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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 스튜어드십 코드 후퇴 유감 : 경영참여 해당 주주권 장검(長劍) 장착 필요
  • 이종오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사무국장
  • 승인 2018.07.29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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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검(長劍) 칼집에서 뽑아 든 단검(短劍). 지난 17일 국민연금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방안 공청회에서 공개된 내용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그렇다. 재벌기업과 보수언론은 일단 안도의 한숨과 회심(會心)의 미소를 지었을 터이다. 반면 국민연금이 시장 감시자로서 강력한 역할을 요구했던 사람들은 용두사미(龍頭蛇尾)식 방안에 실망과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보건복지부와 국민연금은 올해 하반기부터 2020년까지의 주주권 행사 전체 로드맵(안)을 공청회에서 제시했다. 안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향후 배당관련 주주활동, 의결권행사 사전공시, 주주대표소송, 손해배상소송, 예상치 못한 기업가치 훼손 이슈 발생시 주주활동, 횡령․배임․부당지원행위․경영진 사익편취 행위․임원 보수한도 과다․지속적인 반대의결권 행사에도 개선이 없는 기업 추가, 이사회 구성․운영과 이사․감사선임 등 관련 가이드라인 마련, 위탁운용사 활용한 주주활동 확대, 중점관리기업 선정과 공개 등을 단계적으로 진행한다. 국민연금이 그동안 의결권 이외의 주주권 행사-사실 의결권 행사마저도 소극적이거나 형식적이었다-를 거의 하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진일보한 조치들이다. 그러나 핵심적인 주주권 행사 수단이 빠져 있다. 주주총회소집요구, 사외이사 또는 감사후보 추천을 비롯한 ESG(환경․사회․지배구조)를 포함한 각종 주주제안, 위임장 대결 등이 로드맵상에는 없기 때문이다.

 

전자와 후자의 차이점은 ‘경영참여에 해당하는지 여부’이다. 보건복지부와 국민연금은 “경영계 등에서 기업 경영간섭에 대한 우려가 있는 바, 경영참여에 해당하지 않는 주주권부터 행사하고, 경영참여 주주권 행사는 제반여건‘이 구비된 후 재검토”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우리나라 기업, 특히 재벌기업들의 지배구조는 전근대적이고 불투명하다고 평가 받는다. 재벌 오너들의 횡령, 배임, 사익편취, 갑질 등은 세계적으로 악명을 얻을 지경이다. 기업가치와 주주가치 훼손이 지속되어도 이를 제어하는 시장감시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다. 재벌기업과 기관투자자 사이의 계열 관계, 사업관계 등 이해상충 문제가 상존한데다 힘의 불균형이 있었기 때문이다. 시장에서 재벌들의 전횡을 견제할 수 있는 유일한 기관은 바로 국민연금뿐이다. 정치적 독립성이 논란이지만 재벌기업들과의 이해상충에서 자유롭고 보유지분 또한 많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재벌기업에 대한 국민연금의 실제 영향력은 현실에서는 그다지 높지 않았다. 예를 들어 주총에서 국민연금이 반대한 안건 중 부결은 매우 적은데, 지난해 반대안건 373건 중 7건만 최종 부결되었다. 2016년에는 303건 중 1건에 불과했다.

 

그런데 이 국민연금에 쥐어준 견제용 칼이 ‘경영참여 해당 주주권 행사’가 장착되지 않은 단검이다. 기업가치와 주주가치 훼손이 지속되었을 경우, 이를 효과적으로 방지하고 개선하기에 단검은 역부족이다. 예를 들어 물컵갑질로 촉발된 대한항공 사태에 대해 국민연금은 우려표명과 공개서한을 보내고 경영진 면담을 요구한 바 있지만, 면담거부나 면담 이후 기업 경영진이 개선에 미온적일 경우에 이를 추동할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기업가치를 심각하게 훼손한 대한항공 경영진에 대한 감시나 견제, 더 나아가 교체를 위한 수단이 없다. 그럼에도 보건복지부와 국민연금은 이 핵심카드를 무기한 유예하는 방안을 내놓았다. 이는 매우 우려스러운 방안이다. 스튜어드십 코드의 실효성을 약화시켜 향후 무용론으로 대두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필자는 이 지점에서 우리나라 보수언론들과 특히 경제지들이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공청회를 앞두고 한달 전부터 십자포화(十字砲火)를 방불케 한 공격을 해왔고, 지금도 하고 있다는 걸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의 프레임은 ‘연기금 사회주의’와 ‘기업 경영간섭’이다. 모 언론은 ‘스튜어드십 코드 대란’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기획기사를 내보기도 했다. 국민연금이 코드를 도입하기도 전에 무슨 ‘대란(大亂)’이 일어났다는 말인가. 물론 그들의 배후에는 재벌기업과 오너들이 있다. 이 두 프레임을 확산시키고 관철시키기 위해 그들은 ‘국민연금의 독립성’이라는 가장 취약한 고리를 집중적으로 강타했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은 국민연금에게는 두 종류의 권력으로부터의 독립성이 중요하다는 걸 확인해 주었다. 바로 정치권력과 삼성으로 상징되는 경제권력이다. 그런데 그들은 정치권력으로부터의 독립성만을 언급한다. 그리고 이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지 전까지는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국민연금의 지배구조 개편은 과장을 보태 헌법개정에 준할 정도로 난제다. 결국 그들의 주장은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하지 말라는 말과 다르지 않다.

