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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밀하게 위험하게

교육부가 아주대학교에 위탁해 2015년 11월 한 달간 전국 150여 개 대학교 재학생 1,441명(남 652명·여 789명)을 대상으로 '대학생의 성 인식 및 성폭력 실태조사'를 실시한 결과, 대학생 25명 중 1명이 데이트 강간을 했거나 미수에 그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언어적 성희롱을 가한 적이 있는 대학생은 35%에 달했고 비(非)언어적 성희롱 가해 경험이 있는 대학생 비율은 10.7%로 조사됐다.

 

조사에서는 ‘피해’ 경험이 아니라 ‘가해’ 경험을 물었기 때문에 실제 피해 수치는 조사 결과보다 더 높을 것이 뻔하다. 실제로 주위에서 피해 학생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굳이 ‘피해자’들을 찾아다닐 필요는 없었다. 누구든 한 번쯤 피해자가 되어 본 경험이 있었기에. 성희롱 혹은 성폭력은 은밀하게, 그리고 훨씬 더 위험한 수준으로 자주 우리 곁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당했던 성희롱이나 성폭력이 있다면 자유롭게 말해줘”

 

 

-조00(21세) “대학 와서 언어적 성희롱 밥 먹듯이 들어”

내가 키가 크고 늘씬한 편이라서 대학 오니까 어떻게 한번 해 보려고 들이대는 사람들이 많았어. 동아리에서 처음 술자리를 가졌을 때 술이 좀 들어가니까 나보고 탐스럽다, 몸매가 예쁘다 등의 발언을 한 선배가 있었어. 그 날 바로 그 동아리 나왔지. 작년에 일일 호프를 했을 때는 과 선배가 친구들하고 와서는 나한테 “네가 여기서 제일 예쁘니까 앉아서 술 좀 따라봐라. 오늘은 내가 손님이잖아.” 이러더라? 기가 막혀서 정말. 나를 무슨 술집 여자 취급하는 것도 아니고. 주변 얘기 들어보면 이 정도는 애교 정도야. 아, 그리고 치마 입고 지하철 타면 그런 거 있잖아. 좀 음흉한 시선? 특히 나이 좀 있으신 할아버지들이 그런 식으로 쳐다보면 참...

 

-김00(23세) “못생겼다고 욕먹는 세상”

대학이 외모 지상주의가 제일 심한 거 같아. 나는 성형도 안 했고, 그래 솔직히 예쁜 얼굴은 아니지만 내 얼굴에 나름 만족하며 살았어. 그런데 우연히 과 단체 채팅 방에서 나를 두고 남자 동기들끼리 험담을 나누는 걸 봤어. 그냥 내가 못생기고 뚱뚱해서 싫대. 못생긴 게 치마 입고 와서 가방으로 다리는 누가 본다고 가리느냐부터 시작해서, 거리에 눕혀서 강간하고 싶다는 충격적인 메시지까지 읽고는 도저히 학교생활을 할 자신이 없어서 휴학했어. 그리고 다이어트를 시작했어. 못생기고 뚱뚱한 것도 죄니?

 

-남00(24세) “몸 좋다고 하는 말이 듣기 싫더라”

원래 그냥 비쩍 마른 몸이었는데 군대에서 운동을 열심히 했더니 몸이 많이 좋아져서 복학했어. 주위에서 ‘용 됐다’는 말도 많이 듣고. 복학하고 학교 다니는데 1학년 때 수업 들었던 여교수가 지나가다 나를 훑으면서 어머, 몸이 되게 좋아졌다하며 가는데 뭔가 기분이 나쁘더라. 이런 게 성희롱인가? 싶었어. 아, 언제는 버스 타고 가는데 버스 안에서 어떤 아주머니가 “청년, 몸이 되게 건실하네!” 하면서 내 엉덩이를 툭 치는거야. 아무렇지도 않게...후..

