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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기술 발달과 고향

 

세계화 시대에 적어도 대한민국에서는 거리가 상당부분 소멸했습니다. 자본은 편재함으로써 세계 도처를 고향으로 만듭니다. 자본에겐 고향이 없기도 하고 어느 곳이나 고향이기도 합니다. 세계화의 특징 중에 하나인 노동의 이동은, 우리에겐 흘러간 노래인 <고향아줌마>가 아직도 수십억명에게는 지금 부르고 노래라는 사실을 일깨워줍니다. 노동인구의 이동은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듯 세계 도처에서 목격되며 훈족의 대이동은 상대가 안 될 정도로 방대한 규모입니다. 사실 세밀하게 들여다보면 우리나라에서도 <고향아줌마>가 외진 곳에서 애잔하게 울려 퍼지는 노래임을 알 수 있습니다. 중국 연변 등의 조선족 노동자나 동남아 노동자들에게 고향은 여전히 고정점입니다. 상황은 다르지만 결혼하기 위해 한국에 들어온 이주여성도 마찬가지입니다. 가끔 TV다큐멘터리에서 몇 년 만에 한번 귀향한 이주여성 스토리를 들려줘 시청자들의 눈물을 쥐어짜곤 합니다. 하지만 TV다큐물일 뿐입니다.

대다수 한국인들은 마음먹으면 만일 그런 게 있다면 언제든지 고향을 방문할 수 있습니다. 거리의 소멸은 역설적으로 고향의 확대가 아닌 고향의 실종으로 귀결됐습니다. 물리적인 거리의 소멸은 커뮤티케이션 능력의 획기적 확장과 결합돼 고향을 영구히 유배 보냅니다. 우리가 고향을 떠나와 귀향을 소망하는 게 아니라, 고향이 우리를 떠난 것이지요.

소통능력의 획기적인 개선은 정보기술(IT)의 발달에 의한 것입니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IT 원천이 바뀌면서 이제 기술은 어떠한 정보든, 즉 얼마나 방대한 양이든 신속하게 전달할 수 있게 됐습니다. 여기서 질은 문제되지 않습니다. 디지털 세계관은 질을 양으로 간단하게 변경할 수 있습니다. 또한 ‘신속하게’라는 개념은 사실상 인간의 인지능력을 기준으론 즉각으로 진화합니다.

IT는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의 빅브라더가 꿈꾼 것 이상의 권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눈여겨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으로, 제작시점이 그리 오래되지 않은 영화에서는 도망자가 신용카드를 쓰는 법이 없습니다. 역으로 노숙자에게 신용카드를 줘서 쓰게 만드는 장면은 종종 나옵니다. 경찰을 골탕 먹이기 위해서입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개인이 무엇을 구매하는가가 곧 그가 누구인자를 의미한다면 정부가 모든 개인을 전면적으로 통제하고 있다는 논리도 가능합니다.

신용카드보다 더 강력한 개인추적장치는 핸드폰입니다. 이제는 누구나 알고 있는 GPS는 ‘Global Positioning System’의 약자로 잘 쓰진 않지만 우리말로는 ‘위성항법장치’라고 합니다. 핸드폰을 통해 개인의 위치는 실시간으로 파악됩니다. 군 정보기관의 이메일 도청 사건에서 보듯 개인의 이메일ㆍ인터넷 검색ㆍ컴퓨터 작업 등의 모든 내역이, 정보기관이 작정하기만 하면 언제든지 파악됩니다. 그들이 하기로 마음먹으면 개인은 언제든지 발가벗겨질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현대사회에서 개인의 사생활은 국가나 정보기관의 호의에 힘입을 때만 보장이 된다는 역설에 직면해 있습니다.

각종 IT망은 너무 광범위하게 또 깊이 작동하기에 인간이 이것에 저항하기는 이제 불가능합니다. 현대인은 기계문명의 친절에 의지해서 인간다움을 유지하고 있는 셈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대안이 있을까요. 사실 별로 없죠.

영화 <알파빌>은 슈퍼컴이 지배하는 가상 사회를 그린 1965년 장 뤽 고다르 감독의 작품입니다. 영화 속 세상은 아내가 죽었을 때 눈물을 흘렸다는 이유로 처벌받는 특이한 곳입니다. 희화화하기는 했지만 인간의 감수성 또는 존엄성이 침해당하는 세상에 대한 풍자는 강렬합니다. 슈퍼컴이 지배하는 알파빌에서는 인간이 무기화(無機化)합니다. 다르게 표현하면 디지털화한다고 할 수 있겠죠. 만일 그런 게 있다면 인간다움에 대한 복원시도는 강력하게 제지당합니다. 인간성을 회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알파빌을 떠나는 것 밖에 없습니다. 실제로 주인공이 그런 선택을 내립니다.

IT세상이 어떻게 진화할지 예단할 수 없지만 만일 인간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이, 디지털 세계로부터의 도주라면, 즉 외통수에 몰리면 대안 없는 세상에서 인류문명은 더 이상 떠날 곳이 없어질 것입니다. 이향ㆍ귀향이란 개념이 증발하고 고향의 상시적 소멸과 낯설지 않은 타지화의 부드러운 관철이 노정되겠지요. 실제로 어느 정도 그런 조짐이 보이고 있어 걱정스럽습니다. 0과 1이라는 흑백논리로 세상을 해석하는 IT는 인간사의 모든 걸 해석하게 되면 인간세상을 지배할 것입니다. 항상 해석하는 자가 지배하며, 해석당하는 자가 지배당하는 법입니다. 

 

안치용 / 발행인  dragon@sjournal.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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