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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리인 문제,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 (3)

 

주주행동주의 또는 소액주주운동 등에서 대리인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 많이 노력했습니다. 삼성전자 등의 주주총회에 주주 자격으로 참여해 CEO가 왜 주인인 주주들의 이익이 아닌 이건희 회장의 이익에 복무하느냐고 따졌습니다. 또는 같은 논리 틀로 실질적인 최고경영자이자 대리인인 정몽구 회장이 왜 전체 주주들의 이익을 우선하지 않고 자신의 이익에 매몰돼 있느냐고 추궁했습니다.

소액주주운동은 분명 의미 있는 흐름이지만 약간의 딜레마가 존재합니다. 즉 기업의 주인이 주주라는 대전제하에서 재벌총수들의 전횡을 야단쳤는데, 기업의 주인 범위를 확장하면 야단칠 때 약간 힘이 달리게 됩니다. 회사가 주인인 다수 주주의 이익에 복무해야 한다는 주주중심주의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이윤추구라는 밀턴 프리드먼의 사상과 이웃합니다. 한국 재벌들이 그런 신자유주의적인 질서의 최소한마저 존중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동안 그것이라도 지키라고 목소리를 높인 것인데, 지속가능경영의 대두와 함께 주주중심주의는 떠내려갈 상황에 처했습니다.

이해관계자 중심주의에서 주주는 중요한 이해관계자이긴 하지만 여러 이해관계자들 중 하나로 위상이 내려갑니다. 주주행동주의 NGO에겐 대리인 문제의 전선이 흐릿해지는 또는 복잡해지는 새로운 국면이 찾아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한 문제가 채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새로운 문제가 중첩돼 버린 것이지요.

재벌 기업들 입장에서는 주주행동주의 NGO들의 예봉을 피할 그럴듯한 명분을 이해관계자경영에서 발견합니다. 대리인들에게 부여된 기본적인 의무에 배치되는 행동을 일삼다가 갑자기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주주 뿐 아니라 다른 많은 이해관계자들을 아울러야 한다는 논리를 펴며 소액주주운동의 비판을 우회할 수도 있습니다.

예컨대 소비자에 대해서 옛날에도 핵심적인 고려대상이었지만 이제는 ‘대상화’ 틀을 버리고 기업의 본질가치를 구성한다는 관점을 갖게 됩니다. (물론 내용상 달라진 게 하나도 없는데 수사만 화려해지기도 합니다.) 나아가 기업 경영의 패러다임이 ‘주주 대 대리인’에서 주주를 비롯해 노동자ㆍ언론ㆍ정부ㆍ지역사회ㆍ납품업자 등 이해관계자 관리, 더 정확하게는 이해관계자관계로 바뀌게 되면서 이런 문제가 발생하게 되었죠.

기존 주주행동주의자들은 나름대로 진취성을 갖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기업의 대리인이 행하는 전횡에 맞서서 기업의 주인인 주주의 이익을 옹호하는 것이 경제정의를 실현하는 데 합치한다고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틀이 깨지면서 위상조정이 불가피해졌습니다. 기업이 주주의 이익만을 대변하지 않는다는 논리에 대응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앞서 언급한 트리플 버틈라인(TBL)의 관점과도 일치합니다.

주주이익의 대변과, 기업의 가장 큰 사회적 책임은 이윤추구라는 견해는 트리플 버틈 라인 가운데서 한 가지 버틈 라인만 보는 입장과 연결됩니다. 한 가지 버틈 라인만을 보겠다는 생각은 기업이 만들어내는 외부효과를 종전대로 그냥 외부에다 내팽개쳐 두겠다는 것입니다. 앞서 살펴본 피혁공장과 어촌의 사례에서 피혁공장은 본래의 경제활동을 열심히 하는 과정에서 외부효과를 야기했습니다. 어획량 감소와 주민 건강 악화 등이 외부효과의 구체적 모습입니다. 환경규제가 강해지기 전까지 외부효과에 대해 피혁공장에서 책임을 지지 않았습니다. 외부효과는 외부에 머물게 하라는 게 기존 입장이었어요.

이제 환경이 달라졌습니다. 외부효과를 외부에 둬서는 안 되고, 외부효과를 내부로 끌어와야 하는데, 그 때 발생하는 (그동안 사회가 부담한) 비용을 내부화해야 한다는 패러다임의 전환이 지속가능경영입니다. 사회적 비용의 내부화입니다. 물론 여기서 사회적 비용의 의미는 원래 기업에 속한 비용이었으나 기업이 부당하게 사회에 이전해 어쩔 수 없이 사회가 감당한 비용을 말합니다.

사회적 비용을 내부화하는 구체적 방법은 트리플 버틈라인에서 찾아내야 합니다.

TBL 관점에서 환경 성과를 측정한다고 칩시다. 예시의 피혁공장은 당장 화학약품사용을 줄여야 하겠지요. 새로운 비용이 발생하고, (경제적) 이익이 줄어듭니다. 내친 김에 소비자 안전(앞서 살펴본 GRI에서는 사회부문의 주제입니다.)에도 신경을 써서 가죽제품의 안전성을 높이기 위해서 납품하기 전에 제품에 묻어있는 화학제품을 털어내는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또 돈이 들게 됩니다.

