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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머니와 관련한 논의

 

토빈세 구상이 실효성을 거두는 최선의 방법은 세계 대다수 국가에서 ‘동시에’ 이 제도를 도입해 시행하는 것입니다. 토빈세가 있는 나라에서 없는 나라로 도망치는 자본의 퇴로를 차단할 수 있어서입니다. 물론 지금도 카리브해를 중심으로 조세회피지역(Tax haven)이 있어서 세금을 내지 않거나 덜 낼 목적으로 이곳에 페이퍼 컴퍼니를 세우기도 합니다. 우리나라는 조세피난처로 주로 말레이시아를 이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조세회피지역에서는 법인 등의 소득에 관한 세금을 면제해주거나 깎아주는 반면 토빈세는 자본거래에 세금을 물리는 방식이어서 기존 조세피난처 같은 편법이 통하지 않습니다. 토빈세가 시행되고 있는 시장에서 토빈세를 피하려면 조직폭력배나 범죄집단처럼 음성적으로 거래하거나 아니면 아예 그 시장을 떠나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세계 대다수 국가에서 동시에 토빈세를 도입하지 않고 부분적으로 또 시차를 두고 토빈세가 시행된다면 대규모 자본이동을 쉽게 예상할 수 있겠지요. 물론 토빈세 강도와 도입국가의 자본수익률ㆍ금리ㆍ환율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기에 서브프라임 사태 때 아이슬란드에서 목격한 것과 같은 ‘쓰나미성 썰물’이 온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예상과 달리 다른 요인이 작동한다면 토빈세 도입 국가에 오히려 자본 유입이 일어날 수도 있겠지요. 토빈세가 변화를 야기하리라는 점은 확실합니다. 변화는 불확정성을 의미하기에 당국자는 “나 말고 다음 책임자가 결정하라”고 결정을 떠넘길 공산이 큽니다.

핫머니 통제의 또 다른 방법은 국제공조입니다. 국제공조 가운데서도 세계 금융감독청 설립 구상이 G20회의에서 논의된 적이 있습니다. 노동조합 운동에서 산별 노조의 등장에 비견될 수 있겠지요. 하지만 산별노조와 달리 세계 금융감독청은 결코 실현될 수 없을 것입니다.

세계 금융감독청과 개별 국가의 금융감독기관 간에 권한과 역할을 어떻게 나누냐를 두고 합의가 이뤄질 수 없기 때문에 이 구상은 일종의 사상누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세계화 시대에 시장은 국경을 넘어 세계적 범위로 확장된 반면 인간 삶과 정치ㆍ사회는 개별 국가에 갇혀 있기에 생기는 근원적 갈등들 중 하나입니다.

개별 금융감독기관들 사이에 국제공조를 강화하는 한편 공조의 효율을 높이기 위한 단순협의체 성격의 ‘국제 금융감독공조기구’ 정도는 노력여하에 따라 햇빛을 볼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핫머니와 관련된 논의는 이렇게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우선 SRI를 국내에서 활성화하면서 동시에 지속가능기업을 많이 만들고 연기금에 SRI를 관철시켜 나가면, 즉 자본주의를 따뜻하게 만드는 운동을 체계적이고 광범위하게 또 강도 높게 진행하면 우리 사회에 지속가능기업들이 더 늘어날 것이고, 이에 따라 해외에서 착한 돈이 국내에 많이 유입돼 우리나라에 쿨머니가 넘쳐나고 그 돈이 우리나라의 국부를 늘리는 데 기여하는 선순환을 정착시키자고 말입니다.

여전한 위험요소인 핫머니에 대해서는 한정된 범위 내에서 대안을 검토할 수 있겠습니다. 통제불능은 근본적으로는 우리나라가 자본시장을 자유화했기 때문인데, 자유화를 세련된 방식으로 재검토할 수 없는지 연구해 봐야 합니다. 느닷없이 문을 걸어 잠글 수는 없고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기 때문에 서서히 자유화 수위를 낮추자는 생각입니다. 지금 자유화 수위는 사실상 만수위이기 때문에 언제든지 범람해 홍수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외환거래와 관련해서는 달러 위주로 형성된 거래경로를 유로ㆍ위안ㆍ엔 등으로 다변화하는 게 현실적으로 어떤 이득이 있는지 따져보고 경로 위험을 낮추는 방안을 검토해야 합니다. 투기적 거래에 과세하는 토빈세처럼 직접적이고 효과적인 규제의 도입을 신중하게 고려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세계적인 금융공조를 강화하는 방안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금융감독 차원의 국제공조 뿐 아니라 외환위기에 대한 공조에 주목해야 합니다. 서브프라임 사태 이후 한국은행이 적극 진행한 통화스와프는 물론 장기적으로는 아시아 통화위기 이후 검토됐다가 사실상 좌초된 아시아 통화기금 설립 같은 거시적 안전장치 마련의 실효성을 파악해야 하겠습니다.

 

영미 쪽에서 SRI가 상대적 강세를 보인 현상은 역사의 역설입니다. 유럽은 지속가능경영ㆍ사회책임경영의 뿌리가 영미에 비해 깊다고 할 수 있습니다. 미국과 영국에서 주주중심주의가 발전한 반면 유럽은 오래전부터 이해관계자중심주의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영미에 주주중심주의가 정착한 근원은 막스 베버가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분석한 프로테스탄트 윤리로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습니다. 베버는 이 책에서 특정한 종교적 성향이 자본주의적인 이윤추구 동기를 정당화한다고 설명했습니다. 특정한 종교적 성향은 프로테스탄트입니다. SRI의 원조로 꼽히는 존 웨슬리 목사가 세운 감리교도 여기에 포함됩니다.

반면 유럽 대부분의 전통적인 가톨릭 국가들에서는 이윤추구 또는 노골적 세속화에 상당히 소극적입니다. 전통적으로 가톨릭 교리가 지배하는 지역에서는 하느님을 믿으면서 이윤을 추구하고 돈을 버는 것에 집착하는 태도를 부끄러운 것으로 여겼습니다. 영미 지역에서 돈을 버는 것을 교리에 배치되지 않는다고 본 것과는 반대경향입니다. 역사에서 보듯 자본주의에 대한 종교적 정당화의 차이는 두 지역 간 자본주의 발전 속도에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돈 버는 일이 종교적인 신념과 일치한다는 사회 분위기가 형성됐기에 역설적으로 윤리투자라는 개념이 영미에서 먼저 생겨났을 수 있습니다. 간단히 말해 돈놀이가 사회적으로 익숙해지면서 돈놀이의 폐해가 점차 늘어났을 것이고, 그에 따른 반성이 나왔다는 이야기입니다. 참치잡이가 발달하지 않았다면 돌고래의 ‘부수적 피해’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고, 따라서 참치 불매운동 및 ‘돌고래 보호’ 라벨링이 없었을 것이란 가정과 마찬가지 논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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