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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치에는 애국심이 없다 (3)

멕시코 영해 내에서 조업하는 멕시코 배들은 응당 멕스코법을 준수하겠지만 미국법을 지킬 의무는 없습니다. 따라서 미국 참치잡이 회사들이 사회책임 기업으로 변신해 돌고래를 지키는 어로법을 사용하는 동안 멕시코 어선들은 종전과 같은 방식, 즉 돌고래에게 ‘부수적 피해’를 입히는 방식으로 참치를 잡습니다. 멕시코 영해 안에서 돌고래들이 더 많이 죽어나가는 게 당연한 것처럼 미국에 비해 멕시코쪽 어로비용이 상대적으로 낮아지는 것 또한 당연합니다. 멕시코산 참치통조림이 미국산 참치통조림보다 더 싸질 수밖에 없습니다. 참치통조림처럼 가공과정에 특별한 기술차이가 없는 업종에서 원재료를 조달하는 가격을 낮춘다면 확고한 경쟁우위에 설 수 있게 됩니다.

여기서 또 하나의 불일치가 고려요인이 됩니다. 미국과 멕시코가 사실상 하나의 시장이나 다름없다는 점입니다. 바다 밑에 국경이 없지만 바다 위에 국경이 존재하는 것처럼, 참치에는 국적이 없지만 참치통조림에는 국적이 존재합니다. 시장은 또 다른 영토를 갖습니다. 자본의 영토는 참치가 헤엄치는 바다 밑과 마찬가지로 국경을 넘어섭니다.

간단히 말해 미국 시장에서 소비자들은 미국산 참치통조림에 비해 값이 싼 멕시코산 참치통조림을 자유롭게 살 수 있습니다. 자본은 국가와 민족에 구애받지 않는 자유로운 존재임을 다시 한번 실감할 수 있습니다. 통조림 안에 담긴 참치에 사실상 품질차이는 없는데 하나는 싸고 하나는 비싸면 어느 것을 사겠습니까. 너무나 당연합니다.

생태계 보호라는 사회책임을 이행하려다가 미국 참치잡이 회사들이 모두 망할 상황에 처하자 미국 정부는 또 골머리를 썩게 됩니다. 미국 산업을 보호하고 육성하는 일은 어린이들의 마음을 달래는 것 못지않게 중요합니다.

미국은 1990년 8월 멕시코산 참치통조림의 수입을 금지시켰습니다. 멕시코라고 가만히 있을 리는 없지요. 무역분쟁이 불붙었습니다. 멕시코는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라는 국제기구에 “미국의 수입금지 조치가 부당하다”며 제소했습니다. 그런데 이때 GATT의 판결은 보통 사람들의 예상과 다른 것이었습니다. 미국이 아닌 멕시코의 손을 들어주게 됩니다. GATT와 쌍을 이룬 WTO(세계무역기구) 체제에서는 무역장벽을 최대한 낮추고 이른 바 자유무역을 확대하려고 노력합니다. GATT는 영화(스크린쿼터) 등 예외로 인정되는 상품을 빼고는 동종상품(like product)에 있어 외국산 차별을 금지합니다. 미국산 참치통조림과 멕시코산 참치통조림을 동종으로 본 것이지요.

이때 제조공정방법(PPMs ; Process & Production Methods)이라는 용어에 유의해야 합니다. 결과물로서 상품 뿐 아니라 상품을 생산하거나 제조하는 과정에 주목한 말입니다. 특정 상품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거론하기 위해 이 용어를 쓰기도 합니다.

참치통조림과 관련해서는 공정상 돌고래의 ‘부수적 피해’가 일어났는데, 이것을 동종상품으로 판정하는 데 고려요인으로 봐야 하는가 아닌가에 관한 문제입니다. 자유무역을 지지하는 입장에서는 PPMs를 엄격하고 협소하게 해석할 수밖에 없습니다. 멕시코산 참치통조림에 독극물이 들었다든지 하는, 제품과 직접 관련된 하자라면 당연히 수입이 금지되겠지요. 사실 참치통조림만 놓고 보면 먹거나 유통시키는 데 전혀 문제가 없기는 합니다. 나중에도 언급하겠지만 GATT의 결정은 멕시코산 제품의 환경비용을 계상하지 않았다는 측면에서 전부원가회계(full cost accounting) 원칙에서 벗어나 있습니다. GATT와 전부원가회계는 애초에 상충하는 사이입니다.

 

그럼 이제 미국정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미국 참치통조림시장을 멕시코에 내어주고, 참치잡이 어업의 괴멸을 수수방관할 수밖에 없는 것일까요.

이때 등장한 해법이 시장의 정치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환경경제학에서 제시하는 라벨링(labelling)은 경제적 행위가 아니라 정치적 행위로 해석돼야 합니다. 자체 경쟁력만으로 시장에서 평가받아야 할 상품에 구호를 덧씌운 것입니다. 상품구매가 경제적 효용 뿐 아니라 효용 외적인 동기에 의해서도 이뤄지도록 유도하는 게 라벨링입니다.

멕시코산 수입을 막거나, 미국어선에게 가한 어로방법에 관한 규제를 철회하는 대신 미국 제품에는 특정한 표시를 붙이게 했습니다. 돌고래 죽이지 않은 참치통조림이라는 마크. ‘dolphin safe' 라벨링입니다. 

 

안치용 / 발행인  dragon@sjournal.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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