관련 학과들이 비교적 낮은 취업률을 보이기 때문에 대학 입장에서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가 되고, 결국 교육의 장이라 불리는 대학교는 그 명칭에 걸맞지 않게 학문으로써의 인문학을 포기하게 된다. ‘융합’이라는 이름으로 재학생들의 동의도 구하지 않은 채 일방적인 학사구조개편을 한 사례도 많다. 예를 들면 국문학과 미디어콘텐츠를 융합한 ‘한국문화콘텐츠학과’, 예술학과 기술을 접목한 ‘예술기술 전공’ 등 사회에 물리적, 가시적 도움이 되게끔 기술 관련 교양(코딩 등)을 학제 개편으로 도입시켜버린 것이다. 민족 시인인 김소월을 배출한 배재대학교의 국문과 통폐합이 시발점이 되어 인하대, 건국대 등 전국의 무수히 많은 대학이 이를 뒤따르고 있다. JTBC 뉴스의 보도에 따르면 정부는‘계열별 인원 조정계획’에 따라 인문계열은 약 3천 명을 줄이고 공학 계열은 약 5천 명 정도를 늘렸다.

 그러나 교외, 즉 일반 소양으로써의 ‘인문학’은 반대 양상을 보인다. 실제로 교보문고 판매 신장률에 관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5년간 인문학 서적 판매량은 에세이, 경제, 자기계발 등 타 분야보다 높은 수치를 기록하고 있다. 구매층 역시 20~40대가 주를 이룬다. 이는 주로 직업적으로 타인과의 커뮤니케이션에 필요한 소양을 기르려는 의도로 해석할 수 있다. 일례로‘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이라는 책의 인기가 그 방증일 것이다. 제목에서도 드러나듯이 이 책은 타인과의 교양 있는 대화를 위해 필요한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하지만 독자가 사색을 하거나 삶을 성찰하게 하지는 않는다.

 

출처: 출판저널
출처: 데이터뉴스

또, 같은 제목의 팟캐스트 역시 많은 인기를 끌고 있다. TV에서는 tvN‘알쓸신잡3’, JTBC‘차이나는 클라스’등 인문 교양 예능프로그램이 대세이다. 단순히 소모적인 웃음보다는 삶의 의미를 되찾고 우리에게 인문학적 가치를 던지는 것에 대중이 열광하는 것이다. 이러한 바람은 과거 스티브 잡스가 ‘liberal arts’와 ‘technology’라는 내용의 융합을 강조하면서 불기 시작했다. 국내에도 이러한 사고가 전파되면서 많은 기업에서 인문학적 교양을 갖춘 ‘창의융합형’ 인재를 요구하고 있다. 이때부터 인문학은 자유로운 성찰과 탐구, 비판을 통해 권력을 견제하던 본래의 역할을 포기하고 이윤 창출과 경제발전의 도구로써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기업인 문학’은 곧 취업이나 대화를 위한 도구로 전락하게 되고 결국 출판사들은 이 흐름에 발맞춰 인문학 입문서를 찍어내게 된다.

 정부에서는 작년부터 ‘인문학 진흥 5개년 기본계획’이라는 정책을 수립했으며 그 목적은 “인문적 소양을 갖춘 창의적 인재 양성과 인문 진흥 및 사회적 확산이다”라고 밝힌 바 있다. 겉으로 보기엔 국가 차원에서 대대적으로 인문학의 침체를 깨뜨리고자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프라임 사업을 주도하는 것 또한 국가라는 점을 인지한다면 이 정책 또한 ‘소양으로써의 인문학’을 진흥시키려는 흐름과 일맥상통함을 알 수 있다. 이 정책은 크게 4가지 항목으로 구성되어있는데, ‘연구 성과의 확산을 통한 인문학의 대중화’라는 항목이 눈에 띈다. 인문 친화적 환경을 조성하고자 하지만 사실상 학문 자체에 대한 접근은 다소 약하다는 느낌이 짙게 들었다. 물론 필자가 개인으로서 국가의 거시적 관점을 판단하는 것은 무리지만, 타당성에 대해 생각해볼 수는 있다. 대학에서 배운 인문학을 바탕으로 “앞서 언급한 흐름이 왜 문제인가?” 에 관한 생각을 써보고자 한다.

​최근의 한국 사회를 떠올려보자. 뉴스에서는 매일같이 범죄가 보도된다. 인간이 다른 인간을 잔혹하게 죽인다. 필자는 이것이 근원적으로 타인에 대한 이해의 결여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인문학은 이 지점에서 필요하다. ‘인간에 대한 이해’가 모든 행위에 우선시되어야 말 그대로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다. 인간이 태어나 백지(白紙)의 상태에서 성인이 될 때까지 제대로 된 인문학적 탐구는 필수이다. 그러나 인문학은 특별한 것, 고고한 취미 등으로만 치부되고 국가에서도 그 중요성을 강조하지 않으니 인문학적 사고를 기르기가 힘들 수밖에 없다. 또한 책 읽기는 가장 기본적이고도 쉬운 인문학 접근방식이다. 과거에는 지상파 채널에서 책읽기를 권장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캠페인을 벌였지만 현재는 개인의 필요가 아니면 찾아 읽지 않는 세상에 가까워졌다. 책읽기와 강력범죄 발생 추이를 일대일로 엮는 것은 무리가 있겠지만 그 사회의 분위기를 표현하는 한 가지의 수단으로는 볼 수 있다. 이는 문학이 인문학적 사고를 토대로 인간의 삶을 성찰하고 그것을 글로 표현하는 행위임을 고려할 때 단편적이지만 유의미한 변화라 볼 수 있다.

 

출처:문화체육관광부

 

​그에 반해 인문학 선진국인 독일을 떠올려보라. 괴테, 니체 등 굵직한 학자를 배출한 전통을 지금까지도 이어가고 있다. 독일에서는 2007년을 ‘인문학의 해’로 선포한 이후 숱한 정책과 캠페인을 펼치고 있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재정적 지원’이다. 자연과학이 전제를 설정하고 실험을 통해 결과를 도출하고 그것을 이론화하기 위해 자금이 필요한 것처럼 인문학 또한 마찬가지이다. 독일에서는 개별 연구자들에게 한국과 마찬가지로 연구비를 지급하지만, 그 성과를 단기간에 요구하지 않는다. 그들이 시간을 가지고 학문적 활동을 할 수 있게 배려하는 것이다. 헌법에서도 이것을 ‘학문적 자유’로 명기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그 반대이다. 또 한 가지 다른 점은 연구비 배분 방법이다. 한국처럼 기관의 통제 속에 예산을 일방적으로 받는 것이 아니라 연구자들의 수요에 따라 정해진다. 이러한 자율성이 확보되어야 학문적 성과가 발생하고 근접 학문과 사회에까지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독일 역시 자본주의 경제에 기반하기 때문에 대학 내 연구비나 인문학 투자 비중이 줄어드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도 앞서 언급했던 점들은 여전히 우리 사회가 배우고 나아가야 할 방향임은 틀림없다.


지금의 한국은 너무나도 성과 중심적이다. 학문에 경제 논리라는 잣대를 들이대는 것을 피할 수는 없으나, 주객이 전도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지성의 요람이라는 대학에 가서 하루만 돌아다녀 보라. 지적인 대화가 들리는가?

 

 

김명훈

지속가능저널  sustainability@sjournal.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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