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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이 향하는 곳, 토킹 바

외롭다. 같이 있어도 외롭고 떨어져 있어도 외롭다. 외로움을 이겨보려 사람을 만나고 술을 먹어도 끈질기게 들러붙는다. 견딜 수 없는 외로움을 떨쳐보려 밤거리를 서성이다 보면 이내 다다르는 곳이 있다. 일명 ‘토킹 바(talking bar)’다.

 

애초에 바(bar)는 바텐더와 손님 간의 대화가 허락된 곳인데 굳이 ‘토킹’을 붙인 이유가 석연찮다. 그 이름의 비밀이 궁금해 서울의 한 유흥가에 위치한 ‘토킹바’에 들렸다. 화려하게 장식된 공간, 오롯한 조명 아래 매혹적인 옷차림을 한 여성 바텐터가 다가온다. 매력적인 눈웃음이 사람을 집중시킨다. "안녕하세요" 인사하는 목소리에 기시감이 있다. 위스키를 언더락으로 한 잔 주문한 뒤 바텐더로 일하고 있는 문순지(가명) 씨와 대화를 시작했다.

 

술을 만들고 있는 바텐더_google 재사용가능 사진

 

스물일곱 살 그녀는 올해로 5년 차다. 오래 할 일은 아니라던 그녀의 말을 고려할 때 나름 베테랑이다. '토킹 바'에선 술값 외에도 시간 당 ‘테이블료’를 내야한다. 손님이 계산한 값의 절반은 바텐더의 몫이다. 그러다보니 어떤 술을 시키느냐 그리고 얼마나 많은 자기 고객을 유치하느냐에 바텐더의 수입이 달려있다. 그녀는 단골손님이 많아 벌이가 꽤 괜찮다며 “손님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말했다.

 

바텐더도 서비스업이라 비싼 양주를 산 손님은 바텐더에 대한 모종의 권리도 갖기 마련이다.(혹은 그렇게 생각하기 마련이다.) 술에 취해 알딸딸해지면 이를 악용해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한다. “하대하는 것까진 그러려니 하는데 만지려고 들면 거절하지.” 그녀의 말에서 그 요구가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다.

 

사람들이 왜 이곳을 찾느냔 물음에 그녀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외로워서”라고 했다. 가정도 있고 사회적 지위와 재력도 갖춘 사람들이 뭐가 그렇게 외로울까. 멍하던 눈빛을 다 잡고 그녀가 말했다. “인정받고 싶은 거지. 밖에서 보면 충분히 성공한 사람들인데도, 들여다보면 충족되지 않는 외로움이 있는 거 같아. 결코 충족되지 않는 외로움 같은 건데 외로울수록 자꾸 확인받고 싶나 봐.” 제법 설득력 있다. 차분한 눈빛으로 덤덤히 답하는 그녀의 모습에서 꽤 여러 번 생각해본 주제임을 알 수 있었다.

 

“반대로 사회적 잣대로 보면 보잘 것 없는 사람들도 많이 와. 밖에선 누구도 자기 이야기를 귀담아듣지 않는데 여기선 술을 사면 관심 갖고 들어주잖아. 근데 이런 사람들이 오히려 더 예의 없는 경우가 많아.” 외로움과 인정, 두 단어와 여전히 맞닿는다.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이 실제로 더 예의 없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귀에 걸린다.

 

그녀는 오해받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는지 가볍게 오는 손님도 많다고 덧붙였다. 단지 술이 먹고 싶어서. 혹은 고민을 털어놓으려고. 아니면 그냥 심심해서. 왠지 이유가 중요한 것 같진 않다. ‘토킹 바’가 사회에 필요한 곳이냐는 마지막 물음에 그녀는 한동안 침묵하더니 “응”이라고 조용히 말했다.

 

바텐더를 기다리는 손님_google 재사용가능 사진

 

‘토킹 바’엔 바텐더보다 손님이 많아 모두가 온전히 일 대 일로 대화를 나누진 못한다. 진솔하게 대화를 나누던 바텐더가 이따금씩 옆 사람에게 들렸다 오는 모양새다. 그래서인지 손님과 바텐더가 뱉는 말의 온도차가 상당하다. 손님은 대화에 빠져들어 인생사를 꺼내는데 바텐더는 정보 값이 거의 없는 ‘반응’을 할 뿐이다. 그런데도 이곳을 찾는 이들이 많은 걸 보니 진심과 기교의 경계가 모호하다.

 

주위를 둘러보니 다 bottle이다. glass만 달랑 시켜놓고 오래 머무는 게 상도덕에 어긋나는 것 같아 자리에서 일어났다. 술값을 계산하고 문 밖에 나설 때까지 그녀는 정중히 배웅했다. 가게 밖을 나오니 어쩐지 기분이 찜찜해 재빨리 밤거리 인파에 합류했다. 거리엔 술에 취한 사람들이 비틀거리고 간간이 홀로 뚜벅이는 남자들도 보였다. 그녀의 얼굴은 금세 잊힐 테지만 그곳의 단어들은 한동안 생각날 것 같다. 또 아주 나중에 문득 떠오를 테다. 

 

 

윤호연

지속가능저널  sustainability@sjournal.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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