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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소비

 

윤리적 소비, 착한 소비는 생각보다 어려운 이야기입니다. 이 책에서 다루는 주제들 중에서 어찌 보면 대중적으로 제일 친숙한 것인데도 말입니다.

지속가능사회의 메커니즘에서 살펴보았듯 지속가능기업의 제품을 적극적으로 구매하는 사회책임 소비, 지속가능한 소비, 윤리적 소비, 또는 착한 소비는 지속가능사회의 선순환에서 중요한 기능을 수행합니다. 착한 소비가 갖는 한계는 이것이 본질적으로 정치행위라는 데 있습니다. 원론 차원에서는 모든 경제 행위가 정치 행위이지만 상식 차원에서도 착한 소비는 정치에 더 가깝습니다. 정치 문제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누구나 쉽게 판단해서 용이하게 참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존재합니다.

착한 소비는 상품의 이면(裏面), 또는 상품화 이전 과정에 주목합니다. 사람으로 치면 연좌제 같은 겁니다. “같은 상품이라도 과거가 불미스러운 상품은 이제 사랑하지 않아요”라는 연좌제입니다. 제품을 제품으로만 보지 않고 제품이 출시된 과정, 제품 출생의 비밀까지 살펴보는 자세입니다. 사람에 빗대면 사람을 그 사람만으로 사랑하지 않고 신분과 조건을 따져 판단하는 상당히 계산적인 행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상품화까지 전과정의 성적을 모두 기억해서 소비자와 상품이 만나는 접점에서 나타나는 적극적인 행동은 크게 봐서 두 가지입니다. 적극적인 구매와 적극적인 불매. 예컨대 조중동에 광고하는 기업들에 대한 불매운동도 착한 소비에 속할 수 있습니다. 지나치게 정치적이지 않으냐는 반론이 가능하지만 이미 언급했듯 착한 소비는 정치행위입니다.

적극적으로 구매하든 적극적으로 불매하든 그 잣대가 윤리적인 판단인 만큼 다양한 형태가 가능합니다. 수차례 얘기했듯이 지속가능경영을 잘하는 기업에 사회책임투자(SRI)로 돈을 몰아주고, 그 기업에서 나온 상품을 시장에서 적극적으로 구매해 사회에 건전한 순환구조를 만드는 틀에만 착한 소비는 국한되지 않습니다. 정치적 판단이 개입하기 때문에 때로 논쟁을 불러올 수 있습니다. 대체로 불매에서 이런 논란이 많이 야기됩니다.

착한 소비가 정치행위라면 시장에서 형성된 가격을 덜 존중하는 경향이 예상됩니다. 그러나 불매와 달리 구매에 있어서는 시장가격에 더 영향을 받는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까지는 착한 소비가 대체로 동가홍상(同價紅裳) 태도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 같습니다.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는 한자말은 유곽에서 비롯했는데, 옛날에 한량이 유곽에 가서 여자를 고를 때 화대가 같다면 처녀(처녀는 빨간 치마를 입었습니다.)를 선택하겠다는 화류계 용어입니다. 이춘풍 같은 화류계 유명인사라면 ‘돈을 더 주고라도’ 홍상을 택하겠지요.(지금 동가홍상에서 화류문화를 떠올리는 사람은 없을 테니 착한 소비를 설명하기 위해 홍상을 거론한 것을 혜량하시길.)

우리나라 국민들은 기업의 사회책임(CSR) 이행에 대해서는 의무사항으로 인식하는 비율이 높았지만 CSR 기업의 제품을 적극적으로 사겠다는 비율은 상대적으로 낮았습니다. 소비가 정치라는 관점에서 보면 우리나라 국민의 정치의식은 다른 나라에 비해 떨어지는 셈이지요.

선순환을 완결짓고 가속화하기 위해서는 적극적 구매층이 늘어나야 합니다. 같은 가격일 때는 물론 돈을 더 주고라도 사회책임 이행 기업의 제품을 사겠다는 소비자층이 두터워져야 지속가능경영을 촉진할 수 있습니다.

