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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리인 문제,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 (1)

 

기업의 거의 대부분은 주식회사입니다. 합자회사, 합명회사 등 다른 유형의 기업형태는 거의 무시해도 좋은 정도로 비중이 미미합니다. 그나마 주식회사가 아닌 형태로 자주 눈에 띄는 기업이 유수 회계법인들입니다. 신입사원으로 입사한 회계사가 경력을 쌓고 실력을 인정받으면 파트너가 됩니다. 파트너란 용어 자체에서 이미 회사경영에 대한 영향력을 짐작케 합니다.

반면 일반적인 회사 형태인 주식회사의 주인인 주주는 ‘회사의 주인’이라고는 하지만 어쩐지 옹색한 느낌입니다. 주주는 돈을 내고 회사의 주인임을 입증하는 서류, 주권을 받은 사람입니다. (물론 실제로 주권을 수령하지는 않습니다.) 자본시장이 활성화하면서 무수히 많은 주주를 만들어내면서 주식회사의 주인은 거의 무한대로 늘어납니다. 만인의 연인은 아무의 연인이 아니듯이 다수가 주인이면 아무도 주인이 아닌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사실 주주의 책임은 주권에 적힌 금액까지입니다. 유한책임을 지는 것입니다. 혜택은 배당을 받거나 주가상승으로 차익을 누리는 것이지만 최대 손실은 회사가 망해서 보유한 주식을 날리는 것까지입니다. 회사가 망했을 때 통상 빚쟁이들이 회사의 설비 같은 걸 파는 등 돈 될만한 것은 모두 매각해서 물린 돈을 회수하기 마련이어서 주주가 갖고 있는 주식은 휴지가 되고 맙니다. 물론 빚잔치하고 남은 게 있으면 주주들이 나눠 갖겠지만, 드문 일이지요. 반면 유한책임인 만큼 잃어봐야 주식 쪼가리입니다. (물론 요즘처럼 빚내서 주식투자를 하도록 제도화한 세상에는 “잃어봐야 주식 쪼가리”라는 말이 씨알도 안 먹히겠지만 말입니다.)

발행주식수가 많은 기업에서는 따라서 소액지분을 보유한 일반인, 소위 ‘개미’는 명목상 주인은 주인이지만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는 처지이며, 생각보다 지분이 크지 않은 대주주가 흔히 기업의 주인행세를 합니다. 만인의 연인에게 재벌이라는 내연녀 또는 내연남이 있었던 것이지요.

어쨌든 회사의 주인은 주주이고, 또한 회사 최고의 권력기관은 주주총회입니다. 주주총회에서 이사를 선임해 이사회가 구성되면 이사들이 주주들의 권한을 상당부분 대행하게 됩니다. 이사들 중에는 회사경영을 (물론 주주들로부터 위임받아) 최종적으로 책임지는 대표이사가 포함됩니다. 대표이사가 미국 영향을 받은 요즘 언론용어로는 최고경영자(CEO)입니다. 회사의 집행간부들을 통솔해 일상적으로 회사를 운영하는 CEO이면서 동시에 이사회의 대표이기도 한 것이지요. 요즘에는 최고경영자(CEO)와 이사회를 분리해 이사회를 총괄하는 별도의 이사회 의장을 두기도 합니다. 사외이사까지 포함한 회사의 이사들은 주주총회의 위임을 받아서 경영상 중요한 현안의 결정에 일상적으로(주주들에 비해서 일상적이란 뜻입니다.) 참여하고, CEO가 회사의 이익을 제대로 대변하고 있는지 감독하는 역할까지 수행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사실 CEO가 이사회 의장을 겸하는 게 적절해 보이지는 않습니다.

우리나라 기업들의 거버넌스에서는 CEO와 관련한 부문이 불모의 영역이나 다름없습니다. 여러 가지 가치와 기능이 통합적으로 체현돼 작동하는 거버넌스에서, 공정성과 투명성은 핵심적인 주제입니다. 족벌적 지배와 제왕적 통치가 만연한 재벌체제의 한계 때문이겠지만 여타 영역에 비해 CEO와 관련해서는 공정성과 투명성이란 가치가 아직 확립돼 있지 않습니다.
재벌기업들에서는 설령 명목상 CEO가 이사회 의장과 분리돼 있다 할지라도 큰 의미를 부여하기 힘들 수 있습니다. 등기이사도 아닌 대주주(재벌총수)가 이사회와 CEO를 절대적으로 지배하는 마당에 명목상 견제하는 구조를 확립했다 한들, 물론 안 한 것보다는 낫겠지만 눈 가리고 아옹 하는 격이지요. 만일 대주주가 진짜 기업의 주인이라면, 법리와 무관하게 시장의 논리로 그럴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백번 양보해서 (법리상으로나 도덕적으로나 절대 그래서는 안 되지만) 개인회사이니 개인이 마음대로 한대서 누가 뭐라고 하겠습니까.

하지만 대주주는 실제 기업의 주인이 아닌 가짜 주인이며, 다수의 진짜 주인들의 동의 없이 주인행세를 하고 있을 뿐입니다. (이러한 행태에 대한 분노가 과거 소액주주운동으로 발현했지만, 사회책임경영의 대두는 기업의 주인이 누구인가에 대해 원론적인 질문을 던져 논의를 한층 복잡하게 만듭니다.)

이사회의 독립성을 높이기 위해서 도입된 사외이사 제도가 유명무실하긴 마찬가지입니다. ‘사외’이사가 있다면 ‘사내’이사도 있다는 말인데 ‘사내’이사들은 철저하게 CEO에게 종속된 사람들입니다. 신문지상에 주기적으로 게재되는 “거수기로 전락한 사외이사들”이란 제목의 기사는 쌍으로 묶인 ‘사외’이사가 ‘사내’이사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단적인 예시입니다. 

 

안치용 / 발행인  dragon@sjournal.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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