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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우위론의 등장

무역과 관련해 경제학 교과서에 나오는 가장 유명한 이론은 데이비드 리카르도의 비교우위론입니다. 아주 단순해 보이지만 비교우위론는 많은 경제학자들로부터 천재적인 착상이었다는 찬사를 받았습니다.

 

 

비교우위론을 간단하게 설명하면, 혼자서 필통과 연필을 동시에 만드는 것보다 둘이 나눠서 각각 필통과 연필을 만들어 교환하는 게 양쪽 모두에게 더 큰 경제적 이익을 가져다준다는 견해입니다. 이때 어느 한 쪽이 필통과 연필 생산에서 모두 절대 우위에 있더라도 이 견해는 유효합니다. 어느 한쪽은 필통에, 다른 한쪽은 연필에 각각 절대우위가 있다면 하나의 상품에 특화해 서로 교환하는 게 이익이라고 생각하기는 쉽지만, 리카르도는 절대우위가 없더라도 마찬가지로 특화와 교환이 상호이익을 가능케 한다고 입증했습니다. 기회비용에 대한 이해가 있었기에 가능한 분석이었습니다.

자유무역 옹호론자들에게 비교우위론은 성경이나 다름없습니다. ‘특화해 생산해서 교환하라, 그러면 모두 부를 얻을 것이다’는 복음입니다. 그렇지만 자유무역에도 불구하고 가난한 나라는 계속 가난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비교우위에 기반해 교역하면 서로 도움이 되었어야 하는데, 현실은 왜 그렇지 않았을까요.

애초에 출발점이 다르니까, 출발점이 너무 멀면 따라잡을 수 없는 것일까요. 우리나라의 압축적 경제발전을 보면 이 논리는 적합하지 않아 보입니다. 대한민국의 1인당 국민소득이 100달러에 미달한 게 그리 오래전이 아닙니다.

우리나라는 따라잡았습니다. 우리나라하고 아프리카 저개발국가들 간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이 문제에 대뜸 “우리에겐 박정희가 있었고 그들에겐 박정희가 없었다.”고 간단하게 정리하려고 들 사람도 있겠습니다.

세계무역기구(WTO) 등 자유무역을 촉진하는 진영에서는 무역을 통해 상호발전이 일어난다고 일관되게 주장합니다. 최소한 무역을 안 하는 것보다 이득이라는 논리를 펼 수도 있겠죠.

이 주장의 진위를 따지기에 앞서 리카르도 비교우위론의 가정부터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리카르도는 비교우위론을 펴면서 완전고용을 가정합니다. 다음으로는 상품 가격의 결정이 소위 ‘시장’ 기능에 의해 자유롭게 이루어진다고 봅니다.

‘천재적 착상’인 비교우위론이 현실과 왜 동떨어져 있는지 알 법도 합니다. 당장 알다시피 완전고용 상태는 교과서 말고는 어느 나라에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지금 우리나라 실업률이 높다고 아우성이지만 과거와 비교하면 엄청나게 개선된 것입니다. 개발연대 초기 우리나라 실업률은 지금 아프리카나 중남미 빈국과 비슷했을 것입니다. 당시 직장이라고 해봐야 공무원, 은행원, 교사 등등이었습니다. 선진국과 빈국 사이에 교역이 이뤄지면 빈국에는 흔히 농산품을 중심으로 약탈적 가격이 적용됐습니다. 빈국에서 대규모로 상시 존재하는 산업 예비군은, 어떤 호가에도 거래에 응할 최저가 노동력의 존재를 뜻했고, 결국 상시적 가격하락 가능성을 열어두게 됩니다.

또 다른 핵심은 세계가 결코 평평하지가 않다는 사실입니다. 모든 거래에서 최종적으로 마주대하는 건 언제나 두 사람입니다. 아프리카의 바나나 생산농가와 다국적 농산물 판매회사 돌(Dole)의 구매담당자 가운데 누가 더 우월적인 위치에 서게 될까요. 협상력의 차이는 누가 봐도 뻔합니다.

비교우위를 말하려면 동등한 당사자 간의 공평한 거래이어야 합니다. 현실에서는 우열이 명확한 당사자 간에 약탈적 거래가 형성됩니다. 산업예비군의 존재는 약탈적 가격을 수용할 완충역할을 담당하고 협상력 차이는 대부분의 거래에서 다국적 기업들의 이익을 보장합니다. 전 세계 커피 생산농가의 3분의2가 극빈층이라는 추정은 자유무역, 또는 비교우위론의 허상을 폭로하는 셈입니다.

제 3세계 국가들이 커피 팔아 번 돈으로 제조업을 육성해 경제발전을 이룩했어야 하는데 현실에서 그런 사례를 찾아보기는 힘듭니다. 일반적인 자유무역 상태에서는 다국적 식품ㆍ농업기업들이 전 세계에 산재한 각종 농산물 생산농가들을 개인적이든 집합적이든 체계적으로 수탈했기 때문이겠지요. ‘수탈’이란 표현이 거북하다면 영국의 국제구호단체 옥스팜이 분석한 커피 한 잔의 가격구성비를 살펴보는 것으로 족할 것 같습니다. 커피 한잔을 마실 때 제3세계 커피생산농가에 돌아가는 돈은 판매가의 0.5%에 불과했습니다. 5%도 아닌 0.5%. 

 

안치용 / 발행인  dragon@sjournal.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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