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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리인 문제,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 (2)

 

견제, 감독, 투명성, 독립성, 공정성, 주인, 거버넌스 같은 단어가 경제계나 사회 저변에서 자주 거론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대리인 문제 때문입니다. 대리하는 사람이 대리인인데 제대로 대리하지 않을 때 대리인 문제가 생깁니다.

지금 논의하는 대리인은 회사의 대리인인 CEO입니다. 주주들이 자신들을 대리해서 회사를 경영할 대리인을 세우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전문경영인이란 용어에 비추어 경영의 전문성을 기대하고 대리인을 내세운다고 해도 틀린 답은 아니겠지만, 본질적인 이유는 전문성보다는 효율성입니다. 항상 주주들이 다 모여서 의사를 결정한다면 회사 자체가 돌아가지 않겠지요. 그래서 주주들 의사를 결집해 CEO에게 회사경영을 맡기고 정기적으로 확인을 받도록 한 것이지요.

여기서 핵심은 대리인이 주주들의 이익에 복무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동안 쭉 문제가 되었던 것은 대리인(CEO)들이 종종 주주이익을 대변하기보다는 대리인 자신의 이익을 추구했기 때문입니다. 미국에서 CEO의 대리인 문제와 관련해 빈번하게 거론된 사안은 스톡옵션입니다. 앞서 살펴본 스톡옵션의 비용처리만 문제가 되는 게 아닙니다. 스톡옵션과 관련되어 더 본질적인 문제는 대리인 문제입니다.

스톡옵션은 돈 없는 벤처기업이 유능한 인재를 유치하기 위한 수단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상은 CEO에 대한 편의적이고 편법적인 보상수단으로 활용되는 사례가 더 일반적입니다. 특히 미국이 그렇습니다. 주식시장에 공개된, 즉 상장된 기업의 주주들은 앞서 설명한 대로 배당수익과 주가상승에 따른 시세차익을 누릴 수 있습니다. 확정된 수익을 원하는 투자자들은 주식보다는 회사채를 더 좋아합니다. 한 마디로 믿을 만한 곳에다 미리 이자를 정해두고 돈놀이를 하는 것입니다. 회사가 망하지 않는 한 원금이 보장되고 이자까지 챙길 수 있습니다. 망할 확률에 따라 이자수준이 달라집니다.

주식을 보유한 사람은 이자를 못 받습니다. 이자 비슷한 게 배당금입니다. 그러나 배당을 받으려면 회사가 이익을 내야하고, 또 이익이 났더라도 회사에서 배당을 결정해야 합니다. 채권을 보유했을 때처럼 무조건 사전에 약정한 이자를 받을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그럼에도 주식은 매력적입니다. 주가 상승에 따른 시세차익이라는 한방이 있기 때문이죠.

스톡옵션에도 이런 한방심리가 어느 정도 반영됐다고 볼 수 있습니다. 주주들의 이익과 CEO 등 경영진의 이익을 같은 방향으로 정렬시켜 놓으면 경영진도 주주가 되기 때문에 주주이익이 극대화한다는 발상입니다. 시쳇말로 “우리가 남이가”하는 생각이지요. 스톡옵션을 받은 CEO는 스톡옵션이란 인센티브(곧 바로 주식을 주는 게 아니라 주식을 미리 설정한 가격에 살 권리를 주는 인센티브)를 실제 수익으로 확정하기 위해 경영에 최선을 다합니다. 경영성과가 좋으면 주가가 올라가기 때문에 스톡옵션은 회사, 주주, 그리고 CEO 등 모두의 이익에 합치하는 제도로 간주됐습니다.

사실 경영진은 스톡옵션이 아니라도 회사의 이익을 최대화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스톡옵션은 불신에서 비롯한 배신을 방지하기 위한 ‘슬픈 장치’일까요, 아니면 좋게 받아들여 주마가편일까요.

일반화하기 어렵지만 둘 다 아니었습니다. 적잖은 사례에서 스톡옵션은 CEO의 배신을 조장했습니다. 대리인 문제를 방지하기는커녕 대리인 문제를 더 악화한 것이지요. 특히 미국 월가 CEO들이 챙긴 천문학적 스톡옵션은 서브프라임 사태 이후 미국인들로부터 분노를 촉발케 했습니다. 2011년 하반기 월가에서 현 체제에 대한 근본적인 저항정신을 노정한 시위가 이어진 데는 스톡옵션을 둘러싼 CEO들의 탐욕도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쳤을 것입니다.

‘코즈의 정리’를 설명하기 위해 든 예시로 돌아가 피혁공장을 자본시장에 공개해 주식을 상장했다고 칩시다. 원래 CEO 노릇을 하던 회사 주인은 적당히 돈을 벌어서 해외로 떠났고 전문경영인이 이제 회사를 경영합니다. 주주들이 마침 전문경영인 CEO에게 스톡옵션을 부여했습니다. 이 CEO는 가죽원단 생산 효율을 높이기 위해 평소보다 훨씬 많은 화학약품을 사용했고, 별다른 여과장치 없이 강물로 그냥 흘려보냈습니다. 많이 듣고 보는 사례이지요. 밤샘작업하면서 몰래 강물에 유해물질 유출시키고, 비가 오면 흘려보내는 행태는 지금도 4대강 주변에서 심심찮게 적발됩니다.

예시의 피혁공장 CEO에게 스톡옵션은 한탕의 동기를 제공했습니다. 스톡옵션을 행사할 때까지 기업실적을 향상시켜 주가를 끌어올린 다음 주식을 팔고 튀자고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화학약품 남용 등 별 나쁜 짓을 다 하면서 주가를 올리고 스톡옵션 행사시점이 되자 미련 없이 현금화해 해외로 이주하고 말았습니다.

다음 CEO가 회사를 맡아 들여다봤더니 이게 엉망인 것이죠. 환경을 오염시키는 수준이 너무 심각해 이 상태로 공장을 가동하다가 당국에 걸리는 날엔 회사 문을 닫을 지경이었던 것이지요. 경영을 정상으로 돌리려고 하자 전임 CEO의 잘못을 바로잡는 과장에서 계속해서 기업실적이 떨어졌고, 더불어 주가가 급락했습니다. 숨겨져 있던 대리인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지요. 문제를 일으킨 대리인이 떠나고 문제를 바로잡으려는 대리인이 흔히 문제를 떠안게 됩니다. 대부분 문제를 바로잡으려고 하기보다는 은폐하려고 애쓰지만, 더 이상 은폐할 수 없을 지경이 되면 문제가 불거져 나옵니다.

언뜻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이 떠오르지만 논리구조가 다릅니다. 주인과 노예의 변증에서는 주인이 더 주인스럽기 위해서는 노예를 더 혹사시켜야 하고 그런 과정을 통해 노예에게 점점 더 많이 의존하는 역설이 발생합니다. 명목상 지배와 내용상 지배가 역전된 것이지요.

주주와 CEO의 관계에서도 이러한 역전은 관철됩니다. 주인(주주)과 노예(대리인, CEO)라는 명목관계가 내용상 반대가 되기 때문입니다. 차이점은 원래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은 노예해방이라는 진취적 전망을 담아내지만 현대 자본주의 주식회사의 변증법은 사악한 묵시록으로 귀결합니다.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에서 일어난(또는 희망한) 것과 같은 명목관계를 포함한 최종적인 역전이 주식회사에서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노예가 주인을 물리친 것과 같은, 대다수 주주들이 한줌 대주주나 CEO에 맞서 권리를 제대로 행사하는 일은 거의 발생하지 않습니다.     

 

안치용 / 발행인  dragon@sjournal.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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