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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은 왼쪽에서 뛴다

책 제목 : <심장은 왼쪽에서 뛴다> (2000년 6월 번역 발간)

저자 : 오스카 라퐁텐 (독일 사회민주당 전 대표)

번역 : 진중권

출판사 : 더불어숲

 

   
독일어 원본의 표지

 

여기 철저한 사회민주주의자가 있다 

그는 바로 '오스카 라퐁텐'이다. 오스카 라퐁텐은 39년 동안 독일 사회민주당에 몸담으며 파란만장한 정치사를 헤쳐나온 정치인이다. 이 책 <심장은 왼쪽에서 뛴다>는 오스카 라퐁텐이 1999년 3월 모든 정치적 공직에서 물러난 직후 발간되었고 당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저자 오스카 라퐁텐은 머리말에서 이 책은 회고록이 아니라 사민당 내의 근본적인 노선과 싸움에 관한 책이라고 밝힌다.

사민당이 신자유주의의 격랑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을 무렵, 사민주의자로서의 사명과 가치, 정체성을 잃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했으며 무엇보다 사민당은 제 영혼을 팔아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독일 사민당의 거목 '빌리 브란트'가 사민당을 이끌 당시 입당한 라퐁텐은 철두철미하게 사회민주주의 가치 노선에 따랐다. 골수 좌파라는 별칭으로도 불릴 정도로 한 치의 물러남도 없이 그야말로 '아우토반'처럼 내달렸던 정치가다. 그의 반평생이 담겨있는 이 책 역시 아우토반을 달리듯 거침없이 책장이 넘어간다.

나 역시 진보 정당의 당원이 된 지 10년이 넘었다, 진보정당의 당원이 되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진보 정치의 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다는 마음으로 시작했다. 생활정치 실천이 의무라고 여겨 크고 작은 역할을 정당 내에서 맡기도 했다. 그러는 동안 정당 내에서 일어나는 숱한 부침과 좌절. 시련. 부조리, 불합리, 당내 정치적 메커니즘으로 인한 여러 가지 혼란상을 참으로 많이 겪었다. 그래서인지 이 책이 주는 감상은 그 파장이 참 깊고 넓다.

책은 여느 정당과 마찬가지로 계파 파벌 간의 암투, 노선 대립, 정치적 이해관계 상충 등이 비일비재했던 독일 사민당의 역사를 파노라마처럼 펼친다.

오스카 라퐁텐은 사회민주주의의 가치와 원칙을 고수하기 위해 누구보다 단호했고, 누구와도 타협하지 않았던 불굴의 정치인이었다. 또 그는 자신의 개인적 욕망을 내세우지 않고 사회민주주의 정치의 실현과 사회민주당의 선거승리에만 몰두했다.

라퐁텐이 빌리 브란트의 후임으로 거론되던 때, 비슷한 시기에 정치에 입문했던 동년배 게르하르트 슈뢰더와의 우정, 대립, 정치적 갈등, 사민당 내 노선 대립으로 인한 불협화음과 그에 따른 인적 관계를 통해 독일 사민당이라는 거대한 정당의 40년 역사의 한 단면을 엿볼 수 있었다. 

라퐁텐은 빌리 브란트의 노선을 충실히 이어가고자 했다. 빌리 브란트는 1990년 이루어진 독일 통일의 기반을 닦은 사민당 소속 총리로 '동방정책'을 추진했고 '할슈타인원칙'을 포기하며 동·서독의 대결 국면의 전환기를 마련하였다.

유럽통합을 앞두고 경제에 관한 합의가 이루어지던 시기에 독일 사민당은 독일만의 사민당이 아니었다. 영국. 프랑스 등 유럽 전역의 정치적 이해관계는 매우 복잡했고 이를 해결하는 데 있어 상상을 초월하는 정치적 능력이 필요했다. 그리고 이때 사민당을 이끈 중심에는 바로 라퐁텐이 있었다. 

사회민주주의적 선거전은 오직 사회민주주의 정책으로 이끌어야 한다

독일 사민당을 이끈 인물 중 이토록 사회민주주의 가치를 고수하고 지키고자 고군분투한 정치인이 또 있었을까?

라퐁텐은 1998년 숙명의 라이벌이자 동지였던 게르하르트 슈뢰더를 수상 후보로 내세웠다. 슈뢰더를 당선시킨 라퐁텐은 킹메이커로 부상했으며 이후 슈뢰더 내각의 재무부 장관과 사민당 당수가 되었다.

라퐁텐은 정책 프로그램에서도 정치 철학과 소신은 명확했다. 그는 "성공적인 사민주의 정책은 오직 사회민주주의자와 노조원들 간의 긴밀한 협력 관계 위에서만 가능하다고 생각했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라고 이야기했다. 또 "우리는 집권 후 정책 프로그램을 명확하게 확정했고, 그 결과 평범한 당원들도 이 프로그램의 중요한 사항들을 남들에게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전문가들만이 이해할 수 있을 장황한 프로그램은 필요 없다. 짧은 대화만으로도 어느 유권자나 이해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프로그램은 다수의 바람을 제대로 반영한 것이어야 하며 재정적으로도 실현 가능한 것이어야 한다.”라고 이야기했다. 

