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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전환기, 지속가능한 푸드 시스템 구축해야”[인터뷰] 박영범 지역농업협동조합네트워크(RANET)이사장

설립 20주년 맞은 RANET, 연합회로 새출발

 

지난 21일 한빛 3호기, 한울 2호기를 전력 피크 기간 이전 재가동하겠다는 한국수력원자력 보도자료에 뭇매가 쏟아졌다. 일부 매체가 이를 폭염으로 전력소비가 늘어 원전을 급하게 재가동하겠다는 뜻으로 보도,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대한 비판이 이어진 것이다. 23일 한수원이 “해당 원전들의 재가동 일정은 이번 폭염과 관련이 없다”며 수정된 보도자료를 발표함에 따라 논란은 일단락됐다.

단순 해프닝으로 마무리된 사건이지만, 현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대한 일각의 불안감이 표출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러한 가운데 ‘지역’을 중심으로 한 ‘먹거리 체계’를 통해 지속가능한 에너지 사회를 모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들린다. 올해 20주년을 맞이한 지역농업네트워크협동조합(RANET)의 박영범 이사장을 만났다. 인터뷰는 23일 서울 사당역에 위치한 라넷 사무실에서 진행됐다.

 

올해 지역농업네트워크(라넷) 20주년을 맞이했다. 어떤 목표로 시작한 사업이었나.

1990년대 정치적 민주화·경제적 개방화의 배경에서 열린 지방자치는 농업·농촌이 직면한 벼랑끝과 같았다. 지역에 따라서는 창의성을 가지고 탁월한 정책을 설계할 수 있었지만, 동시에 지역 간 편차가 커지고 방치되는 상황이 생겨났다. 엘리트들이 정부에 들어가 사회경제를 구조적으로 파악하고, 정책을 구상하던 개발연대와 달리 90년대부터는 각종 정책설계가 시장으로 넘어가기 시작한다. 농업회의소 법제화가 무산되면서 개별 농가의 이익을 대변할 수 있는 마지막 희망마저 사라졌다. 지역이 생존을 담보할 수 있는 활로를 시장에서 찾아야 하게 된 것이다.

이런 흐름 속에서 하나의 지역농협이 이마트, 홈플러스와 같은 새로운 유통체계에 대응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그렇다면 농업을 중심으로 중앙과 지역을 연결하고, 혹은 지역과 지역을 연결하는 네트워크를 직접 만들어보자. 그렇게 시작한 것이 지역농업네트워크(라넷)이었다. 초기 활동은 각 지역의 농업 발전체계를 수립하고, 최소 시·군 단위에서 여러 지역의 농협을 연합해 단일한 사업체계를 구상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연합사업체계를 들고 농협 조합장을 만나고, 현장의 공무원과 농민을 설득하는 식이다. 1998년부터 안성 고삼농협을 시작으로 지역 연합을 탄생시켰다. 2002년 충북 음성, 경기도 이천 지역의 4개 연합을 구성해 사업화한 ‘햇사레 복숭아’가 대표적인 사례다. 개별 농가들을 모을 수 있는 구심점으로서 시군 단위 행정과 농가의 협력체제를 만드는 것이 구체적인 목표였다.

 

지역농업네트워크도 긴데, 협동조합이 붙는다. 최근에는 연합회로 출범했다고.

대학원생, 농민단체 활동가 등 청년 6명으로 시작한 사업이었다. 200만원씩 출자금을 모으기로 했는데 800만원밖에 못 모였다. 그 돈을 가지고 개인사업자로 시작한 것이 98년도 지역농업네트워크였다. 그 때 목표가 1톤 더블캡을 중고로 마련하는 것, 그리고 월 100만 원씩은 수익을 내서 연봉 1200만 원을 만드는 것이었다. 3년 간 악전고투를 하다 보니 자본금 5000만 원이 모이더라. 2001년 개인사업자에서 주식회사로 전환하고, 서울 사당동에 보금자리를 잡았다.

협동조합이 붙게 된 것이 2013년 12월이다. 주식회사에서 협동조합으로 다시 한 차례 전환한 결과였다. 맨 처음에는 지분이 같았는데, 각자 사정에 따라 출자금에 차이가 생기면서 똑같았던 지분에 차이가 나기 시작했다. 설립자 지분이 45%까지 올라갔다. 주식회사라면 수익의 절반 가까이를 가져갈 수 있는 셈이다. 지분과 관계없이 같이 일할 수 있고 나눌 수 있는 방식을 고민하게 됐다.

2012년 협동조합기본법까지 제정됐으니 자연스레 협동조합으로 전환을 준비하게 됐다. 만 2년 이상 근무한 직원은 조합원이 될 수 있고, 최소 출자금은 1000만원이다. 이사장 선출을 포함해 중요한 결정은 전부 총회에서 결정한다. 조합원 1인1표다.

