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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핀 세이프 마크

미국 소비자들에게 선택할 수 있는 정보가 주어진 것입니다. 돌고래에게 위해를 가하는 저렴한 멕시코산 참치통조림을 사거나, 조금 돈을 더 주고 돌고래 보호 인증마크가 붙은 미국산 통조림을 사거나, 두 가지 중에서 구매결정을 내릴 수 있게 했습니다.

참치분쟁은 어떤 시사점을 던져줄까요. 외부효과를 이야기하면서 앞서 거론한 피혁공장이 처한 틀이 국가경제 차원에서만 작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자본주의 발전의 초기 단계에서 국가들은 시장을 국가규모로 통합하고 육성하기 위한 공통적인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국부에 집착한 중상주의 국가발전 전략은 시장의 외연을 확대하는 것입니다. 엄밀한 의미의 중상주의는 사라졌지만 중상주의 태도와 관점은 여전히 명맥을 유지하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19세기말~20세기 초의 제국주의는 중상주의적인 시장 확장의 극단적인 예입니다. 시장이 세계적 규모로 확대된다는 측면에서는 지금의 세계화와 동일합니다.

지금의 세계화가 미국적 가치를 은밀하게 조장하는 가운데 명목상, 또한 어느 정도는 세계 수준으로 통합된 시장을 지향하는 반면 제국주의는 특정 국가의 지도 아래 통합된 시장을 세계 수준으로 확장할 것을 기도한다는 데 차이가 있습니다. 제국주의에서는 시장과 국가의 범위가 일치합니다. 세계화에서는 시장이 국가들을 초월하게 됩니다.

기업의 사회책임(CSR)이라고 하는 것도 시장의 범위와 관련될 수밖에 없습니다. 피혁제품은 금강에서 만든 제품과 낙동강에서 만든 제품이 같은 시장에서 경쟁하기 때문에 어느 한쪽에만 사회책임 비용(현재 시점에선 ‘비용’ 개념으로 인식돼 있는 게 사실입니다)을 물리는 데는 무리가 따릅니다. 미국과 멕시코 사이를 흐르는 강인 리오 그란데가 두 나라의 영토를 나누지만 참치통조림 시장을 나누지는 못합니다. 미국 제품과 멕시코 제품이 같은 시장에서 경쟁하게 됩니다. 예시의 미국 참치잡이 회사들이 혼자서 사회책임을 이행한다고 해서 명성을 얻을지 모르지만 명성이 쌓이기 전에 망하고 말 것입니다. 멕시코에서 CSR에 동참하지 않는다면 말입니다.

사회책임과 관련된 핵심 현안 가운데 세계화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세계화는 자본과 노동의 국경을 넘어선 자유로운 이동을 말합니다. 역사상 여러 차례 세계화가 존재했지만 지금의 세계화가 제일 강력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자본ㆍ노동에 더해 무역을 거론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자유무역으로 인한 교역량의 확대는 물론 유례 없는 것이지만, 자본과 노동의 이동만큼 눈부시지는 않습니다. 특히 자본의 세계화는 경이로울 정도입니다. 경이의 결과로서 세계인은 서브프라임사태를 목도합니다. 세계적인 규모로 작동하는 단일시장과 작은 정부. 서브프라임사태를 통해 우리는 단일시장의 위력을 실감했습니다. 단일시장은 CSR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세계화와 디지털화 혹은 디지털 경제. 이 두 가지가 결합돼 만들어진 세상은 여러모로 위력적이고 파괴적이지만 사회책임경영과 지속가능경영을 어렵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세계화의 가장 특징적인 현상은 하나의 시장인데, 여기에 양과 속도 면에서 상상을 초월하는 정보이동능력이 결부돼 전혀 새로운 거래를 가능케 합니다. 인터넷쇼핑이 대표적입니다. 금강과 낙동강을 직접 방문하지 않고도 물건을 살 수 있는 것은 물론 클릭하면 실시간으로 상품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경쟁은 금강과 낙동강 사이에서 뿐 아니라 언제든지 메콩강과 양쯔강까지로 확대될 수 있습니다.

이때 제공되는 정보는 대체로 ‘시장적인’ 것입니다. 사회적기업 ‘참 신나는 옷’ 같은 곳에서 근로기준법을 준수하고 정규직을 고용하며 만든 정직한 옷인지, 중국 동부 해안의 스웨트샵(sweatshop, 노동착취공장)에서 비인간적 노동 끝에 만들어진 사악한 옷인지 알 도리가 없습니다. 시장이 세계규모로 커졌고 디지털화로 정보가 실시간으로 공유되고 있는 세상에서 누군가 혼자 ‘공정가격’을 주장한다면 버텨낼 수 없습니다.

사회적기업을 하는 분들이 자주 하는 말이 ‘공정가격’입니다. ‘공정가격’의 전제는 ‘공정한 시장’입니다. 공정하지 못한 시장에서 혼자 공정가격을 운위한다며 허무한 외침으로 그치고 말 것입니다.