이 대목은 정책 프로그램이 어떻게 전달되어야 하는지 가장 기본적인 원칙을 가르쳐 주고 있다. 

 

제3의 길은 그릇된 길이다

여기서 나의 이야기를 하나 하고자 한다. 내가 사회민주주의를 본격적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한 시기는 1998년 앤서니 기든스가 '제3의 길'을 발간했을 무렵이었다. 당시 신자유주의가 시대정신이었고 광풍이 몰아치고 있었다. 레이건. 대처 집권이 낳은 신자유주의는 전 세계로 영향력을 뻗쳤다.

'제3의 길'은 영국 토니 블레어 노동당 정부에 국정 이념과 비전, 정책 방향을 제시했다. 기든스는 "제3의 길은 구식 사회민주주의와 신자유주의를 다 같이 초월하려는 것"이라고 말하였으나, 제3의 길은 가면 쓴 신자유주의라는 비판을 받았다. 지금도 ‘제3의 길’ 논란은 현재진행형이지만 '제3의 길'이 사회민주주의적 정체성을 뿌리째 뒤흔든 사실만은 명백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실천적으로나 이념적으로 사회민주주의가 앞으로 살아남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더욱 발전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그것은 사회민주주의자들이 지금까지 해온 것보다 더욱 철저하게 기존 견해를 수정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만 가능하다. 다시 말해서 사회민주주의자들은 제3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 제3의 길이란 이제 새로워진 세계에서 사회민주주의를 적응시키고자 하는 사고와 정책의 틀인 동시에 구식 사회민주주의자와 신자유주의자를 뛰어넘고자 하는 시도이다“ - 앤서니 기든스 '제3의 길' 중에서

아이러니하게도 나에게는 기든스의 ‘제3의 길'이 사회민주주의에 대한 학습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된 계기인 셈이다.

제3의 길은 김대중 대통령의 국민의 정부 출범 시기부터 한국 정치권에 적지 않은 영향력을 미쳤다. 그리고 같은 시기 오스카 라퐁텐은 사민당 당수이자 슈뢰더 내각의 재무부 장관으로 재임하면서 슈뢰더 총리의 ‘제3의 길’과 힘겨운 투쟁을 펼치고 있었다. 이는 슈뢰더와의 마지막 정치적 행보였기도 했다.

라퐁텐은 사민당 당수인 자신이 독일 연방 수상 슈뢰더와 근본적으로 대립할 수 없음이 결정적인 이유였다. 그는 1999년 3월 11일 슈뢰더와 더는 공존할 수 없음을 깨닫고 모든 공직에서 사퇴를 발표하였다.

라퐁텐은 슈뢰더가 자신의 정치적 야심, 즉 당을 희생하여 자신의 이득을 취하려는 태도를 포기하기를 바랐으나, 사민당 당수이자 재무부 장관인 라퐁텐으로서는 “경제에 반하는 정책은 용납하지 않겠다.”는 슈뢰더의 압력을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다.

라퐁텐이 사퇴하자 경제계에서는 쌍수를 들고 환영했다. 이때 라퐁텐이 느꼈을 정치적 비애감이 참으로 컸을 것이다. 그는 제3의 길이 결국 사회민주당의 지지율을 떨어트리고 정체성 혼란을 가져올 것이라는 점과 경제적인 강제에 정치를 순응시키는 것은 그릇된 길이라는 사실에 대해 명확한 인식을 하고 있었다.

"사회민주주의의 과제는 엄정한 경제 법칙이라는 핑계로 자신을 정당화시키는 난폭한 자본주의를 순치시키는 것이다. 우리는 신보수주의의 복고 시대에 살고 있다……과학적으로 포장되고 강력한 대중매체의 지원 사격을 받는 신자유주의는 이데올로기의 종말과 역사의 종말을 내세우는 일종의 보수적인 이데올로기가 되었다……유럽 좌파들이 미국식 근본주의에 반대하여 유럽식 사회국가 모델을 내놓을 때에만 그들의 임무를 다하는 것이다. "

라퐁텐은 그렇게 39년간 몸담았던 사회민주당을 떠났다. 영국의 토니 블레어와 슈뢰더의 제3의 길은 성공할 수 없다는 통렬한 비판을 가한 채, 위대한 좌파 민중당 사회민주당에서의 역할과 임무를 끝냈다.

책을 덮으며

오스카 라퐁텐은 철저한 사회민주주의자였다. 그는 독일 사회민주당이 좌파 민중당으로서의 정체성을 상실하며 가야 할 좌표를 혼동하는 것을 더는 넘겨버릴 수 없었다. 그리고 슈뢰더 내각은 지지율 추락이라는 대가를 치렀다. 현재의 독일 사회민주당은 어떤가? 오늘날 사회민주주의는 어떤 길로 가야 하는가? 책은 이에 대한 고민과 과제를 남겼다. 그 때문에 14년 전에 발간된 <심장은 왼쪽에서 뛴다>는 지금 이 시각에도 생생하게 다가온다.

오스카 라퐁텐은 2005년 5월 사회민주당을 탈당, 암 발병에 인한 건강 악화로 2010년 정계에서 은퇴하였다.

 

글/이영희 (사회민주주의센터 집행위원장)

이지니기자  luxjin@sjournal.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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