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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무역의 성장

 

커피 바나나 등의 농산물 시장은 사실 무역이란 틀로 분석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할 수 있습니다. 커피ㆍ바나나 등 세계 교역량이 큰 대표적인 농산물 시장은 다국적 기업이 지배하는 단일시장이라고 보는 게 합당해 보입니다. 철저하게 수요자 시장으로 유지돼 생산농가들은 끊임없는 저가경쟁에 내몰리고, 커피 등을 재배하는 것 외에는 대안이 없기 때문에 계속 생산해 싸게라도 팔게 되고, 그 과정에서 빚을 지게 되면 그 빚을 갚기 위해서 더 싸게 팔게 되는 이런 악순환이 반복됩니다. 비교우위ㆍ절대우위 이런 개념이 무용해진지 오래입니다.

그렇다고 다국적 기업이 시장질서를 흐린 것은 아닙니다. 다국적기업들이 시장설계에는 개입했을지 모르지만 오히려 시장기능을 저해하는 어떤 움직임에도 반대합니다. 시장 활성화를 통해 제대로 시장가격이 형성되어야 다국적기업들에게 유리하기 때문입니다. 공급과잉 상태니까 가격이 폭락하는 게 당연하고, 만성적 공급과잉이야말로 다국적 기업들이 원하는 바입니다.

이에 따라 제3 세계에서 커피 등을 생산하는 농민들은 가난의 악순환에서 헤어나지 못하게 됩니다. 끊임없이 그 일을 하면서 더 가난해지고 마는 것이지요. 더불어 해당 국가의 경제적 생태계가 파괴됩니다. 예컨대 커피를 주력으로 다른 산업을 함께 육성했다면 다른 성장의 기회를 엿볼 수 있고, 하다못해 커피 심을 자리에 먹거리를 재배했으면 굶주리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제 3세계 농민은 세계경제에 급격하게 편입돼 단일화한 지역경제 속에서 대외종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됩니다.

1845~49년 아일랜드 대기근은 지역 경제생태계가 파괴된 가운데 세계경제에 종속적으로 편입되면 어떤 비극이 빚어질 수 있는지 웅변합니다. 기근으로 아일랜드 전체 인구 800만명 중 200만명이 죽고 200만명이 조국을 떠나고 있을 때 농장의 대지주들은 외국에 식량을 수출했습니다. 내부의 경제생태계가 제대로 작동했다면 식량이 안으로 돌아 피해를 줄일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안으로 돌 수는 없었죠. 구매력이 없으니 팔 수가 없었죠.

하지만 적어도 안에서 식량이 생산되고 있다면 강력한 정부가 있어서 수출을 금지하고 정부가 외상으로라도 사들여 굶주린 국민들에게 배급하는 선택지를 끝까지 가지고 있을 수 있습니다. 물론 아일랜드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플랜테이션 농법으로 농업이 단작으로 바뀌는 과정에서 자신들이 먹을 것을 심었어야 할 곳에다 잘 사는 나라 국민들이 먹을 커피를 점점 더 많이 재배하게 되고, 종국에는 위기가 닥칠 때 손 놓고 있을 수밖에 없어집니다. 자유무역으로 무장한 세계경제는 거대자본의 이익은 10원까지 챙기지만, 제 3세계 노동자의 밥 한 끼는 해결해주지 못합니다.

경제생태계가 파괴되면 환경 생태계도 무너집니다. 커피, 바나나, 사탕수수 등을 단작(單作)한다는 말은 경제ㆍ생태적 단작을 뜻합니다. 대규모 농장에서 단일 식물을 키우는 플랜테이션 농법은 토지를 황폐하게 만듭니다. 플랜테이션 농장은 제3세계에 존재하지만 주인은 서구 등 외부 자본일 때가 많습니다. 현지인은 저임금 노동자로 플랜테이션에서 일하거나 영세한 자영농부로 어렵게 생활을 이어갑니다. 단작으로 인한 생물생태계 파괴의 피해는 자본가가 가져가지 않고 제3세계에 그대로 남겨집니다. 단작의 모든 피해는 경제적으로 생태적으로나 고스란히 현지인에게 돌아갑니다.