전부원가회계(full cost accounting)를 하자고도 합니다. 전부원가는 앞서 언급한, 외부에 이전한 비용을 내부화하자는 말과 같은 얘기입니다. 비용의 외부화에 대한 대안이 전부원가회계입니다. 돌고래를 살리는 비용까지 포함한 참치통조림 가격이 참치통조림의 공정가격입니다. 라벨링이라는 비시장적인 또는 정치적이고 부분적인 대안이 없었다면 미국 참치잡이 회사들은 모두 망했을 것입니다. 상품 정보 외에 공정(工程)정보까지 포함해 말하자면 전부원가회계를 수행했음을 보여줄 수 있어야만 그나마 활로를 모색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즉 누군가 혼자 사회책임경영이나 지속가능경영을 시도한다면, 20세기 초반 영국의 존 루이스처럼 많은 유산을 물려받아서 자기 돈 펑펑 쓰며 좋은 일 한번 하겠다고 결심한 것이 아닌 한 회사를 위기에 처하게 만들고 맙니다. (반면 디지털화한 정보유통체계는 나이키 사례에서 보았듯 사회책임을 강제하는 압력으로 기능할 수 있고, 또 ‘공정(工程)’ 자체에 관한 정보를 보급시켜 ‘공정(公正)시장’을 앞당겨 ‘공정(公正)가격’을 가능케 할 잠재력을 갖고 있습니다. 디지털 세상의 정보 권력을 누가 쥐느냐가 어느 시점에는 사활적 현안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이 문제에 대한 해법은 그래서 시장 차원에서 모색돼야 한다고 합니다. 시장이 세계화한 요즘엔 세계적인 해법을 추구해야 하겠지요. 전부원가회계의 대표적인 게 환경비용을 계상케 한 교토의정서입니다. 큰 성과를 내지는 못했지만 2010년 코펜하겐에서 열린 유엔 기후변화 당사국총회도 같은 맥락에 위치해 있습니다.

2010년 11월 발표된 사회책임에 관한 국제 가이드라인(ISO26000) 또한 새로운 시장규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회책임을 경영 시스템을 정리했다는 데 의의가 있을 뿐 아니라 세계 각국이 ISO26000을 사실상 경영에 관한 하나의 표준으로 인정했다는 데 더 큰 의의가 있습니다. 나아가 기업 뿐 아니라 다른 유형의 조직들에게도 사회책임을 촉구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노동조합의 사회책임, 또는 대학의 사회책임 등이 거론되는 배경에는 전적이라고 할 수 없지만 ISO26000정신이 자리했다고 봐야 합니다.

교토의정서와 ISO26000은 지구촌 차원에서 스스로 자정을 결의했다는 측면에서 매우 획기적인 사건입니다. 지구를 못 살게 굴고, 또 인간끼리 서로 못 살게 굴다가 착해지자고 다수가 합의한 기적적인 사건입니다. 물론 교토의정서에서 미국이 탈퇴했듯 말은 말에 불과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종류의 관계에서는 말하지 않은 말보다 발설한 말이 더 의미를 갖게 됩니다. ‘고백’의 의미를 넘어서 두 가지 사건은 세계시민의 가능성을 새삼 일깨우고 세계사적 가능성을 제시한다고 가치를 부여할 수도 있습니다. 흥분해서 너무 과도한 기대를 품고 있는 것일까요. 그렇지만 지금 이 시점에, 인식론에 의해서가 아니라 존재론에 내몰려 이미 세계시민이 된 기업시민을 비롯해 각양각색의 지구촌 세계시민들이 각성하고 단결하는 것 말고, 지구온난화 등 인류 공통의 위기에 대처하는 데 다른 어떤 해법을 기대할 수 있을까요.

더러 비판론이 제기되고 있지만 유엔차원에서 가동중인 글로벌 콤팩트라는 조직 또한 같은 지향점을 갖고 있습니다. 기업의 유엔 글로벌 콤팩트 활동을 ‘그린 워싱’과 비슷한 개념의 ‘사회책임 분식’으로 폄훼하는 이들이 존재합니다. 한마디로 글로벌 콤팩트가 너무 느슨한 기준을 적용해 ‘착한 세계시민’ 자격증을 준다는 불만입니다. 아직 범죄자인데 섣불리 사면한 것은 물론이고 게다가 선거권까지 부여했다고 역정을 낸다는 비유로 이해할 수 있겠지요.

논란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콤팩트의 역할이 전혀 무의미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지구 온난화라는 지구 차원의 위험이 상존하고 세계적 규모의 거대 시장이라는 괴물이 등장했기에 인류문명은 그에 맞춰 세계적 규모의 대처를 모색할 수밖에 없습니다. 세계시민 정신에 입각했다면 누구와도 힘을 합쳐야 할 때입니다. 지금으로선 말입니다.

 

안치용 / 발행인  dragon@sjournal.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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