요즘 착한 소비의 주요 축은 적극구매입니다. 과거에는 베트남전 아파라트헤이트 등 부정적인 사회현상에 연루된 기업의 제품을 사지 않는 불매운동이 주종이었습니다.

사회책임투자(SRI)와 사회책임소비(착한 소비)는 같은 맥락으로 이해하면 됩니다. 돈을 넣느냐 물건을 쓰느냐의 차이입니다. SRI에서도 초기에는 배제가 많았습니다. 베트남전에 네이팜탄을 공급하는 회사의 주식을 사지 않는 운동을 펼치는 등 착한 소비와 마찬가지로 ‘거부’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기본적인 틀은 똑같은데, 들어가느냐 나오느냐 이 차이이고 또 하나는 자본시장이냐 소비시장이냐 하는 차이입니다. 자본시장에서는 행동이 훨씬 간단할 수 있습니다. 주식을 사면 됩니다. (물론 살 주식을 고르는 과정은 복잡합니다.)

반면 소비시장에서는 훨씬 더 광범위한 선택지가 놓여 있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모든 상품(거래되는 모든 재화와 서비스)은 값을 매길 수 있습니다. 소비자들은 돈을 내고 상품을 사고 모든 상품을 가격으로 환산할 수 있습니다. 또한 상품을 제조하는 기업의 가치도 (상장사라는 전제하에) 가격으로 환산할 수 있습니다. 그 가격은 자본시장에서 주가란 형태로 매겨집니다. 소비되기 전까지 기업이나 상품은 모두 자본의 한 형태들이며 예외 없이 숫자로 변환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모든 상품과 모든 소비자가 하나의 시장에서 만나는 것은 아닙니다. 상품은 보편적이지만 소비는 구체적입니다. 소비시장이 쪼개져 있어 가격을 넘어 실제 소비로 대면하는 데는 상품에 따라 제약이 따릅니다. 단적으로 일반 소비자가 네이팜탄을 살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 네이팜탄 불매운동은 할 수가 없습니다. 자본시장에서는 모든 것이 돈으로 환산되고 하나의 상품으로, 하나의 시장에서 거래되기 때문에 모든 상품(기업)이 소비(구매)대상이 됩니다. SRI는 숫자를 움직이기 때문에 더 위협이 될 수 있습니다. 착한 소비가 SRI와 연결되면 훨씬 더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더 지불하고라도 사회책임을 다한 기업이 만든 제품을 사겠어요.” 하는 태도는 앞서 살펴본 참치분쟁에서도 나옵니다. 착한 기업이 착한 소비자와 만나려면 의사소통이 필요합니다. 지속가능경영 혹은 착한 경영을 했다는 사실을 사회가 알게 하기 위해 하는 소통이 사회보고(Social Reporting)이고 구체적인 작성기준이 GRI(G3)입니다. 그렇게 해서 나온 게 지속가능보고서, 사회책임보고서, 기업시민 보고서 같은 것들이지요. 사회보고라는 용어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이 보고는 소비자집단만을 겨냥한 것은 아닙니다. 소비자ㆍ자본시장ㆍ노동자 등 사회 전체를 대상으로 합니다.

소비자 입장에서 소비현장에서는 참고할 표시가 필요합니다. 참치분쟁에서 등장한 ‘돌핀 세이프(dophin safe)’ 같은 표시가 라벨링입니다. 라벨링, 인증, 이력 등 다양한 표시를 통해 소비자들이 착한 소비를 할 수 있게 정부ㆍ소비자단체 등에서 도와줍니다. 기업들이 스스로 성분이나 온실가스 배출량 등을 상품에 부착하기도 합니다. 소비자는 개별 소비자로 소비현장에 서기 때문에 구매판단을 내리는 데 도움이 되는 정보를 체계적으로 표시하는 게 착한 소비에 핵심적 사항입니다. 착한 소비가 총체적으로는 정치적 각성인 만큼 정보파악을 넘어서 적극적 연대로 나아간다면 소비를 통한 사회개선이 크게 어렵지는 않을 터입니다. SNS 등 연대한 수단이 많다는 게 착한 소비에는 유리한 환경인 셈입니다.

 

안치용 / 발행인  dragon@sjournal.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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