가장 최근이 올해 5월의 연합회 출범이다. 조직을 분화하기로 결정한 결과다. 세종시의 본사와 각 지사로 나뉘어 있던 조직을 △영남 △호남 △충청 △중부권(경기, 강원, 제주) 4개의 조합과 기존 조합(세종시), 여기에 협동조합으로 전환한 팜넷(Famnet, 라넷의 농식품 컨설팅·마케팅 담당 자회사)까지 모여 ‘지역농업네트워크 협동조합 연합회’로 꾸려냈다. 조직이 비대해지면서 관료화를 막고 지역에 더 가까운 법인이 됐으면 하는 소망이었다.

지역농업네트워크 전체사진. 맨 앞이 박영범 이사장.

연합회 이름이 ‘전환’이다.

“지역농업네트워크 협동조합 연합회 전환”, 이렇게 부른다. 1998년 작은 사업으로 출발해 시장의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다양한 지역연대를 구상해 왔지만, 이제는 ‘변화’를 넘어 ‘전환’의 시기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화석에너지 기반의 산업 문명이 붕괴되고 있지만 새로운 것은 명확하지 않은, 그야말로 혼돈의 위기 상황을 지나는 중이다. 지속가능한 미래로 나아가는 전환의 중추로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상상하고 실천하겠다는 의지를 담으려 했다.

 

에너지 전환의 시대라는데, 왜 지금 지속가능한 푸드 시스템이 중요한가.

현재 전 세계 인구가 75억명에 달한다. 인류 역사상 태어난 모든 사람보다 많은 숫자다. 우리나라는 저출산으로 인구절벽을 곧 맞이하겠지만 지구 전체로 봤을 때 인구 폭증은 2030년까지 지속될 전망이다. 그럼 그 인구가 먹고살 식량은 넉넉할까. 그렇지 않다. 현재도 75억명의 인구 중 10억명이 굶고 있다.

문제는 현재의 에너지 순환으로는 조만간 식량 생산이 더 어려워지리란 것이다. 에너지와 식량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오늘날 식량 1kcal은 화석연료 3kcal를 소모해 생산된다. 산업 혁명 이후 급속한 인구 성장세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은 화석에너지의 발견으로 식량 생산이 비약적으로 발전했기 때문이다. 가까운 미래에 화석연료 가격이 상승하고, 인구가 늘어나면서 곡물 재고는 빠르게 바닥날 것이다. 곡물가가 폭등하는 것은 시간 문제다. 이미 2000년대 후반 세계 식량 가격지수는 90년대에 비해 두 배 가까이로 상승했다. 먹거리는 지역과 농업의 문제만이 아니다. 에너지 전환, 즉 문명 전환의 한 가운데에 먹거리 문제가 있다.

문명 전환기다. 기후변화, 에너지 문제, 인구 위기와 같은 글로벌 위기 모두가 화석에너지를 근간으로 한 현대 문명과 연관되어 있다. 일각에서는 4차 산업혁명을 이야기하지만 에너지 체계를 기준으로 현재는 3차 산업혁명 과정에 해당한다. 화석에너지를 뒤로 하고 이제는 자연자본, 재생에너지로 먹고 살 궁리가 필요하다.

 

그 관점에서 대한민국을 진단한다면.

이 시점에서 우리나라는 어떤 준비가 되어 있나. 안타깝지만 식량주권에서 열악한 처지에 있다. 먹거리가 생산자 손을 떠나 소비자 식탁에 오르기까지의 이동 거리를 ‘푸드 마일리지’라고 하는데, 우리나라 푸드 마일리지는 OECD 국가 평균의 두 배에 육박한다. 먼 지역에서 수입한 식품을 더 많이 먹고 있다는 의미다. 더불어 전 세계 GMO 농산물 수입 1위 국가다. 지속적으로 (식량을) 싸게 사먹을 수 있다고 자신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우리나라 귀농·귀촌 인구가 연 50만 명이다. 인구의 1%가 동에 살다가 읍·면으로 이사하고 있다. 그 절반이 40세 미만이다. 농촌이 좋아서 가는 것이 아니라, 도시를 탈출한 것이다. 에너지 전환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이미 인구의 분산이 진행되고 있다. 전환기에 접어들면 대도시의 질적 경쟁력은 더욱 낮아질 것이다. 개인이 감당해야 할 도시에서의 삶의 비용이 더 높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도시성장에서 객체화한 지역의 위상은 조금씩 회복되기 시작할 것이다. 과거의 문명에선 부를 축적하려면 유전을 장악하면 됐는데, 이제는 햇빛이 좋은 땅을 장악해야 한다. 대도시 중심의 세상이 아닌 분산된 세상, 곧 지역이 주인공이 되는 사회다. 로컬푸드, 지역경제 등을 골자로 한 지역중심 사회로 전환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반드시 그럴 것이다’가 아니다. ‘그래야 할 것’이다. 아마 전쟁이 되지 않을까.

 

굉장히 이상적인 미래상이다. 그래서인지 전환보다는 전쟁이라는 말이 더 현실적으로 들린다.

