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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기업 - 그라민 은행의 예

필자가 쓴 <한국의 보노보들-자본주의를 위한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이란 책을 보면 책 서반부에 존 우드라는 사회적기업가가 등장합니다. 우드는 마이크로소프트(MS)중국지사에 근무하던 촉망받던 임원인데, 지친 심신을 달려 겸 1998년 베이징을 떠나 히말라야 산맥으로 향했습니다. 네팔에서 우연찮게 만난 이 나라 공무원을 따라 진짜 네팔 속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거기서 책도 없이 맨땅에서 공부하는 어린이들을 보면서 이들에게 책 주는 일을 해야겠다, 도서관도 지어줘야겠다, 이렇게 결심합니다. 여행에서 돌아와 곧 사표를 내고 사회적기업가로 변신합니다. 그가 세운 사회적기업 ‘룸투리드(Roomtoread)’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회적기업입니다.

베트남, 캄보디아, 네팔, 라오스, 스리랑카 등지에서 도서관과 학교를 지어줍니다. 그것도 한두 개가 아니라 수천 개를 말입니다.

사회적기업에 대한 요즘 젊은이들의 관심은 뜨겁습니다. 사회적기업에 관심을 가진 젊은이들에게 가끔 물어 봅니다. “룸투리드는 사회적기업인가요, 아닌가요?”

의외로 사회적기업이 아니라는 답변이 많이 나옵니다. 사회적기업에 대한 잘못된 인식 때문입니다. 존 우드의 룸트리드가 흔히 말하는 상품을 파는 조직이 아니어서 비롯된 오해 같습니다. 룸투리드는 책을 찍어내는 회사가 아닙니다. 매출 자체가 없습니다. 아니 어쩌면 매출 비슷한 것은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룸투리드에는 매출(Sales)이 없고 대신 수익 또는 수입(Revenue)이 있습니다. 은행 손익계산서에서도 수익이라는 계정이 사용되지만 내용상 매출과 유사합니다. 은행권에선 스스로 금융상품이란 용어를 쓰지 않습니까.

룸트리드는 매출을 발생시키지 않지만 수익은 일어납니다. 그래야 책을 사서 기증하거나 도서관을 짓겠지요. 룸투리드를 사회적기업이 아니라고 생각한 이유는 ‘사회적기업’이란 용어에 ‘기업’이 들어가 있어서 꼭 매출을 일으켜야 한다는 선입견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입니다.

방글라데시의 그라민은행은 유명한 사회적기업입니다. 사업내용은 ‘무담보 소액신용대출’입니다. 영어로는 ‘마이크로크레딧(microcredit)’ 또는 ‘마이크로 파이낸스(micro-finance)’라고 합니다. 우리 말보다는 영어가 사업내용을 더 정확하게 설명한 듯합니다. ‘소액’과 ‘신용’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신용’은 ‘무담보’나 비슷한 말입니다. 대출할 때는 담보를 잡고 내주느냐, 담보 없이 신용으로 내주느냐 크게 두 가지이죠. 담보를 잡지 않고 서민들에게 소액을 빌려주는 금융업으로 이해하면 되겠습니다.

널리 알려진 대로 그라민은행은 유누스 총재가 1974년에 우연찮은 경험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시작됩니다. 42 명의 여자가 고리대금업자에 돈을 빌린 뒤 그 돈을 갚지 못해 쩔쩔매면서 노예상태에 처한 것을 보고 유누스는 안 갚으면 말고 하는 생각으로 27달러를 빌려줍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그 돈을 갚았죠. 그렇게 소액으로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은행을 만들자고 해서 출범한 게 그라민은행입니다.

룸투리드나 그라민은행이나 모두 사회적기업인데, 이런 사회적기업이 성공하기 위한 가장 큰 인프라는 무엇일까요.

답을 찾기 전에 그라민은행과 기존은행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영업대상이 다릅니다. 기존 은행들은 돈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절대적으로 빌려주지 않습니다. 미국의 월가에 비견되는 영국의 시티에서 통용되는 경구입니다. 왜 그런지는 잘 생각해 보면 답이 나옵니다. 반면 그라민은행은 돈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빌려줍니다. 근본적인 철학이 다릅니다.

철학이 상이하다는 사실에 착안하면 두 유형의 은행 간 인프라 차이를 금세 알 수 있을 법합니다. 기존 은행(투자은행보다는 상업은행이겠죠.)의 인프라는 영업망, 인적 자원, 국내외 자금 조달능력, 리스크 관리 능력 및 분산역량 등 흔히 상상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그라민은행에서는 경제학ㆍ경영학 교과서에서 등장하지 않는 개념이 핵심인프라로 활용됩니다. 바로 신뢰입니다. 돈을 빌려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나 신뢰를 기반으로 거래합니다. 자본사회에서는 존재하기 힘든 형태의 자본입니다. 그라민은행이 MBA 출신이나 기존 은행 경험자를 선호하지 않는 것도 다른 유형의 자본을 중시한다는 징표입니다. 기존 금융권에선 신용은 있지만, 신뢰는 없습니다.

한국의 그라민은행을 표방한 미소금융은 그라민과 마찬가지로 무담보소액신용대출 사업을 하는 자칭 사회적기업입니다. 그라민은행과 미소금융의 차이는 확연합니다. 미소금융은 관이 주도한 마이크로크레딧입니다. 미소금융 이전에 NGO를 중심으로 다른 소액신용대출기관 설립이 추진된 적이 있습니다. 어느 시중은행이 돈을 대기로 했었죠. 하지만 마지막 단계에서 계획이 백지화했고, 대신 정부가 미는 미소금융이 출범했습니다. 공교롭게도 미소금융 이사장에 원래 NGO에 돈을 대기로 한 바로 그 시중은행의 최고경영자가 취임합니다. 현직 대통령과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미소금융의 취지를 더 퇴색케 했습니다. 기존 금융권에서 머니게임에 열중하며 승승장구한 사람이 사회적기업의 이사장 자리를 차지하고 그 자리에 권력의 그늘마저 드리웠으니 미소금융은 출발부터 순탄치 않았습니다.

1984년에 세계은행이 자기네 말을 듣지 않는다고 그라민은행에 대한 지원을 끊은 다음 다른 비영리단체를 끌어들여 제2의 그라민을 세워 유누스를 곤경에 빠뜨린 적이 있습니다. 미소금융 설립과정에서 풍긴 악취나 비슷합니다.

미소금융의 또 다른 문제점은 사회적기업가의 자질에 관한 것입니다. 사회적기업가에게 필요한 자질은 많겠지요. 혁신성, 도전정신, 치밀함 등 영리 기업가와 마찬가지 자질을 요구하지만 영리 기업가와 구별되는 핵심자질이 있습니다. 도덕성입니다. 다른 어떤 능력에 앞서 도덕성을 갖추지 않으면 사회적기업가 자격을 갖추지 못한 것입니다. 사회적 기업에 대한 아무런 이해 없이, 사회적기업가에게 필요한 어떠한 자질도 갖추지 못한 사람이 권력과 시류에 영합해 미소금융을 맡았으니, 적어도 이 분야에 있어선 우리나라가 방글라데시보다 훨씬 후진국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안치용 / 발행인  dragon@sjournal.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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