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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 가족 이데올로기

   “가족?”

“네.”

“...하긴, 워낙 친한 사이들이신 것 같네요.”

“아니, 그런 의미가 아니라, 진짜 가족.”

“...?”

“가족이란 거, 어른이 된 후에도 얼마든지 새로 생길 수 있어요. 힘든 걸 같이 견디다보면, 가족이 되는 거 아닌가요. 그게 진짜 가족이죠.”

드라마 미스 함무라비 中

 

엄마, 아빠 그리고 자식 한둘. 대한민국이 ‘정상가정’으로 분류하는 가족의 모습이다. 그렇지 못한 가정은 ‘결손가정’으로 불리며 어딘가 하나 부족한 취급을 받는다. 드라마 미스 함무라비의 주인공인 박차오름의 아버지는 가정폭력범이었다. 그는 자살하는 모습조차 박차오름의 어머니에게 보이며 끝까지 폭력을 가했다. 그럼에도 박차오름은 가족을 긍정한다. 그에게 있어서 가족은 가정폭력범이었던 아버지가 아닌, 외할머니, 외할머니의 친구들, 어머니이기 때문이다. 피를 나누었기에 ‘가족’인 것이 아니라 누구보다 서로를 생각하고 걱정하고 사랑하기에 ‘가족’인 것이다. 그렇지 못한 사람을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떠안을 필요는 없다.

 

2018년 11월 7일까지 집계된 112 신고 중 가정폭력 신고가 20만 2826건으로 절도 신고 19만 2649건을 앞질렀다. 그럼에도 가정폭력처벌법은 가정을 지키는 것을 우선으로 한다. 가해자가 생계부양자 혹은 법적 보호자라는 이유로, 가정 내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로 치부하고 가해자를 가정으로 돌려보낸다. 피해자는 가해자와 함께 언제 맞아죽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안고, 폭력 속에서, 죽지 못해 살아야 한다. 이런 가정을 명목상 유지하려는 것은 국가의 이기적인 욕심이다. 가족을 사회의 기본 단위로 놓고도 가정폭력을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고 덮어서 국가가 통제하기 쉬운 형태로 두는 것은 옳지 않다. 피해자의 인권을 우선으로 해야 하며 무엇보다 모두에게 안전한 쉼터가 될 수 있는 가정을 유지하는 것만이 의미가 있다. 가정이니까 유지해야 한다고 할 것이 아니라 개개인이 마음을 놓고 안정을 취할 수 있는 공간을 가정이라고 칭하며 유지해야 한다.

가족에 대한 틀에 박힌 정의는 ‘정상 가족’이 아닌 이들에게 폭력을 가한다. 합의 이혼을 하려고 해도 이혼숙려기간을 거쳐야 한다. 이혼을 결심해 법원까지 온 부부에게 국가가 나서서 충동적인 이혼은 아닌지 고민해보라고 하는 것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이혼을 하지 말라고 강제할 수는 없으니 기간이라도 두며 그래도 가급적이면 4인 가구의 ‘정상 가족’을 해체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혼은 가족의 해체가 아니다. 새로운 가족을 만드는 과정이며 이혼한 가정이 더 ‘가족다울’수도 있다. 가정폭력범으로부터 벗어난다면, 구성원이 좀 더 심적으로 편안하다면, 아이들에게 행복한 추억이 있는 유년기를 선사할 수 있다면 그 가정이 더 ‘가족다운’것이다. 그럼에도 이혼이 누군가에게 흠이자 숨겨야 할 것이 된다면 폭력적인 사회인 것이다.

아예 결혼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을 하는 사람도, 결혼이 필수가 아니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도 많아지고 있다. 비혼을 자처하는 사람들은 친구들끼리 셰어하우스를 만들어 살고자 한다. 집안의 결합이라고도 불리는 결혼이 부담스러워 동거만 하고자하는 사람들도 늘어나는 추세다. 이들을 그저 동거하는 사이로 정의하며 방관할 것이 아니라 가족으로 정의해야 한다. 결혼이라는 제도가 아니더라도 그들을 가족으로 묶어줄 제도가 필요하다. 불의의 사고가 일어났을 때 서로 보호자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주거, 보험, 금융 등에서 적절한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법적 장치가 필요하다.

 

프랑스의 PACS(시민연대협약)는 다양한 가족 형태를 인정하는 대표적인 제도다. 이 제도는 1999년에 동성 커플에게 결혼한 커플과 비슷한 권리를 보장해주기 위해 만들어졌으며 공동의 삶을 살아가기로 마음먹은 커플을 법적으로 보호한다. 현재에는 꼭 동성 커플이 아니더라도 많은 이들이 결혼이라는 복잡한 제도보다 PACS를 선호하고 있다. 프랑스에서 태어나는 아이 10명 중 6명이 PACS를 맺었거나 동거 중인 커플의 자녀라는 통계도 있을 정도다. 개인의 성적 지향이 어떠하든 간에 그들의 당연한 권리를 국가가 보호하려는 모습은 본받을 만하다. 팍스가 전적으로 옳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팍스와 결혼 혹은 그 이상의 선택지를 제공하는 국가는 옳다.

가정폭력에서의 탈출, 개인의 성적 지향, 사회의 억압에 대한 저항 혹은 굳이 이유가 없더라도 가족의 형태를 새롭게 구성하려는 다양한 이유가 존중되어야 한다. 개인이 원하는 가족을 법적으로, 사회적으로 안전하게 꾸릴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국가는 출생률을 높이기 위해, 한국인으로만 구성된 인구를 늘리기 위해(과연 100% 순수 한국인이 존재할지는 의문이지만) 가족구성원에게 성별화된 역할을 정해주고 아이를 낳으라거나 낳지 말라고 강요하던 역사를 멈춰야 한다. 현재 가족제도를 고집해서는 보호할 수 없는 가족의 형태가 상당히 많다. 파트너 등록법과 같은 법적 안전망을 통해 가족이 공존의 가치를 실현하는 사람들로 구성되는 사회를 기대한다.

 

 

김지유

지속가능저널  sustainability@sjournal.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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