 

-김00(22세) “전 여자친구의 집착과 스토킹, 잊지 못할 기억”

한 1년 사귄 여자친구한테 헤어지자고 했더니 그날부터 집착하고 스토킹을 했어. 죽어 버릴 거라는 협박 문자부터, 자기 몸이 그립지 않으냐면서 자기 몸 사진을 보내는 거야. 문자, 카톡을 차단했더니 SNS 메신저로 그러더라고. 제일 무서웠던 건 밤에 몰래 우리 집에 찾아와서 무작정 들어오려고 했던 거? 비밀번호를 바꿔놔서 다행이지. 원래 걔랑 나 기념일 날짜가 집 비밀번호였거든. 진짜 뭔 짓 할 것 같아서 달래고 돌려보낸 뒤에 이사하고 핸드폰 전화번호도 바꿨어. 뒤에서는 오히려 왜 헤어졌냐고 물어보면 내가 데이트 폭력을 가해서 헤어졌다고 거짓 소문을 내고 다녔다더라... 지금은 뭐 하고 사는지도 몰라. 그때 일만 생각하면 소름 끼치고 무서워. 어우, 이 글 읽고 있는 거 아닌지 몰라.

 

박00(20세) “데이트 강간, 이것도 사랑이라고 했어.”

첫 연애였어. 그래서 잘못된 줄 몰랐나 봐. 깨닫고 보니 그 인간 만나는 동안 수도 없이 당했어. 사귄 지 100일쯤 지났을 때였나. 룸 카페에 갔는데 둘밖에 없으니까 키스를 하다 슬슬 내 옷을 벗기더니 가슴을 만지기 시작하더라. 무서웠어. 이런 적은 처음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땐 울먹이니까 거기서 그쳤어. 사과 대신 “사랑한다”고 하더라. 사랑해서 하는 거라고. 내가 단호하게 거절을 못 하니까 점점 대담해지기 시작했어 걘. 놀이터에서, 골목에서, 아파트 옥상에서.. 밑에도 손을 대기 시작하더니 그 뒤론 시도 때도 없이 삽입을 시도했어. 내가 생리를 한다고 하면, “생리 중에는 임신 안 된대” 하면서 억지로 관계를 하려고 했던 새끼가 걔야. 하도 당해서 나중에는 자궁에 질환이 생겼어. 부모님께 말도 못하고 혼자 산부인과에 다니면서 그때야 이건 잘못된 거라고 깨달았어. 헤어지자고 했지만 걘 계속 다 나를 사랑해서 그런 거라고, 앞으로 안 그러겠다고 붙잡더라.

 

나는 또 잡혀줬어. 그래 내가 미친년이지. 그런 놈들이 또 평소에는 엄청 잘해주거든. 근데 그놈이 다시 사귀고 며칠 뒤에 질염은 여자들 다 감기처럼 한 번씩 걸리는 거 아니냐면서 나한테 또 하자고 분위기를 잡더라. 이 얘기를 하면 누군가는 너도 즐긴 거 아니냐는 식으로 얘기 해. 그게 너무 상처여서 남한테 말도 잘 못 해. 걔는 나한테 계속 이런 행위도 사랑이라고 가르쳤어. 어디서 배운 적도 없으니까 나는 모든 연인이 사랑하면 이런 줄 알았어. 거절하면 나를 사랑하지 않느냐고 다그쳤거든. 그래, 누구 말대로 내가 미친년이야. 차라리 내 잘못으로 돌리는 게 편해. 세상 모든 남자가 이렇다고 생각하니까 다시는 연애를 못 하겠더라. 무서워서.

 

은밀하게 일어나는 성희롱은 잘 인지를 못 하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 ‘아, 기분 나쁘다’고 넘기기만 할 뿐 누구도 나서서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말하고, 막으려고 하지 않는다. 이러한 상황이 계속되면 데이트 성폭력으로도 이어지기 쉽다. 남녀의 사랑 안에 포장되어 은밀하게 일어나는 성폭력은 그 위험성도 크고 상처도 더 깊다.

 

이충민 푸른 아우성 교육팀장은 "성교육 필요성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청소년 성교육은 비교적 활성화됐지만, 현재 대학생들이 청소년이던 시절엔 성교육이 다소 부족했던 게 사실”이라며 “대학생들이 성인이 돼도 인터넷이나 또래를 통해 얻은 성 지식을 맹신하는 건 ‘성교육 사각지대’에 놓여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이 팀장은 "대학에서는 생식기와 성교에만 초점을 맞춘 성교육이 아니라 사회에서의 성 역할, 양성평등, 성차별, 성폭력, 성 소수자 문제 등에 대해서 깊이 있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김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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