“또 돈이 듭니다”는 표현은 사실 TBL 관점이 아니라, 경제적 버틈 라인만을 적용한 관점입니다. TBL 관점에서 투입된 돈이 꼭 비용으로 계상되는 것만은 아닙니다. 명성을 높여 충성도 높은 고객집단을 확보한다든지, 우발적 리스크에 대비한다는 식의 설명은 기존 틀에서도 가능합니다. 명성을 높이는 기회가 타이레놀 사례처럼 극단적인 상황에서만 발견되지는 않습니다. 미드 <하우스>의 주인공 하우스 같은 명의(名醫)가 어쩌다 어촌에서 환자를 진료하다가 화학약품 중독 피해자를 찾아냈는데, 피혁공장이 범인임을 극적으로 밝혀내는 ‘극적인’ 리스크도 개연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명성제고와 우발적 리스크에 대비한다는 진중한 경영전략이 모든 기업에게 통용될 리 없습니다. 기업의 경영자들이 고상한 생각만 하고 살 수 있겠습니까. 기존 틀이란 단서를 달았듯 여전히 TBL에 입각한 패러다임 전환은 아닙니다.

결국은 단기적으로는 ‘제로-섬’의 논리로 돌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사회적 비용의 내부화는 부득불 일부 이익의 외부화와 결부되게 됩니다. 그러나 분명히 할 전제는 그 이익은 기업이 자신이 부담해야 할 비용을 외부로 돌리고(외부효과) 부당하게 얻은 이익을 도로 내놓은 것입니다. 혼자 이렇게 하라고 하면 아무도 하지 않겠지요. ‘사회적 비용’의 내부화와 부당한 이익의 외부화는 지속가능경영의 대전제입니다. 따라서 어느 한두 명의 윤리적인 경영자의 출현으로 지속가능경영의 도래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사회전반의 패러다임 전환 속에서 검토돼야 헙니다. 그렇다고 개별 기업이 넋 놓고 있어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성경에 이르듯 도둑 같이 주인이 돌아왔을 때를 대비해야 합니다.

TBL관점의 확산은 사회적 비용을 내부화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수익원을 발굴케 해줍니다. 대표적인 게 탄소배출권입니다. 외부에다 전가한 온실가스를 이제 기업들이 책임지게 되면서 역으로 온실가스 감축으로 배출권 수입이란 새로운 사업기회를 맞게 됩니다. 탄소배출권처럼 확연하게 사업기회가 창출되지는 않겠지만, 또 모르는 사이에 엄청나게 많은 기회가 기업들에게 다가올 것입니다. 리스크(risk)는 기회(opportunity)를 동반합니다. 위기(危機)라는 말은 위험과 기회를 함께 담고 있음을 늘 잊지 말아야 합니다.

국가와 다국적기업을 망라한 100대 경제권(economy) 가운데 다국적기업은 50개 정도 포함됩니다. 삼성전자가 갖는 경제력 순위는 약 40위로 세계 웬만한 정부를 압도합니다. 과거에는 국가권력과 자본이 단일대오를 형성했습니다. 기업이 만든 외부효과를 정부가 상당부분 용인해, 일부는 제거하고 일부는 밖으로 여과 없이 흘렸습니다. 내부자원을 충분히 쌓지 못한 상태에서 외부효과를 ‘내부화’했을 때 대부분의 기업이 성장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습니다. 무너지는 기업도 속출하게 됩니다. 각국 정부는 뿌리 깊은 중상주의 전통에 따라 자국 기업들을 뒷바라지했습니다.

앨런 그린스펀이 ‘그린스펀 풋’으로 주가를 부양했듯 우리나라에서는 말하자면 ‘박정희 풋’ 같은 게 있어서 대기업이 형성될 수 있었습니다. 외부효과 또한 ‘박정희 풋’의 한 항목이라 할 만합니다. 수입규제, 노동운동 탄압, 저임금 기조 유지, 공권력 동원 등이 총체적으로 ‘박정희 풋’으로 작동하면서 다양한 외부효과를 만들어냅니다. 기업의 부담을 크게 덜어줬고 마음을 홀가분하게 해줬습니다. 이제 그렇게 성장한 삼성ㆍ현대가 세계적 규모의 다국적기업으로 성장했습니다. 한국의 기업이라고 하기엔 전라도 말로 좀 ‘거시기’해졌습니다.

지금은 다국적기업 등 거대기업들은 스스로 외부 효과를 감당할 역량을 갖췄습니다. 기업이 감당해야 할 비용을 여전히 사회에다 전가하는 행태의 본질적 이유는 더 많은 이윤을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탐욕 때문인 것이지요. 사실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할 때 그 사회책임(SR)은 기업이 본래 감당해야 할 책임입니다. 역량이 충분한 거대기업들이 사회책임을 외면한다면 부도덕한 탐욕을 부리고 있다는 비난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당위와 타이밍 사이에서 줄타기하다가 미망 속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하지만 삼성ㆍLG와 달리 중소기업들은 외부효과를 100% ‘내부화’하기에는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예상됩니다. 결과적으로 고용보조금이 되든, 무엇이 되든 장기적인 연착륙을 유도하며 국가 차원의 지원이 이루어져야 하겠습니다. 어떤 형태가 됐든 사회책임을 촉진할 공동의 플랫폼이 조성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안치용 / 발행인  dragon@sjournal.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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