 

사실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은 막을 수 없는 대세다. 때문에 그들의 목적은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수위를 대폭 낮추는 데 있었고, 보건복지부와 국민연금은 그들의 공격에 굴복해 버렸다. 고려대 산학협력단의 용역보고서 수준과 비교해 너무나 멀리 후퇴해 버렸다. 경영참여 해당 주주권 행사는 차기 정부의 과제로 넘어갈 가능성이 매우 높다. 2020년 총선, 2021년에는 대선국면으로 전환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렇다. 비겁하게 회피한 셈이다. 보건복지부와 국민연금의 경영참여 주주권 행사 단서는 제반여건이 구비다.

 

필자는 이 제반여건에는 법․제도와 사회적 여론이라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고 본다. 자본시장법상 5% 룰과 10% 룰은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 확장을 가로막는 대표적인 법이다. 우리나라는 자본시장법상 상장기업의 의결권이 있는 주식 5% 대량보유하게 된 경우와 보유한 자의 지분이 해당법인 주식 총수의 1% 이상 변동된 경우, 그 내용을 5일 이내에 금감원과 한국거래소에 의무보고하도록 되어 있다. 또 10% 대량보유의 경우는 단 한 주라도 더 취득하면 해당내역을 역시 5일 이내에 의무보고하도록 하고, 매수(매도) 후 6개월 이내에 매도(매수)해 얻은 이익(단기매매차익)은 기업에 반환하도록 하고 있다. 국민연금으로서는 공시부담과 투자전략 노출 우려가 있다. 5%룰, 10%룰은 투기적 자본에 의한 기업 사냥이나 적대적 M&A(인수합병)과 관련해 기존 지배주주의 경영권 방어를 위한 제도적 장치라 할 수 있다. 사실 공적연기금은 투기자본도 아니고 기업경영권을 찬탈하고자 하는 목적이 있지도 않는 장기투자자다. 현재 금융위원회는 공적연기금에 한해 5% 룰을 면제해 주는 검토를 하고 있다. 금융위는 하루 속히 이 족쇄를 풀어주어야 한다.

 

연기금 사회주의와 기업 경영간섭 논란은 좌고우면(左顧右眄) 식으로는 이 프레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보건복지부와 국민연금은 경영참여 해당 주주권 행사를 로드맵에 다시 명기하면서 정면돌파식으로 적극 대응해 나가야 한다.

 

피터 드러커가 1976년 펴낸 ‘보이지 않는 혁명 : 연금 사회주의는 어떻게 미국에서 일어났는가’라는 저서에서 주장했던 연금사회주의는 실현되지 않았다. 연금의 주주가 기업을 지배하고, 그 연금의 주인인 노동자가 기업을 지배한다는 논리는 선진국에서는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다. 오히려 미국에서 노동자는 수익률을 추구하는 연금에 의해 구조조정으로 배신당했다. 그럼에도 이 낡고 불순한 용어가 우리 사회에서 국민연금의 정당한 주주권 행사를 가로막는 논리로 쓰이고 있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기업과의 건설적인 대화를 통해 장기적인 기업가치와 주주가치를 높여 돈을 맡긴 고객과 가입자의 수익을 안정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기관투자자의 책임있는 주주권 행사 지침이다. 때문에 연금사회주의가 아니라 수탁자자본주의라는 말이 더 적확하다. 우리나라 보수 언론은 정권으로부터의 독립성 부족을 연기금 사회주의로 환치시키고 있다. 이 또한 피터 드러커가 사용한 연기금 사회주의 의미와 부합하지 않는다.

 

현 단계에서 보건복지부와 국민연금은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의 상설화와 운영에서의 투명성 강화를 통해 독립성 문제를 해소해 나가야 한다. 그리고 ESG에 대한 비전과 철학을 가진 전문가로 위원들을 구성하고 이들의 독립성을 보장하는 장치를 마련해 극복해 나가야 한다.

 

오는 26일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에서의 최종 결정이 남았다. 국민연금에게 단검을 주어서는 안 된다. 스튜어드십 코드의 도입 취지를 최대한 살릴 수 있도록 장검을 장착해 주어야 한다. 그래야만 협상력이 생긴다. 현명한 결정이 나오길 바란다.

 

 

 

이종오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사무국장  sustainability@sjournal.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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