이제 공정무역이 등장합니다. 공정무역은 ‘도움이 아닌 거래’를 표방합니다. 공정무역에서 말하는 거래가격은 현지인들이 지속적으로 노동을 재생산할 수 있는 적정 가격입니다. 다국적기업이 만들어놓은 부당한 시장가격 대신 사회적, 환경적 비용까지 포함한 어느 정도 공정한 가격을 제시하고 그 가격에 제3세계 농산물을 수입하는 게 공정무역입니다. 여기에다 수입가격의 10% 정도에 해당하는 ‘사회적 초과이익(Social Premium)’까지 얹어야 공정무역 가격이 도출됩니다. ‘사회적 초과이익’은 생산자 공동체에 지급하는 자활인프라 구축비용입니다. 이 돈을 모아 제3세계 농민들은 학교나 병원을 짓거나 도로를 개설할 수도 있습니다.

이때 공정무역 가격과 시장가격이 양립하게 됩니다. 지속적인 노동이 가능하고 노동력을 건잔하게 재생산할 수 있는 공정무역 가격과 약탈적 가격으로 같은 상품에 두 가지 가격이 존재하게 됩니다.

세계 무역 전체를 놓고 보면 공정무역의 교역상품 수나 양이 미미하기 그지없습니다. 여전히 약탈적 가격이 지배적이란 얘기겠지요. 따라서 누군가 나서서 ‘불공정한’ 세계 무역을 좌지우지하는 다국적 기업들에게 압력을 넣어 그들의 ‘불공정’을 다소나마 줄이려고 노력할 수 있습니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고 언제 변화를 끌어낼 수 있을지 모르는 싸움이지만 그렇다고 의의가 없지는 않습니다.

주된 공정무역의 움직임은 다국적기업에 압력을 넣는 간접적 방법 대신 시민사회의 힘으로 직접 무역에 뛰어드는 것입니다. 세상을 바꿔나가는 작지만 소중하고 아름다운 발걸음입니다. 제3세계에서도 오지까지 들어가서 현지인의 생산자협동조합 같을 걸 만들 수 있게 돕고, 수입한 다음 국내에서도 판로개척 등 적잖은 일을 공정무역 활동가들은 감당해야 합니다. 정보나 시장지배력 등 다국적기업들에게 비해 여러모로 열악한 환경에 처한 공정무역 진영의 유일한 힘은 취지에 동참하는 소비자 집단입니다.

취지에 공감해 행동하는 소비자들이 늘어나서 시장을 영향을 미친다면 다국적 기업들도 바뀌긴 바뀔 겁니다. 결국 공정무역이 일부 의식 있는 사람들의 자기만족적 운동을 넘어서서 실제로 사회를 조금이라도 바꿀 수 있는 운동이 될 수 있는가 없는가의 관건은 그 취지에 동참하는 소비자의 숫자가 얼마이냐에 달려있습니다.

세상을 바꾸려면 투표하자고 유권자들에게 호소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공정무역은 일종의 정치운동입니다. 공정무역에서는 표 대신 구매를 요청합니다.

정치운동을 통해 다국적기업의 냉혹한 경제논리에 맞서는 공정무역은 1958년 미국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유럽에서도 비슷한 시기에 공정무역이 출발했습니다. 이제 반세기 정도의 역사를 갖게 된 공정무역은 스위스에서 전체 바나나 소비량의 절반가량을 공정무역 제품으로 조달하는 등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고 있습니다.

거대 시장과 거대 자본에 맞서 공정무역이 어느 정도까지 성장할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공정무역은 착한 소비와 동일한 딜레마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은 정치문제로 귀결되기 때문입니다. 사실 네슬레, 돌 등 다국적기업들이 지배하는 ‘공정하지 못한’ 세계적 규모의 시장과 그 작동방법 또한 특정 세력의 이익을 구조적으로 보장하고 있기 때문에 명백히 정치적입니다. 하지만 그런 정치적 시장을 가동한 다음에는 정치를 경제의 이면으로 구겨 넣어서 보이지 않게 조치했습니다.

반면 공정무역이나 착한 소비는 새로운 시장질서가 지배적인 시장질서로 자리잡을 때까지는 정치를 감출 수 없습니다. 그래서 더 정치적으로 여겨지는 착시를 감내할 수밖에 없습니다. “전 세계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는 구호는 이제 “전 세계의 소비자여 단결하라!”는 구호로 바뀌거나 나란히 놓이게 됩니다. 전 세계의 노동자의 단결이 쉽지 않았듯, 전 세계 소비자의 단결 또한 아름다운 얘기이지만 쉽지 않은 전망입니다. 그렇다고 그런 꿈을 꾸는 사람이 줄어들 것 같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더 늘어나겠지요.

 

안치용 / 발행인  dragon@sjournal.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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