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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기업 - 호모 이코노미쿠스

 

아담 스미스 이래 주류경제학에서 가정하는 인간은 ‘호모 이코노미쿠스’입니다. 합리적으로 판단하면서 이기심에 지배받는 존재가 ‘호모 이코노미쿠스’입니다. 합리성과 이기심에 휘둘린 경제적 인간이 경제학 교과서에 나오는 인간입니다.

인간의 합리성을 부인하고 때로 충동적으로 행동하는 경향을 케인즈는 ‘야성적 충동(Animal Spirit)’이라고 불렀습니다. 인간이 내리는 경제적인 결정이 늘 합리성에 기반해서 이루어지는 건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승자에 저주’ 같은 게 ‘야성적 충동’의 증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경제학이 말하는 합리성을 상당부분 추종하는 측면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인간이 이기심에 대해서는 대부분 동의할 겁니다. ‘야성적 충동’ 같은 반론이 나오기 힘듭니다. 그럼에도 인간이 늘 이기적으로 살아가지는 않습니다. 이기심과 관련된 단정을 부인하는 새로운 기업관이 사회적기업입니다. 이기심으론 사회적기업을 설명하기 힘듭니다. 예를 들어 우연한 기회에 만난 어느 사회적기업가는 “저는 제가 이 회사를 꼭 운영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망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해요. 누군가 다른 사람이 이 일을 하면 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자신이나 자신이 소속된 사회적기업의 성공보다 그 사회적기업을 통해 전달되는 사회적 서비스의 영속성이었습니다. 이른 바 계속기업(going concern)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계속서비스’가 문제의 본질인 것이지요.

사회적기업은 제1섹터, 제2섹터, 제3섹터 중 어디에나 나름의 방식으로 존재합니다. 주류경제학에서 상정한 ‘호모 이코노미쿠스’의 두 가지 속성 중 합리성은 어느 정도 구현되지만 이기심은 찾기 힘든 독특한 기업입니다. 앞서 사회적기업을 사회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기업적 혹은 시장의 방식을 채택해 효율성을 제고한 조직이라고 정의한 데서 어느 정도 유추할 수 있지 않을까요. 사회적기업의 흔한 형태는 우리나라 사회적기업 육성법의 바람과 달리 비영리조직(NPO)입니다. NPO는 이익을 낼 수는 있지만 본질적으로 이윤을 추구하지 않습니다.

제2섹터의 대표조직인 기업은 영리조직입니다. PO인 것이지요. 비정부기구(NGO)는 통상 시민사회단체를 의미하나 엄밀하게 단어상 의미로는 영리조직까지 포함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기업이 정부조직(GO)는 아니잖습니까. 그런 맥락에서는 영리조직을 제외한 1ㆍ3섹터 모두 NPO라고 해석될 수도 있겠습니다.

사회적기업은 NPO와 NGO를 포괄한다고 볼 수 있어 제1섹터와 제3섹터에서 모두 뿌리를 내릴 수 있습니다. 또한 제2섹터 내에서 시장규칙에 따라 영리기업과 대등하게 경쟁할 수도 있겠지요.

최근에는 CSR의 하나로 SK 등 제2섹터에 속한 대기업이 사회적기업을 육성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소위 단순한 사회공헌보다는 사회기여의 효율성과 기업 이미지의 제고를 동시에 겨냥한 것입니다. 영리기업이 사회적벤쳐캐피탈을 운영하는 것으로 이해하면 되겠습니다.

사회적이란 수식어가 붙지 않은 벤쳐캐피탈은 중소기업을 육성한다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사실은 투자입니다. 왜곡해 해석하자면 돈놀이의 한 형태로로까지 볼 수 있습니다. 벤쳐캐피탈은 최고의 수익률을 올리는 게 목적입니다.

사회적벤처캐피탈의 목적은 수익률이 아닙니다. 투자는 투자이되 사회적 가치를 키우는 것입니다. 크게 보아 이것도 사회책임투자(SRI)의 하나라고 받아들여도 무방하겠습니다. SK에서 500억원을 출연해 사회적벤처캐피탈을 운영한다면 SRI 성격의 CSR로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기업이 아닌 비영리단체나 개인들이 사회적벤처캐피탈을 조성했다면 용어의 엄밀한 정의와 무관하게 명백한 SRI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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