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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돈’과 ‘차가운 돈’, ESG

 

이제 한 경제권 안으로 들어와 봅시다. 그전에 SRI의 간단한 역사를 살펴볼까요. 감리교 창시자인 존 웨슬리 목사는 SRI역사에서 꼭 거론됩니다. 웨슬리 목사는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도 등장합니다.

웨슬리 목사는 1760년 ‘돈의 사용법(The use of money)’이라는 설교에서 SRI의 가장 기본적인 형태를 제시합니다.

“우리의 고귀한 생명이나 건강 혹은 정신을 해치는 방법을 통해 돈을 얻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떠한 사악한 거래 행위에 참여하거나 그것을 계속해서는 안 된다. 사악한 거래에는 하나님의 원칙이나 국가의 법에 위반되는 모든 방법이 포함된다. … 또한 이웃의 재산이나, 이웃의 신체 … 그들의 영혼을 해쳐서도 안 되는 것이다.”(<사회책임투자 세계적 혁명> 홍성사)

고전적인 SRI의 정의입니다. 자본주의가 막 태동하던 산업혁명기에 내려진 최초의 SRI에 관한 해석입니다. SRI에 관한 최초의 정의는 다분히 종교적이었고, 그런 종교적인 전통을 이어받은 세계 최초의 사회책임 뮤추얼펀드 ‘파이어니어 펀드(Pioneer Fund)’가 1928년에 출현합니다. 이 펀드는 주류 및 담배회사에 대한 모든 투자를 금지했으나 그나지 큰 족적을 남기지는 못했습니다.

1971년에 이르러서야 현대적 의미에서 최초의 사회책임투자 뮤추얼펀드라고 할 수 있는 ‘팍스 월드 펀드’가 성립됩니다. 주로 베트남전에서 돈을 버는 기업들을 투자대상에서 배제하는 ‘반전 펀드’라는 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 SRI 펀드의 선구자들이죠. SRI는 사회적으로 책임 있게 투자하는 행위이고, SRI 펀드는 사회적으로 책임 있게 투자하기 위해 모은 돈입니다. “수익률이 같다면, 혹은 수익률이 낮더라도 지속가능경영이나 사회책임경영이 이뤄지는 기업에 투자해 주세요”라는 펀드가입자들의 요청이 있어야 하겠지요. 반대로 그런 조건을 내걸고 펀드가입자들을 모을 수도 있겠습니다.

다시 정리하면 투자할 때 기준은 수익률인데 SRI에서는, ‘and’인지 ‘or’인지 달라질 수 있지만 수익률 외에 다른 요소들을 고려합니다. 한마디로 다른 요소는 투자대상 기업이 사회책임을 제대로 이행하는 기업인가 하는 점입니다.

그러면 투자대상을 어떻게 고를까요. SRI에서는 익숙한 용어로 빌면 재무성과와 비재무성과를 같이 봅니다. 그래서 SRI는 흔히 ‘투 트랙 어프로치(two track approach) 방식을 채택하게 됩니다. 투자대상을 고르는 과정을 스크리닝(screening)이라고 하는데, 정리하면 ‘SRI의 스크리닝은 ‘투 트랙 어프로치’로 재무성과와 비재무성과를 함께 검토한다’입니다.

금융당국으로부터 가끔씩 영업정지를 당하는 저축은행 같은 곳에서는 투자대상을 어떻게 선정할까요. 나름대로 원칙이 있었겠지만 비재무 성과에는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은 장담할 수 있습니다. ‘투 트랙 어프로치’가 아닌 ‘원 트랙 어프로치’입니다. ‘원 트랙’에 있어 스크리닝의 유일한 기준은 수익률입니다. 영업정지는 이 원칙마저 지키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니다.

SRI에서는 ‘배제’라는 기법을 많이 씁니다. 웨슬리 목사도 무엇 무엇을 하지말라고 했습니다. 가장 오래된 SRI 기법은 배제입니다.

스크리닝을 거쳐 배제가 확정되는 투자대상은 흔히 말하는 이른 바 ‘죄악의 주식(sin stock)’입니다. 술ㆍ담배ㆍ매춘ㆍ도박 등과 관련된 산업이 대표적입니다. 여기에 해당하는 기업의 주식은 사지 말라는 게, 즉 ‘죄악의 주식’을 배제하는 행위가 SRI의 한 가지 모습입니다. 투자하지 않는 것도 투자인 것이지요.

‘투 트랙’에서는 재무성과와 비재무적인 성과를 동시에 감안하는데, 무엇을 먼저 고려할지 그 순서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 먼저 재무성과가 우수한 기업들을 선정한 다음 그 가운데서 비재무성과도 좋은 곳을 고르는 방법과 역으로 하는 방법이 있겠습니다. 어쨌든 ‘결승전(tie breaker)’이 열리게 되고 거기서 최종 투자대상기업이 결정됩니다.

스크리닝에는 네거티브(negative)와 포지티브(positive) 방식이 있습니다. 네거티브 방식은 간단히 말해 네거티브(배제기업) 리스트를 만드는 겁니다. “매춘ㆍ담배ㆍ술ㆍ도박은 안 된다!”

반대로 포지티브는 쉽게 짐작할 수 있듯이 좋은 것을 골라내는 방법입니다.

네거티브 시스템, 포지티브 시스템은 SRI에서 뿐 아니라 관세체계 등 여기저기서 다 적용됩니다. 우수개소리로 군대에서 얼 차례를 줄 때는 네거티브 시스템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일부 열외를 빼고는 모두에게 제재를 가하는 것이지요. 군대와 달리 집단의식이 덜한 일반 사회에서는 아마도 잘못한 사람만 골라서 벌을 주게 되겠지요.

