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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무역의 비용 측면

 

공정무역에서도 착한 소비와 마찬가지로 비용측면을 들여다 볼 수 있습니다.

국가들 사이를 분석틀로 하는 공정무역과 달리 개별 경제권 또는 국가 차원에서는 비교적 분명하게 파악이 됩니다. 예컨대 농약을 남용해 농산물을 생산하면 누군가는 그 비용을 치르게 됩니다. 정부가 책임지든가 아니면 지금 정부가 아닌 후대의 정부가 책임지든지 그 경제권 내에서 누군가는 책임질 수밖에 없습니다. 농약중독으로 병이 생기면 농부나 소비자가 스스로 그 비용을 감당하든지 정부가 일부 도움을 주든지 하겠지요. 강물이 오염되면 책임소재가 불분명하긴 하지만 그래도 언젠가는 해결되겠지요.

서울의 동부간선도로를 따라 흐르는 중랑천에 지금은 물고기가 살고 새가 날지만 옛날에 그곳은 엄청난 오물이 흐른 하천이었습니다. 개발연대에 그곳은 버려진 강이었는데 이제는 환경투자를 통해 아름다운 하천으로 살아났습니다. 당대의 비용을 후대에서 지불한 사례입니다. 하나의 경제권 내에서는 어떤 식으로든 누군가 비용을 치를 수밖에 없습니다. 중랑천에 환경투자가 이뤄지지 않아 옛날과 똑같다면 오염에 따른 건강훼손을 비롯해 지나갈 때 느끼는 소소한 불쾌함까지 다른 방식으로 비용을 지불하며 살게 되겠지요.

전부원가회계(full cost accounting)를 동원해 (공정)무역에서는 비용이 어떻게 처리되는지 살펴볼까요. 사회적 비용을 따져봅시다. 만약에 한 경제권에서라면(그리고 어느 정도 성숙한 경제권이라면) 어느 노동자가 과도한(또는 부당한) 노동으로 장애ㆍ질병이 생겼다면 이 노동자가 일을 못하게 됐을 때 사회안전망이 작동해 먹고 살게는 해줍니다. (사회안전망이 부실한 나라가 많기 때문에 일반화할 수 없다는 반론이 예상됩니다만, 그래도 또 아주 아닌 것은 아니지요.)

공정무역의 대상이 되는 저개발 국가에서 커피를 생산하는 농부들에게 만일 커피를 사가는 사람이나 기업이 농부들이 인간적인 삶을 살 최소한의 비용을 지불하지 않는다면, 누가 그 비용을 지불하게 될까요. 극빈국일 테니 그 나라 정부가 지불할 가능성은 희박하죠. 후대에까지 가난을 대물림할 테니, 그 농부들이 여러 세대에 걸쳐 인간다움을 박탈당하는 것으로 스스로 비용을 감당할 수밖에 다른 방법이 보이지 않습니다.

공정무역은 그 나라 정부가 지불을 거부한, 또 다국적기업들이 나 몰라라 하는 비용을 다른 나라의 소비자들이 내게 하는 구조입니다. 공정무역을 도움이 아닌 거래라고 설명하지만, 내용상으로는 거래를 통한 도움이라고 보는 게 타당해 보입니다. 결국은 도움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다시 지속가능발전으로 돌아가면 세대 간의 문제 뿐 아니라 한 세대 내의 양극화 문제를 해결해야 지속가능발전이 가능하다고 했습니다. 현 세대의 남북문제를 해소하려면 적어도 교과서적인 비교우위가 실제로 발휘될 수 있는 시장 메커니즘이 작동해야 합니다. 완전고용 같은 비현실적인 전제를 충족시키기는 어렵기에 대등한 협상력을 갖춰줘야 하겠지요. 하지만 이 또한 구두선이 될 공산이 큽니다. 결국은 골프에서처럼 선수들의 실력차이에 따라 핸디캡을 인정하는 게 가장 공정한 게임규칙이라 할 수 있습니다. 체급이 다른 선수를 같은 조건에서 경기시키는 건 격차를 고착화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자유무역 옹호론자들이 말하듯 무역을 통해 상호이익을 실현하려면 저개발국가들에게 보호장구의 착용을 허용해야 합니다. 불공정한 세계 무역시스템과 불완전한 세계 경제체제를 반성하고 개혁하려는 지구촌 차원의 연대가 이뤄져야 합니다. 공정무역과는 다른 관점에서의 또 다른 정치세력화라 할 수 있겠습니다.

공정무역 같은 세계시민운동 차원의 움직임과 함께 세계 무역구조를 바람직한 방향으로 바꾸려는 국제정치의 움직임이 병행돼야 지구촌의 양극화 문제에 해결이 앞당겨질 수 있습니다. 공정무역의 의의가 결코 작지 않지만 단순한 공정무역(Fair Trade)에 머물지 말고, ‘모두에게 공정한 무역(Fair Trade for All)’에까지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자유무역협정(FTA : Free Trade Agreement)이 아니라 모두에게 공정한 무역(Fair To All)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과는 다른 문맥에 위치하지만 더 큰 관점과 시스템 개혁 의지를 잃지 말아야 한다는 취지는 동일합니다. 저명한 미국의 경제학자 제프리 삭스가 주도한 ‘밀레니엄 개발 목표(MDG)’ 같은 구상이 여전히 유효합니다. 2015년까지 세계의 빈곤을 반으로 줄이겠다는 2000년 유엔 선언은 이미 실현가능하지 않게 됐지만 세계 빈곤퇴치에 관한 선진국의 책임을 물은 MDG 정신이 존중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공정무역이 더불어 사는 세상을 염원한다면 세계적 규모의 이같은 시민운동은, 저개발 국가들에 대한 개발된 국가들의 체계적이고 꾸준한 그리고 책임감 있는 지원을 촉구해야 합니다. 제 3세계 국가들의 부채를 탕감해주고 공적개발원조(ODA)는 늘려야 합니다.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 세계무역기구(WTO), 세계은행, 국제통화기금(IMF) 등은 국제 금융자본이 제3세계에서 사채놀이나 다름없는 돈놀이를 하는 것을 방조했습니다. 우리나라가 빈곤에서 탈출한지는 얼마 안 됩니다. 개구리 올챙이 시절 모른다고 제3세계에서 선진국 행세하며 그들이 그랬듯 우리도 어떻게든 제3세계에서 약탈해 올 궁리만 하는 건 온당치 않습니다. 우리나라가 어렵사리 사다리를 올라왔다면 사다리를 걷어차기보다는 다른 이들이 사다리 위로 올라올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공정무역이 찻잔 속 태풍에 그치지 않으려면 세계적 규모의 변혁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물론 현실적으로 그러한 관심을 표현할 수단이 공정무역 커피 한 잔을 마시는 행위 외에는 없을 수 있겠지만 말입니다. 그래서 희망이 없는 가운데서 희망을 모색해가는 작은 움직임이 공정무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안치용 / 발행인  dragon@sjournal.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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