작금의 상황들을 보면 국가들이 모여 지속가능성이라는 의제를 이렇다 할 만큼 발전시키지 못하고 있지 않나. 반대급부처럼 세계적으로 도시·지방정부들의 연대가 강화되고 있다. 국경은 이미 붕괴되고 있고, 사람과 재화의 이동이 자유로워지면서 세계화는 계속해서 진전될 것이다. 이전의 생활기반을 내려놓기란 현실적으로 쉽지 않으리라 생각하지만, 이상적이면서도 그렇게 비현실적인 이야기는 아니지 않나 싶다.

7월 11일 세종시 정부세종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지역농업네트워크협동조합 연합회 출범기념 컨퍼런스의 박영범 이사장(맨 오른쪽).

 

2050년을 향한 라넷 연합의 새로운 아젠다로 △햇빛농사 △협동사회경제 △지속가능한 푸드시스템 등을 제시했다.

에너지 전환기의 주인공이 지역이라고 하지 않았나. 햇빛농사는 먹는 에너지뿐만 아니라 쓰는 에너지까지 지역에서 생산해보자는 논의다. 도시 성장을 위한, 중앙집권적 엘리트 에너지에서 지역 분산적 재생 에너지로 바뀔 수 있도록 힘써보자는 것이다. 현재도 태양광 발전이 늘고 있는 추세인데 도시 자본이 많이 들어가고 있다. 우리는 그걸 지역주민과 농민들이 주도해서 전기를 생산해보고자 한다. 부의 이전이다. 상상해보라. 100만 가구의 농민이 평당 100킬로와트의 전기를 생산한다고 할 때 우리나라 전력 생산의 20%를 충당할 수 있다. 그 소득이 외부로 유출되지 않고 지역주민들의 소득으로 귀속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두 번재 아젠다가 협동생활경제다. 젊은 사람이 도시로 나왔다가 늙어서 농촌으로 돌아오는 순환 구조가 있다. 이를 일상화하는 것은 어떨까. 모든 사람을 무조건 농촌에 묶어놓으려는 방식이 성공하기란 어렵다. 젊은 사람이 도시에서 농촌으로 돌아오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도시로 갈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농촌 지역은 ‘아이가 자라는 곳’, ‘노후를 준비하는 곳’이라는 순환을 가져가되, 도시를 위한 객체적이고 추종적인 개념에서 탈피할 수는 없을까. 이에 대한 고민이 협동사회경제다.

국가주도의 개발경제 하에서 수탈적인 도시 성장에 복무했던 지역이 도시와 대등한 관계에서 파트너십을 맺을 수 있어야 한다는 논의다. 이를 위해 소득, 에너지, 의료복지, 먹거리 순환, 금융 등 연쇄적으로 이어지는 순환경제를 지역에서 만들어내자는 것. 지역에서 창출된 이익이 지역 내부로 다시 돌아갈 수 있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다.

마지막 아젠다가 바로 푸드플랜이다. 아직 대중에게 생소한 용어다. 생산·유통·소비를 넘어 안전·복지·환경 등 다양한 먹거리와 관련된 이슈를 통합적으로 관리하는 선순환 시스템을 구축하는 사업을 말하며, 외부에서 조달되던 기존 먹거리 유통체계를 지역 내 순환체계로 전환하는 전략을 뜻한다. 이는 도시와 농촌을 가리지 않는다. 즉 농촌 지역이 농업발전계획을 수립하고, 생존전략을 필사적으로 짰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도시도 먹거리계획을 수립해야 하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농촌은 핵심적인 주요 농산물을 좀 더 잘 생산하고, 더 조직화를 잘 하며, 동시에 정당한 대접을 받는 농민이 되자는 취지다.

 

이러한 비전들에 확신을 거는 이유가 있나.

서울의 아파트 가격은 무시무시하다. 평당 2000만원이 넘는데, 그러면 집 한 채에 6억~7억원인 셈이니 벌어서 사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재산이 10억원쯤 있어도 넉넉하다고 할 순 없다. 아파트 한 채 겨우 사는 것뿐이다. 한 달에 400만원을 벌어봤자 집값 내고, 자녀들 학원 보내면 남는 것이 없다. 농촌은 어떤가. 평당 600만~700만원 사이에서 좋은 아파트들을 찾을 수 있다. 직접 지으면 평당 500만원도 가능하다.

인구 귀농·귀촌의 가장 큰 요인이 주택 문제다. 지금은 집값이 얼마나 싸느냐가 관건이다. 인구가 증가 중에 있는 일부 농촌은 도시에 비해 소득 수준이 비슷하거나 적어도 삶의 질이 높아진 것으로 나타난다. 정부 입장에서도 주택, 교통, 의료 보건 등이 대도시에 집중되는 것이 오히려 악순환일 것이다. 그러니 소득에서부터 먹거리 순환에 이르는 순환 경제를 지역에서 만들어내자는 문제의식이 시작되고 있는 것 아니겠나. 국정과제에 이러한 논의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하나도 빠짐없이 지금이 전환기라는 신호일 것이다.

 

정윤하 / KSRN기자  sustainability@sjournal.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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