한 가지 유의사항은 배제하든 선택하든 SRI에서 투자대상을 고르는 기준이 웨슬리 목사가 있을 때와는 약간 달라졌다는 점입니다. 1999년 미국에서 시작된 다우존스 지속가능경영지수(DJSI, Dow Jones Sustainability Indexes)라는 우량기업 주가지수가 있습니다. 지속가능경영이란 말에서 짐작하듯 지속가능 기업을 선정해 지수에 편입하게 됩니다. 한국기업들 가운데는 포스코 등 몇몇 회사들이 포함돼 있습니다. DJSI에는 특이하게도 주류회사와 담배회사가 들어있습니다.

물론 DJSI는 SRI가 아닙니다. SRI의 참고자료이기도 하지만 지속가능경영 수준이 높은 기업들을 모아놓았다는 측면에서 보면 SRI와 전혀 상관없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본격적인 SRI 지수로는 에이미 도미니란 사람이 만든 ‘도미니 400 사회지수(Domini 400 Social Index)’가 대표적입니다.)

DJSI에는 ‘던 힐’이란 담배로 유명한 BAT가 포함돼 있습니다. ‘죄악의 주식’이 지속가능경영 지수에 포함된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이때 동원되는 이론이 ‘베스트 인 클래스(best-in-class)’입니다. ‘죄악의 주식’ 가운데 그나마 가장 해악이 덜한 기업에 투자한다는 게 ‘베스트 인 클래스’입니다. 일종의 타협책인 셈입니다.

‘죄악의 주식’이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주식이 거래된다는 사실은 해당기업이 불법사업을 펼치고 있지 않다는 이야기입니다. 뭉뚱그려서 전부 내치지 말고 ‘죄악의 주식’ 중 어떤 것들은 SRI의 범주 안으로 끌어들여 ‘상대적으로’ 잘한 기업에 돈이 흘러들어가게 유도하자는 발상입니다.

약간 모순된 행동 같지만 담배회사가 청소년 금연교육 캠페인을 진행하기도 합니다. 아무 것도 안하고 그냥 담배만 팔아서 돈 버는 담배회사보다는 그래도 이런 행동이라도 하는 담배회사가 조금 덜 나쁘다고 볼 수 있겠지요.

거의 동일한 맥락에서 SRI의 기준으로 ESG가 확립됩니다. 환경ㆍ사회ㆍ거버넌스 측면을 살펴보겠다는 발상입니다. ESG 전에는 SEE라는 기준이 있었습니다. SEE의 앞 두 가지는 사회와 환경입니다. 나머지 E는 윤리(Ethics)를 말합니다.

‘윤리’가 ‘거버넌스’로 바뀐 게 생각보다 큰 차이입니다. 윤리경영 대 지속가능경영, 또는 윤리투자 대 사회책임투자(SRI는 줄여서 책임투자(RI)라고도 합니다.)의 대립에서 왜 윤리란 말이 점점 입지를 잃고 있을까요. SRI에서 기본적으로 윤리적인 성격을 제외할 수는 없지만 웨슬리 목사가 주창한 윤리에 전적으로 의존할 수만은 없는 게 현실입니다. 대표족인 게 ‘베스트 인 클래스’라는 투자이지요.

SEE를 기준으로 한 스크리닝에서는 ‘베스트 인 클래스’가 살아남을 수 없었겠지요. 윤리적 배제가 아닌 거버넌스에 의한 선택이 이뤄지기에 BAT 같은 회사가 DJSI에 포함될 수 있는 것입니다.

윤리(倫理)라는 말에서 윤(倫)자는 ‘사람 인(人) 변’에 바퀴와 거의 같은 의미인 륜(侖)이 합쳐져 생성된 글자입니다. 윤리라는 것은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만들어지는, 또는 세상사를 돌리는 어떤 규범이라고 해석될 수 있습니다. 사람들 사이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보니 사람들 간의 상호작용으로부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들 사이에서 만들어진 규범을 특정 인간이 주체적으로 지키기로 결단하는 게 윤리적인 행위라고 파악되겠지요.

물론 이론(異論)이 없지는 않겠지만 윤리투자에서는 경영자 혹은 투자를 책임진 사람의 윤리적인 판단에 호소하는 경향이 드러납니다. 개인적 또는 실존적 결단이 우선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때문에 종교하고 비슷할 수밖에 없고, SRI 초기에는 감리교회가 제시하는 종교적인 신념이 투자원칙으로 작동하게 됩니다.

그런 투자원칙은 종교를 같이 하는 사람들에게는 어떤 식으로든 통용될 수 있겠지만, 국가ㆍ종교를 넘어서 보편적인 투자윤리를 풀어내기는 용이하지 않습니다. 윤리라는 말 자체가 갖고 있는 모호성인 셈이지요. 윤리를 투자지표로 구체화하는 데에도 한계가 있습니다.

또 최고경영자ㆍ투자결정책임자 등의 능력과 도덕적 자질이 우선시되기 때문에 부득불 ‘개인’으로 환원되는 측면이 있습니다. 조직이나 시스템이 아닌 개인에 의존하는 윤리투자는 지속성을 담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런 연유로 윤리란 말이 투자기준에서 사라졌습니다.

결국 환경ㆍ사회성과가 뛰어나면서 좋은 거버넌스를 갖고 있는 기업에 투자하자는 쪽으로 논의가 수렴돼 SEE가 ESG로 전환됩니다.

 

안치용 / 발행인  dragon@sjournal.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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